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연가(愛煙家) 오상순 시집 『공초 오상순 시선』
공초 오상순(吳相淳. 1894 ~ 1963)은 일본에서 도시샤대학을 마치고 귀국 후 YMCA에서 외국어 번역을 하기도 하고 전도사도 지냈다. 1920년 김억ㆍ남궁벽ㆍ염상섭ㆍ황석우 등과 함께 [폐허] 동인이 되고, 이 동인지 창간호에 처음으로 <시대고(時代苦)와 그 희생>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 글은 당시 우리나라가 3ㆍ1운동의 좌절을 겪은 뒤 희망이 없고 퇴폐적인 사회풍조에서 희생정신으로 그 시대고를 극복, 새로운 시대를 창조해야 한다는 내용의 논문이다.
첫날밤
어어 밤은 깊어
화촉동방(華燭洞房)의 촛불은 꺼졌다.
허영의 의상은 그림자마져 사라지고.....
그 청춘의 알몸이
깊은 어둠 바다 속에서
어족(魚族)인 양 노니는 데
홀연 그윽히 들리는 소리 있어.
아야..... 야!
태초 생명의 비밀 터지는 소리
한 생명 무궁한 생명으로 통하는 소리
열반(涅槃)의 문 열리는 소리
오오 구원의 성모 현빈(玄牝)이여!
머언 하늘의 못 성좌는
이 밤을 위하여 새로 빛날진저!
밤은 새벽을 배고
침침히 깊어간다.
- <공초오상순시선(空超吳相淳詩選)>(자유문화사.1963)
이후 [폐허]를 통해 계속 시작품을 발표했는데, 초기 시편들은 주로 운명을 수용하려는 순응주의, 동양적 허무의 사상이 짙게 깔려 있다. 1923년 보성고보 영어교사로 재직하며 계속 <폐허의 제단> <허무혼의 독언> 등을 발표, 일제 식민지 치하의 삶을 ‘허무와 세속에의 일탈’로 영위하려는 몸부림을 보였다. 이 무렵 일본 여인과 정신적 사랑을 속삭이기도 하고, 선교사의 딸인 독일계 미국 여인과 사랑을 맺기도 했으나, 끝내 뿌리쳐 일생을 독신으로 보냈다.
방랑의 마음
1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ㅡ
오ㅡ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ㅡ
나의 혼(魂)…….
바다 없는 곳에서
바다를 연모(戀慕)하는 나머지에
눈을 감고 마음 속에
바다를 그려 보다
가만히 앉아서 때를 잃고ㅡ
옛 성(城) 위에 발돋움하고
들 너머 산 너머 보이는 듯 마는 듯
어릿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다
해 지는 줄도 모르고ㅡ
바다를 마음에 불러 일으켜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매
깊은 바닷소리
나의 피의 조류(潮流)를 통하여 우도다.
망망(茫茫)한 푸른 해원(海原)ㅡ
마음 눈에 펴서 열리는 때에
안개 같은 바다와 향기
코에 서리도다.
2
나그네의 마음ㅡ
오ㅡ 영원한 방랑(放浪)에의
나그네의 마음ㅡ
방랑의 품속에
깃들인 나의 마음ㅡ
나는 우다
모든 것이 다 있는 그 세계(世界) 보고
나는 우다
모든 것이 다 없는 그 세계 보고
나는 우다
한(恨)있는 그 세계 보고
나는 우다
유(有)와 무(無)가 교차(交叉)하여 돌아가는 그 세계보고
나는 우다
생(生)과 사(死)가 서로 스쳐 지나가는 그 세계보고
나는 우다
나의 육(肉)의 발이 밑없는 세계에 다을 때
나는 우다
나의 영(靈)의 발이 밑없는 세계에 스쳐 헤매일 때
나는 우다
오ㅡ 밑없고도 알 수 없는 울음
나는 우다ㅡ
- <공초오상순시선(空超吳相淳詩選)>(자유문화사.1963)
‘공초(空超)’라는 호는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확실치 않으나, 1926년경 부산 동래 범어사에 2년 동안 입산하여 선에의 노력을 기울인 다음 세상을 유랑할 때부터가 아닌가 여겨진다. 담배를 하도 많이 피우다 보니 담배꽁초가 쌓여서 '꽁초'와 비슷한 발음인 '공초(空超)'로 호를 정했다는 설도 있다. 이후 대구ㆍ부산 등지를 떠돌아다녔고, 이상화ㆍ이장희ㆍ백기만 등과 교분이 깊었다.
