본문 바로가기
한국 현대소설

홍성원 장편소설 『마지막 우상(偶像)』

by 언덕에서 2016. 3. 11.

 

 

홍성원 장편소설  『마지막 우상(偶像)』  

 

홍성원(洪盛原. 1937 ~ 2008)의 장편소설로 1983년 [현대문학]지에 연재된 작품이다. 1985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주인공 김인규가 낚시 여행 때문에 찾아가 발이 묶이면서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지는 가막도라는 섬을 배경으로 하는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진실을 가로막는 허위에서 폭력이 빚어지고 여기서 비극이 야기된다고 여기고, 지식인의 역할을 진실을 밝혀내는 데에 있다고 본다. 지식인의 절망은 세상의 부조리와 재난 자체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진상을 밝히는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할 때에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소설의 상황은 카뮈의 장편소설 <페스트>와 흡사한데 김인규는 <페스트>의 주인공 신문기자 랑베르와 대비된다.

 홍성원의 원작소설「마지막 우상8부작 [문화방송]에서 <MBC월화드라마>로 제작되어 1988711일부터 198882일까지 방송되었다.

  

「마지막 우상」은 8부작 [MBC월화드라마]로 1988년 7월 11일부터 1988년 8월 2일까지 매주 월요일,화요일 오후 9시 50분에 방영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잡지사 편집장인 주인공 김인규는 휴가를 얻어 가막도로 바다 여행을 갔다가 폭풍으로 서울로 돌아오지 못하고 머무르게 되면서 이 섬의 야릇한 분위기를 알게 된다. 한달에 한번 동력선이 외부 세계와 연결해 줄 뿐인 낙도인 이 섬은 독특한 공동체 사회를 이루고 있다. 환자의 응급치료를 위해 양귀비를 기르고 재배하던 이곳의 사정을 알고 아편을 사모으기 위해 한 사내가 이 섬에 들어온다. 강간을 범하려다 주민들에게 들켜 헛간에 갇힌 그는 탈주 도중 피살되지만 주민들은 누구도 이 사실을 거론하지 않고 범인조차 가려내려고 하지 않는다. 김인규가 섬에 묶여 있는 동안 그 사실을 밝혀내보려고 노력하던 중 그 섬의 내력과 한(恨)의 역사를 하나씩 알게 된다.

 한말에 동학교도였기 때문에 이 섬으로 이주한 이들의 조상은 전염병이 돌자 외지의 의사를 불러 들인다. 턱없이 비싼 치료비를 요구하는 의사에 맞서 주민들은 턱없이 비싼 식대를 요구하고 배편을 마련해주지 않아 굶주려 죽게 만든다. 이를 계기로 그들은 내부에서 섬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독자적 규율의 합리적 근거로 삼는다. 이들의 독자적인 규율은 6.25전쟁과 거듭되는 외지와의 접촉이 남긴 상처로 인해 운명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가막도에서는 육지와 그로부터 침입자는 적이 되고, 어쩌다 들어온 자는 못나가도록 붙들어 매는 것이 섬과 그들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수단이자 법이 된 것이다.

 김인규는 이 섬의 폐쇄정책의 허위성을 고발하기 위해, 타의로 붙들린 몸에서 정착하기로 선언할 즈음 콜레라가 돌아 섬 전체가 위기를 맞게 되면서 폐쇄성이 용납되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 콜레라는 내부 분열의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된다. 병역을 담당한 육지 당국이 K항의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격리수용소로 가막도를 지정, 섬주민에게 이를 숨기고 이송해온다. 당국은 이 사실이 새어나갈 경우 이 섬을 콜레라의 진원지로 허위보도하게 한다. 이를 안 섬사람들은 적개심에 불타지만 자신들의 범법사실과 콜레라로 인해 힘으로 개방을 강요하는 당국에 맞설 수가 없자 주민들은 단식투쟁으로 돌입하고 드디어 화해를 구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 화해 때문에 섬을 떠나려던 서문호는 다시 섬으로 돌아와 정착할 결심을 하게 되고, 섬에 억류되었다가 아주 거기서 묻힐 생각을 했던 김인규는 육지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된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진실을 가로막는 허위에서 폭력이 빚어지고, 여기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비극이 야기된다고 간주한다. 지식인의 역할이란 세상의 진실을 밝혀내는 데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데에 지식인들의 절망이 도래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중의 김인규가 부닥치고 있는 상황은 관습과 제도, 인간의 역사와 거기서 얻어진 태도가 지닌 허위의 내리누름이었다. 주인공이 싸워야 할 것은 재난 자체가 아니라, 재난이 빚어지는 상황에 대한 진상과 진실한 태도를 밝히기 위한 과정이다.

