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옥 단편소설 『명랑한 밤길』
공선옥(孔善玉. 1964~ )의 단편소설로 2005년 [창작과 비평]지 가을호에 게재되었다. 2007년 발간된 동명의 소설집 표제작이다. 진솔한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생생한 입담으로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표현해온 작가의 이 소설은 일관된 주제의식을 견지하며 차가운 현실을 능청스럽게 비꼬는 서사 전략을 구사한다. 『명랑한 밤길』은 현대인 누구나 받기 마련인 상처를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그 속에 희망을 담는 진일보된 모습을 보여준다.
좀 풀어서 말하자면, 작가는 그간 자신의 작품을 수식하던 ‘모성’의 이미지를 넘어서 우리 시대 사람들 누구나 받게 마련인 상처를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그 상처에서 비롯된 삶의 의지를 타인과의 연대의식으로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설『명랑한 밤길』은 2006년 ‘작가가 선정한 올해의 소설’에서 최우수작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은 시골의 면소재지 의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조무사다. 간호학원을 마치자마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스물한 살 그녀는 형제들마저 제 살 곳으로 떠나 치매에 걸린 엄마와 둘이 면소재지 시골에서 살고 있다. 의원을 찾은 하얀 지프차를 가진 젊은 청년은 작가라고 했다. 그녀는 우연히 응급환자로 병원을 찾은 남자에 이끌려 몸과 마음을 다주는 얼마간의 연애를 경험하지만, 끝내 버림받는다.
외국가수 이름을 줄줄 외우고, 밤마다 감미로운 음악을 선사해주던 남자는 주인공에게 낭만적인 연애의 궁극이자, 희망도 가망도 없는 앞날을 밝혀줄 존재였다. 남자는 시골 공기와 신선한 채소가 좋다고 했다. 그녀는 남자를 위해 텃밭을 갈고 채소를 키운다. 그러나 텃밭에서 키운 무공해채소를 받아먹던 남자는 지겨워졌는지 끝내 그녀를 마다하며 철저하게 등을 돌린다.
“야, 그동안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이래? 너 올 때마다 내가 음식해주고 음악 들려주고 했던 거 생각 안나? 생각난다면 이러면 안 되지. 너가 이러는 거 행패 부리는 거야.”
남자는 주인공과 함께 근무하는 친구 수아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구애해서 집으로 불러들여 농락하는 듯했다.
남자에게 버림받고 돌아오는 밤길, 으슥한 곳에 인적이 느껴져 근처의 정미소 안으로 숨으니 근처 농공단지의 외국인 노동자 둘이서 한국말로 신세한탄을 하고 있다. 네팔인과 방글라데시인이다. 임금체불 때문에 고통 받는 이가 있고 가족의 가난 때문에 한국을 떠나지 못하는 이도 있다. 두 사람이 빗속에서 어둠 속으로 사라진 길 너머로 주인공은 자신이 지나온 길이 보였고 그 길 너머로 그 남자네 집이 보였다.
주인공은 빗속에서 악을 써지만 눈물이 나서 비를 맞으며 달을 향해 명랑하게 나아간다.
화려한 정원에서 보호받고 주목받는 꽃보다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바람 부는 길가에서 피었다 지는 작은 꽃들에게 눈길을 보내온 작가는 작품 속에서 주로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들의 삶, 특히 여성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모성을 섬세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언어로 담아내고 있다. 『명랑한 밤길』역시 그녀의 작품 경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소설집 역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버둥거리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 작품에서 작가의 소설이 응시하는 낭만적 연애의 상실은 전략적이고 매혹적인 서사의 산물이다. 소설이 보여주듯이 제도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현실은 타자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소중한 매개체가 된다. 소설 인물들은 사랑의 환상이 사라진 냉엄한 현실을 날카롭게 자각하면서도 그 속에서 삶을 지속하는 근본적 활기와 낙천성을 잊지 않는다. 유머러스하고도 생생한 화법으로 전달되는 이들의 이야기는 “낯익고 낯익어서 슬픈 풍경” 속에 숨은 삶의 비의를 새롭게 건져올리게 한다. 마르지 않는 체험의 샘에서 흘러나오는 이 활달한 입담의 세계는 공선옥 소설의 고유한 개성과 상상력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보여준다.
♣
이 소설집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상처 입은 존재들이지만, 자신들의 아픔을 드러내놓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힘을 얻고 희망을 찾는다. 인물들은 자신의 상처를 부끄러워하지도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서 힘을 찾고 그런 상처를 공유하며 연민하며 서로의 손을 잡는다.
그런 점에서 주인공에게 상처와 아픔은 결코 부끄러운 치부가 아니라 살아가는 힘이고, 상처를 딛고 일어선 자기연민의 근원이며 비슷한 처지의 타인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그 상처를 밝히고 위로하는 작가의 시선 또한 주인공들의 태도와 닮아 담담하고 오히려 활달하기까지 하다. 상처에 매몰되지 않고 삶을 긍정적으로 포용하는 자세는 공선옥 소설의 개성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어주고 있음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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