그의 일생은 그 자신의 작품 <방랑의 마음>에 표현된 것처럼 ‘나그네의 마음 / 방랑의 품 속에 / 깃들인 나의 마음’이었다. 방랑과 담배연기와 고독과 허무혼, 이것이 그의 일생이었다. 전국의 사찰을 전전하였고, 한때는 중국에도 건너가 주작인(周作仁)에게 심취한 적도 있었다. 해방 후에도 직업을 갖지 않은 채 6ㆍ25전쟁을 맞고, 부산ㆍ대구를 오르내리며 다방ㆍ사찰ㆍ친구의 집 등에서 기거하기 일쑤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는 조계사(曹溪寺)에 몸을 기탁해 낮에는 연극인 이해랑이 운영하던 명동의 ‘청동다방’에 머물며 여러 문인들과 어울렸다. 이 만남을 기록한 195권의 문인 '서명첩'인 [청동산맥(靑銅山脈)]을 남겼다. 이 무렵 오상순은 허무를 초극하고자 무소유의 삶을 직접 실천했다. 1961년 몸을 기탁했던 조계사를 나와 안국동의 ‘정이비인후과’에서 생활하다가 고혈압성 심장병과 폐렴으로 입원해 1963년 6월 3일 적십자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은 지 20일 후에 유고 시집이자 유일한 시집인 「공초 오상순 시선」이 절친한 동료였던 구상의 도움으로 자유문화사에서 간행되었다. 1983년에는 오상순 시전집인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구상 편, 한국문학사)이, 1988년에는 추모 문집인 <시인 공초 오상순>(구상 편, 자유문학사)이 간행되었다. 1992년부터 무소유의 삶을 살다 간 그를 기리기 위해 ‘공초문학상’이 제정되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1956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62년 [서울시문화상]을 수상했다.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
─ 아시아의 진리는 밤의 진리다.―
아시아는 밤이 지배한다. 그리고 밤을 다스린다.
밤은 아시아의 마음의 상징이요, 아시아는 밤의 실현이다.
아시아의 밤은 영원의 밤이다. 아시아는 밤의 수태자(受胎者) 이다.
밤은 아시아의 산모요 산파이다.
아시아는 실로 밤이 낳아 준 선물이다.
밤은 아시아를 지키는 주인이요 신이다.
아시아는 어둠의 검이 다스리는 나라요 세계이다.
아시아의 밤은 한없이 깊고 속모르게 깊다.
밤은 아시아의 심장이다. 아시아의 심장은 밤에 고동(鼓動)한다.
아시아는 밤의 호홉기관이요, 밤은 아시아의 호흡이다.
밤은 아시아의 눈이다. 아시아는 밤을 통해서 일체상(一切相)을 뚜렷이 본다.
올빼미 모양으로─
밤은 아시아의 귀다. 아시아는 밤에 일체음을 듣는다.
밤은 아시아의 감각이요, 감상이요, 성욕(性慾)이다.
아시아는 밤에 만유애(萬有愛)를 느끼고 임을 포옹한다.
밤은 아시아의 식욕이다. 아시아의 몸은 밤을 먹고 생성한다.
아시아는 밤에 그 영혼의 양식을 구한다. 맹수 모양으로―
밤은 아시아의 방순(芳醇)한 술이다 아시아는 밤에 취하여 노래하고 춤춘다.
