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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결빙의 아버지 / 이수익

by 언덕에서 2013. 1. 7.

 

 

 

 

 

 

 

 

 

 

 

 

 

 결빙(結氷)의 아버지 

 

 

                                                 이수익(1942 ~  )



어머님,

제 예닐곱 살 적 겨울은

목조 적산가옥 이층 다다미방의

벌거숭이 유리창 깨질 듯 울어대던 외풍 탓으로

한없이 추웠지요, 밤마다 나는 벌벌 떨면서

아버지 가랑이 사이로 시린 발을 밀어 넣고

그 가슴팍에 벌레처럼 파고들어 얼굴을 묻은 채

겨우 잠이 들곤 했지요.

요즈음도 추운 밤이면

곁에서 잠든 아이들 이불깃을 덮어 주며

늘 그런 추억으로 마음이 아프고,

나를 품어 주던 그 가슴이 이제는 한 줌 뼛가루로 삭아

붉은 흙에 자취 없이 뒤섞여 있음을 생각하면

옛날처럼 나는 다시 아버지 곁에 눕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머님,

오늘은 영하의 한강교를 지나면서 문득

나를 품에 안고 추위를 막아 주던

예닐곱 살 적 그 겨울밤의 아버지가

이승의 물로 화신해 있음을 보았습니다.

품 안에 부드럽고 여린 물살은 무사히 흘러

바다로 가라고,

꽝 꽝 얼어붙은 잔등으로 혹한을 막으며

하얗게 얼음으로 엎드려 있던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 시집 <슬픔의 핵(核)>(고려원.1983)

 

 

 

 

 


 

술을 무척 좋아하셨던 분, 늘 다정다감하셨던 분, 지금 제 나이에 세상을 떠나신 분, 평생 가난이란 굴레를 어깨에 지고 사셨던 분…….  위의 사진 앞줄 맨 오른편에 서계신 분입니다.

 몇 달 전 꿈에서 뵈었는데 제 나이 또래여서 깜짝 놀랬습니다. 당연하지요. 제 나이 때 세상을 떠셨으니까……. 살아계셨더라면 이제 팔 십을 살짝 넘겼셨겠군요.

 모 방송국 다큐멘터리에서 혹한의 겨울을 견디며 새끼를 낳고 기르는 황제펭귄들의 자식 사랑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발등에 얹어 알을 옮기는 펭귄 부모의 모습과 넉 달 동안이나 굶주리며 제 안의 것까지 다 꺼내 자식을 거두어 먹이는 아버지 펭귄의 모습이 가슴 아팠습니다. 결국 우리의 아버지들은 모두 펭귄이었고, 지금 제 자신 또한 펭귄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노환으로 고통 받는 부모님을 둔 친구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돌아가신 후 후회하게 된다. 살아계실 때 손 한 번 더 잡아드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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