 이 가막도만의 방법과 논리라는, 육지와 사뭇 다른 질서 체계는 6․25의 가혹한 역사 속에서 다시 한번 확인된다. 국군의 반격을 피하기 위해 이 섬으로 들어온 인민군과, 그들을 추격하는 아군의 공방전 사이에서 무고한 섬 주민들만 대량 희생되었고, 그래서 섬사람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부역한 주민들을 숨겨주기도 한 것이다. 이 섬의 역사 초기에 표류한 외국인을 구조해 주었으나, 구원받은 이들이 주민을 살해하고 도주함으로써 생기기 시작한 그들 아름의 자기 보호 방법은, 육지 사람들로부터 이 같은 몇 차례 피해를 통해 자기 섬의 운명적인 선택으로 확고하게 굳어져 왔다.

 그들에게 육지와 그로부터의 틈입자는 적이 되고, 그들을 방비하고 혹은 어쩌다 들어온 자는 못 나가도록 붙들어 매 두는 것이 그들 자신과 그들의 섬을 지키는 유일한 수단이 되고, 그것만이 살 길이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김인규가 이 섬에 들어올 즈음, 그리고 그가 자신은 무고한 이유로 생명의 위협까지 당하는 수난을 받는 동안, 그리하여 섬의 폐쇄 정책을 지키기 위해 범법 위에 새로운 범법을, 허위 위에 새로운 허위를 덧입히는 잘못된 체계를 고발하기 위해 섬에 정착할 것을 선언할 때, 또 그것을 시험하듯 콜레라가 전염되어 매일 잇따라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을 때, 이 섬은 더 이상 육지와의 절연을 강요하며, 섬을 지키기 위한 전래의 방법을 유지하기 힘든 상태가 다가온다.

 그것은 먼저, 아편을 사기 위해 외부인들이 들어왔다는 것, 그의 죽음의 진상 규명을 위해, 그의 동료들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있어 왔다는 외래적인 자극도 있었지만, 섬 주민 자체의 반항도 강하게 일고 있었던 탓이었다. 인민군의 잔류자로 이 섬에서 30년 동안 살면서 이곳의 섬사람으로 귀화해 버린 안종선이 뭍으로 옮겨가겠다는 뜻을 은근히 비춘 것, 그리고 섬을 떠났던 서문호가 자기를 받아 주려하지 않는 섬에다가 육지의 배가 닿을 수 있는 바닷가 제방을 축조할 비용을 내놓겠다는 것, 그리고 2년 전 외가를 찾아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오정은이 섬 아이를 모아 육지의 도시로 수학 여행을 데리고 가는 것이 그것이다.

 

 

 『마지막 우상』은 낚시 여행을 떠난 주인공 김인규가 우연히 가막도라는 섬에 발이 묶이면서 가막도 사람들의 폐쇄적인 삶을 보게 되고 그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가막도 사람들은 외부인에게 배타적이며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자신들만의 규칙을 가지고 삶을 영위하려 한다. 그러나 김인규의 등장과 전염병으로 인해 외부와 접촉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그들이 지닌 아픈 역사와 가막도를 내버려두지 않았던 외부의 폭력들이 점차 드러난다. 6ㆍ25라는 우리 현대사의 커다란 상흔과 권력을 지닌 자들의 오만함, 이에 맞서 자신들의 삶과 그 터전을 지켜가려는 가막도 사람들의 노력 등이 작가 특유의 문체에 실려 폐쇄적인 현실 속에서 진실을 구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이 때문에 『마지막 우상』은 카뮈의 「페스트」>와 매우 흡사한 상황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의 김인규의 위치는 「페스트」에서의 신문 기자 랑베르와 비슷한데, 취재차 오랑을 방문했던 그는 페스트 때문에 봉쇄된 이 도시를 빠져나가 약혼녀에게 돌아가려고 시도하다가 전염병과 외로이 투쟁하는 의사 리외의 철학과 그 실천에 감동을 받고, 탈출을 포기하며, 방역팀에 자원하여 협조한다. 리외와 랑베르가 여기서 연대적으로 싸우고 있는 것은 페스트로 상징되고 있는 세계의 부조리한 상황과, 거기서 내리누르는 인간 고통을 향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