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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현진건 단편소설『고향』

by 언덕에서 2016. 3. 3.

 

 

현진건 단편소설 『고향』

 

 

빙허(憑虛) 현진건(玄鎭健, 1900~1943)의 단편소설로 1926년 1월 4일 [조선일보]에 <그의 얼굴>이란 제목으로 발표되었고, 그 후 단편집 <조선의 얼굴>(글벗집 출간)에 수록되면서 『고향』으로 제목을 고쳐 간행하였다.

 이 작품은 출전이 1922년 [개벽]으로 되어 있었으나, 잘못된 것이라는 게 대다수 국문학자들의 지적이다.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을 비판한 작품으로 그 내용의 적나라함 때문에 일제에 의해 판매 금지를 당했다. 액자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이 작품은 사실주의 작가로서의 투철한 현실 인식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 수탈 정책을 비판한다.

 민중의 고통을 좀 더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과 직접적으로 관련시켜서 작자가 마무리한 작품이 있다고 한다면 『고향』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이 작품은 단편으로서의 기교적인 면에서는 큰 뜻이 없다. 왜냐하면 단편소설 구성의 묘미나 표현 기교를 살려 나간 작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열차 속에서 만난 한 사내의 이야기를 그대로 서술한 형식이다. 그렇지만 작자는 여기서 당시의 가난했던 백성이 일제 식민지 체제 하에서 그들의 수탈 행위로 말미암아 농토를 잃고 얼마나 처참한 역경을 헤쳐 나갔는지를 생생하게 기록 문학 형식으로 증언하고 있다.

 

 

빙허 현진건(1900 ~ 1943)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는 서울행 기차간에서 기이한 얼굴의 그와 자리를 이웃해서 앉게 된다. 이 좌석에는 각기 국적이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다. '엄지와 검지로 짧게 끊은 꼿꼿한 윗수염을 비비면서' 마지못해 고개를 까딱거리는 일본인과 '기름진 얼굴에 수수께끼 같은 웃음을 띠운' 중국인 사이에 한국인 그와 내가 합석하고 있다. 즉, 세 나라 사람이 모이게 된 것이다.

 '그'라는 사나이에 대하여 나는 처음에 남다른 흥미를 느끼고 바라보다가 이내 싫증을 느껴 애써 그를 외면하려 하였지만, 그의 딱한 신세타령을 듣게 되자 차차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마침내 술까지 함께 마시게 되고, 나는 그의 얼굴에서 '조선의 얼굴'을 발견한다. '그'는 정처 없이 유랑하는 실향민이었으며 나는 '그'의 유랑 동기와 내력을 듣는다.

 열차 속에서 만난 '그'는 17세 때 이역만리 간도로 떠났던 인물이다. 조선 백성이 조선 땅을 버리고 남의 땅을 찾아간 건 일제에게 조선 땅을 빼앗겼기 때문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거기서 육신의 끝없는 혹사와 굶주림이 이어진다. 그래서 부친은 병을 얻어 작고한다. 홀어머니 역시 그 후 병들어 '흰 죽 한 모금도 못 마시고' 아사한다. 이후 주인공은 부모 유골을 버리고 현해탄을 건넌다. 역시 남의 땅이다. 규슈 탄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후 다시 그곳을 떠나서 오래간 만에 고향에 돌아와 보니 고향은 아는 사람 하나 없고 황폐해 있다. 우연히 꼭 하나 아는 사람을 만나는데 그녀는 유곽으로 팔려가서 시달리다 성병을 얻고 늙어 버린 폐물로서 지금은 일본인 집의 하녀로 있는 여자인데 바로 그녀가 옛날엔 그의 아내가 되려던 사람이었다. '그'는 무덤과 해골을 연상하게 하는 고향에서 이십 원에 유곽1에 팔려 갔다가 질병과 부채만을 안고 돌아온 옛 연인과 해후했던 것이다. 그는 괴로운 심정으로 일자리를 찾아 지금 경성으로 올라가는 중이다. 그는 취흥에 겨워서 어릴 때 부르던 아픔의 노래를 읊조린다.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묘지로 가고요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1919년의 청년회의소 모임 사진에 현진건과 이상화가 함께 등장하고 있다. 앞줄 왼쪽에서 넷째가 현진건, 그의 뒤(둘쨋줄 왼쪽에서 셋째)가 이상화

 

 현진건은 1926년 단편 『고향』에서 대구에서 서울까지 올라가는 경부선 기차 안에서 만난 사람들 간의 대화로 유곽에 대한 당시 사회의 인식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대구에서 멀지 않은 K군의 외딴 동리에 살던 청년과 혼인의 얘기가 오갔던 처녀가 20원에 대구 유곽으로 팔려갔다. 그 뒤 10년 동안 성매매를 하면서 병들어 산송장이 되어서 고향에 돌아와 일본인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고 있다는 기막힌 비애의 현실을 전하며 위의 노래를 부른다. 