밤은 아시아의 마음이요, 오성(悟性)이요, 그 행(行)이다.
아시아의 인식도 예지도 신앙도 모두 밤의 실현이요, 표현이다.
오─아시아의 마음은 밤의 마음─아시아의 생리 계통과 정신 체계는 실로 아시아의 밤의 신비적 소산인저─
밤은 아시아의 미학이요 종교이다.
밤은 아시아의 유일한 사랑이요. 자랑이요, 보배요, 그 영광이다.
밤은 아시아의 영혼의 궁전이요, 개성의 터요, 성격의 틀이다.
밤은 아시아의 가진 무진장의 보고이다. 마법사의 마술의 보고와도 같은─
밤은 아시아요, 아시아는 곧 밤이다.
아시아의 유구한 생명과 개성과 성격과 역사는 밤의 기록이요.
밤 신의 발자취요, 밤의 조화요, 밤의 생명의 창조적 발전사(發展史)─
보라 ! 아시아의 상하 대지와 물상(物相과) 풍물과 품격과 문화─
유상 무상(有相無相)의 일체상이 밤의 세례를 받지 않는 자 있는가를─
아시아의 산맥은 아시아의 물의 리듬을 상징하고, 아시아의 물의 리듬은 아시아의 밤의 리듬을 상징하고
아시아의 딸들의 칠빛 같은 머리의 흐름은 아시아의 밤의 그윽한 호흡의 리듬─
한 손으로 지축을 잡아 흔들고, 천지를 함토(含吐) 하는 아무리 억세고 사나운 아시아의 사나이라도 그 마음 어느 구석인지 숫처녀의 머리털과도 같은 끝모르게 감돌아드는 밤 물결의 흐름 같은 리듬의 곡선은 그윽히 내리어 흐르나니─
그리고 아시아의 아들들이 자기를 팔아 술과 미와 한숨을 사는
호탕한 방유성(放遊性)도, 감당키 어려운 이 밤 때문이라 하리라.
밤에 취하고, 밤을 사랑하고, 밤을 즐기고, 밤을 탄미(嘆美)하고,
밤을 숭배하고─ 밤에 나서 밤에 살고, 밤 속에 죽는 것은 아시아의 운명인가.
아시아의 침묵과 정밀(靜謐)과 유적(幽寂)과 고담(枯淡)과 전아(典雅)와 곡선과 여운과 현회(玄晦)와 유영(幽影)과 후광(後光)과 또 자미(滋味) 제호미(醍호味)─는 아시아의 밤신들의 향연의 교향악은 악보인저.
오! 장엄하고 유현하고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아시아의 밤이여─
태양은 연소(燃燒)하고 자격(刺激)하고 과장하고 오만하고 군림하고 명령한다.
그리고 남성적이요. 부격(父格)이요 적극적이요 공세적이다.
따라서 물리적이요, 현실적이요 학문적이요 자기 중심적이요 투쟁적이요 물질적이다.
태양의 아들과 딸은 기승하고 질투하고 싸우고 건설하고 파괴하고 돌진한다.
백일하에 자신 있게 만유(萬有)를 분석하고, 해부하고 종합하고 통일하고,
성할 줄만 알고 쇠하는 줄 모르고 기세 좋게 모험하고 제작하고 외치고 몸부림치고 피로한다.
차별상(差別相)에 저회(低廻)하고, 유(有)의 면(面)에 고집한다.
여기 뜻 아니한 비극의 배태(胚胎)와 탄생이 있다.
- <공초오상순시선(空超吳相淳詩選)>(자유문화사.1963)
위의 시는 공초(空超) 시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아시아의 오랜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정신을 노래한 충격적인 아시아 선언문이라 할 만하다. 아시아의 장구한 역사적 시간, 아시아의 광막한 공간이 점철된 이 작품에서 하루 20여 갑의 애연가로, 또 젊은이들과의 문학 기록이라 할 195권에 달하는 [청동문학(靑銅文學)]의 주인공으로 더 많이 알려진 공초의 시문학이 의외로 광대한 정신적 영토를 소유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그의 시는 초기 시단의 퇴폐적이고 허무적인 풍조에 젖어 그것을 사상의 높이에로 이끌어 올리려는 노력을 보였다. 허무 자체로 탐닉해 들어가기보다는 허무를 관념적으로 긍정하여 그것을 의지화하려는 줄기찬 일면이 그의 시에 나타나고 있다. <허무혼의 선언> <아시아의 밤> 등은 이러한 특징을 잘 표현해 주는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독신과 방랑과 참선과 애연은 그의 생활의 네 가지 특징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세속적인 일체의 영욕과 명리를 초월한 일관된 그의 생활신조로도 그는 특이한 존재가 되었다.
해바라기
해바라기!
너는 무삼 억겁(億劫)의 어둠에 시달린 족속(族屬)의 정령(精靈)이기에
빛과 열(熱)과 생명(生命)의 원천(源泉)! 또 그 모체(母體) 태양(太陽)이 얼마나 그리웁고 핏줄기 땡기었으면
너 자신(自身) 이글이글 빛나는 화려(華麗)한 태양(太陽)의 모습을 닮아
그 뉘 알 길 없는 영겁(永劫)의 원풀이를 위함인가
저 모양 색신(色身)을 쓰고 나타났으리……
태양(太陽)이 꺼진 밤이면 청상(靑孀)스럽게도
목고개를 힘없이 떨어뜨리고
몽마(夢魔)처럼 그 속모를 침울(沈鬱)한 향수(鄕愁)에 사로잡혀
죽은 듯 무색(無色)하다가도
저 멀리 먼동이 트기 시작하면
미몽(迷夢)에서 깨어나듯 기적(奇蹟) 같이 생동(生動)하여
홀연(忽然)! 활기(活氣) 띠우고 찬란히 빛나며
태양(太陽)이 가는 방향(方向)의 뒤를 곧장 따라
고개 틀어 돌아가기에 바쁘면서도
얼굴은 노상 다소곳이 숙으려 수집은 요조(窈窕)인 양
한(限)없이 솟아오르는 그리움과 반가움의 심정(心情) 주체 못하는고녀!
오! 너는 무삼 뜻 있어
인간(人間)의 생리(生理)와 표정(表情)과 꼭같은
그 속모르게 수집고 은근하고 향기롭고 화려(華麗)하고
아아 황홀(恍惚)한 미소(微笑)! 넘쳐 흐르도록 발산(發散)하여
영원(永遠)히 불타는 태양(太陽)의 입맞춤과
포옹(抱擁)을 사뭇 유혹(誘惑)하고 강요(强要)하는 것이뇨
빛과 사랑과 생명(生命)에 주린 넋! 불붙는 정열(情熱)을 다하여
태양(太陽)을 겨누어 속에서 복받쳐 샘솟고 해일(海溢)처럼 부풀어 오르는
사랑의 겁화(劫火) 다 쏟아 연소(燃燒)해 버리는
신(神)과도 같은 사랑과 정열(情熱)과 창조의욕(創造意慾)의 결정체(結晶體)!
너 해바라기의 비장(悲壯)한 운명(運命)의 미(美)여!
이윽고
거룩한 태양(太陽)의 씨앗을 받아
부풀어 터지도록 가슴에 품어 안고
한 찰나(刹那) 한 순간(瞬間)인 듯 짧고 긴 세월(歲月)의
화려(華麗)하고 찬란(燦爛)하던 그 화판(花瓣)도 이파리도
하나 둘 시들어 땅에 떨어지면
태양(太陽)의 분신(分身)인양 그 호사(豪奢)스럽던 빛깔도 열(熱)도 어느덧 사라져
태고(太古) 설화(說話)의 옛일인 듯 그 자취 찾을 길 없고
여위고 뼈마른 어느 거인(巨人)의 짝지 모양
불붙어 다한 정열(情熱)의 잔재(殘滓) ― 그 상징적(象徵的) 결정체(結晶體)
너 영원(永遠)히 비밀(秘密)한 생명(生命)의 역사(歷史)를 새긴 기념비(記念碑)!