 이 소설은 사실주의의 일반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현실 폭로'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일제의 수탈로 찌그러진 두 남녀의 모습에서 우리는 사실적인 조선의 얼굴을 볼 수 있고, 마지막 결미의 노래에서 민족의 고뇌를 함축하고 있는 풍자를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인 1920년대 중반의 일제 수탈로 황폐해진 농촌의 실상을 역력히 보여 준다. 비참한 유랑 생활을 한 그는 일제 치하의 식민 한국인의 전형으로 그려져 있으며, 그의 눈물은 곧 일제에게 짓밟힌 고국, 즉 조선의 얼굴로 요약 상징된다.

 일제의 가혹한 수탈로 인해 농토를 잃은 우리 민족은 소작인으로 전락하거나 날품팔이로 전전하며 유랑의 길을 걸었는데 이러한 실상이 잘 나타나 있다. 현진건의 사회 고발의 성격이 이 작품에 와서야 뚜렷한 실상을 드러내고 착취의 상징인 동양척식주식회사2에 의해 농토의 모든 것을 빼앗긴 농민의 참상을 대담하게 그리고 있다.

 

 

 

 빙허의 작품 중 민중의 고통을 좀 더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과 직접적으로 관련시켜서 마무리한 작품이 있다고 한다면 이 작품 『고향』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열차 속에서 만난 한 사내의 이야기를 그대로 서술한 간단한 형식이다. 그렇지만 작자는 여기서 당시의 가난했던 백성이 일제 식민지 체제 하에서 그들의 수탈 행위로 말미암아 농토를 잃고 얼마나 처참한 역경을 헤쳐 나갔는지를 생생하게 기록 문학 형식으로 증언하고 있다. 

 이것을 만일 프로문학적인 경향으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프로문학 제1기의 계열에 속하는 자연발생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집단적 KAPF 활동 이전에 자연발생적 동기에서 우리 사회의 경제적 하층구조의 참상을 폭로하고 고발ㆍ증언해 나간 셈이다. 이 작품은 1926년 3월에 발행된 그의 단편집 <조선의 얼굴>의 맨 뒤에 수록되어 있다. 단편집의 이름을 <조선의 얼굴>이라 했고, 이런 표현이 단편집에서 사용된 것은 오직 『고향』에 단 한 번뿐이었으며 이 작품이 이 단편집의 맨 끝에 수록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작자는 자기 문학의 결론적인 의미를 이 작품에 담았다고 짐작된다. 즉 <불><운수 좋은 날><술 권하는 사회><사립 정신 병원장> 등이 모두 특정 시기와 공간을 무대로 표현해 나간 시대적 증언의 문학인데 비하여 『고향』은 그것을 긴 시간과 공간의 넓은 무대를 통해서 조감할 수 있도록 표현하고 있다.

 빙허 현진건은 1930년대에 들어와서 한동안 작품 활동을 별로 아니하다가 '일장기 말살사건'으로 동아일보사 사회부장직을 그만두고 옥고를 치렀다. 일제 말기에는 창의문 밖에서 양계를 하며 호구하다가 폭음으로 인한 장결핵으로 1943년 불우하게 사망했다.  

 

 

 

 

 

  1. 한국에는 일본의 한반도 침략과 함께 1902년 부산의 일본인 거류지역에 유곽이 처음 생기면서 인천·원산·서울 등으로 퍼져나갔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전국의 도시에 유곽이 성행했다. 그러나 일본에서와 같은 문화적 기능은 전혀 없었으며 단지 창녀를 모아놓은 집창구역에 불과했다. 한국의 유곽은 1947년 10월 미군정청의 공포한 공창폐지령에 따라서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 [본문으로]
  2.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 통용: 토요 타쿠쇼쿠 카부시키가이샤[*], 동양척식, Oriental Development Company)은 일본 제국이 조선의 경제 독점과 토지·자원의 수탈을 목적으로 세운 국책회사이다. 간단히 줄여서 동척(東拓)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동양척식주식회사는 대영제국의 동인도 회사를 본뜬 식민지 수탈기관으로, 1908년 제정한 동양척식회사법에 의해 세워졌다. 자본금 1,000만 원이며 조선은 설립 자본금의 30%에 해당하는 국유지를 출자했지만 주요 목적은 일본의 식민지로부터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토지와 금융을 장악하고 일본인들의 식민지 개척 및 활동을 돕는 것 곧 일본 제국의 식민지에서의 착취를 위한 기관이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