올연(兀然)히 창공(蒼空)을 꿰뚫어 버티고
이제 나의 지극(至極)한 염원(念願)과 목적(目的)을 달성(達成)했다는 듯
나의 일은 이미 끝났다는 듯
애낌 없고 남김 없이 자족(自足)하여
대오(大悟) 철저(徹底)한 고승(高僧)의 그것과도 같이
뽀얗게 서리 앉은 머리 경건(敬虔)히 숙여
엄연(嚴然)하고 고고(孤高)하고 태연(泰然)한 너 해바라기의
줄기찬 자세(姿勢)여!
오! 불보다 태양(太陽)보다 빛보다 어둠보다
생명(生命)보다도 또 죽음보다도
더 두렵고 심각(深刻)한 너 해바라기의
속 모를 사랑의 연원(淵源)이여!
불멸(不滅)의 정열(情熱)이여!
오! 해바라기
너 정녕
태초(太初) 생명(生命)과 그 사랑을 더불어
영원(永遠) 상념(想念)의 원천(源泉)인 절대(絶對) 신비(神秘)한 대자연(大自然)!
생명(生命)의 핵심(核心)! 그 권화(權化)요 화신(化身)이 아니런가!
- [영문] 11(영남문학회.1953.11) -
공초는 40년 넘게 작품 활동을 했지만, 정작 쓴 시는 그리 많지 않았고 생전에 한 권의 시집도 내지 않았다. 그가 죽고 난 뒤 유고 시집이자 유일한 시집인 「공초 오상순 시선」이 나왔을 뿐이다. 그러나 관념적이며 언어의 미의식을 중시하지 않았다는 문학사의 일반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허무적 어조 뒤에 맹렬한 정열을 숨기고 있다.
등단 이후 줄곧 허무와 방랑의 삶을 살며 비록 허무를 관념적으로 노래했다고 하지만 오상순의 시는 다분히 역설적으로 이해해야 할 소지가 많다. 폐허의 현실을 감상적으로 진술하고 있는 시인의 많은 시에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생명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녹아 있다. 이러한 사실은 모든 사물이 그 본성을 회복하기를 염원하는 태도 때문이다. 오상순의 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허무적 색채와 종교적 깨달음은 그의 시가 지니는 한계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 사실에서 자신의 생애를 시와 일관되게 하려는 특별한 정신을 읽을 수 있다. 강한 종교적 성향을 바탕으로 허무의 궁극에 가닿으려고 했던 오상순은 우리 시문학사에서 시와 삶, 예술과 종교의 일치를 구현하려고 했던 드문 시인으로 기록된다.
☞오상순(1894 ~ 1963) : 호 공초(空超). 서울 출생. 경신학교(儆新學校)를 거쳐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종교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20년 김억(金億)·남궁 벽(南宮璧)·염상섭(廉想涉)·황석우(黃錫禹) 등과 함께 [폐허(廢墟)] 동인이 되고 처음으로 <시대고(時代苦)와 그 희생>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후 [폐허]를 통하여 계속 작품을 발표했는데, 초기시들은 주로 운명을 수용하려는 순응주의, 동양적 허무의 사상이 짙게 깔려 있다. 1924년 보성고등보통학교 교사, 1930년에는 불교중앙학림(佛敎中央學林:동국대학교 전신)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세월을 방랑과 담배연기, 고독 속에서 보냈다. 하루 담배 20갑을 피운 애연가로 전해진다. 1954년 예술원 종신회원에 선출되고 1956년 [예술원상], 1962년 [서울시문화상]을 수상했으며, 주요작품으로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 <방랑의 마음> <첫날밤> <해바라기> 등 50여 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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