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詩)를 읽다

강릉바다 / 김소연

by 언덕에서 2015. 12. 4.

 

 

 

 

 

 

<사진 출처 : 내셔널지오그래픽>

 

 

 

 

 

강릉바다

 

                                                                                                          김소연(1967 ~ )

 

우리 다음 생애에 다시 만나면

이렇게 잘 닦여진 길 안에서 하염없이

걷고 걷고 또 걷고... 그러지 마요


길을 버리고 걸어가요

바다로 걸어 들어가요


넓은 앞치마를 펼치며

누추한 별을 헹구고 있는


나는 파도가 되어

바다 속에 잠긴 오래된

노래가 당신은 되어












주어의 위치를 살짝 비틀어 바꿈으로써 묘한 맛을 이끌어내는 마지막 두 줄이 압권인 아름답기 그지없는 시이다. 게다가 넓은 앞치마를 펼쳐서 누추한 별을 헹구는 정갈함에 온 몸이 전율한다.

  인간의 삶은 윤회(輪廻)한다. 인간의 삶이 윤회한다는 것은 석가의 가르침 이전인 힌두교에서부터 믿어왔던 것이고 그리스도교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신약, 구약성서에서 줄기차게 삐져나오는 사실들이다. 시인은 강릉바다를 보며 인간의 고독에 대하여 다음 생애를 연관시켜서 걷고 있다.

  이 시인은 인간내면의 바깥에 서 있는 존재의 절망과 고독과 소외의 의식을 보여준다. 자의식에 가까운 시인의 이러한 감정들이 서로 융합되고 상승하면서 전체적으로 이유를 알 수 없는 허무의 냄새를 불러일으킨다. 위의 시 '강릉바다'는 우선 바깥의 풍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그 바깥에서 내면으로 들어가는 모든 길은 끊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심은 완벽하게 폐쇄되어 있어 거기에 이르는 어떠한 길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 중심에서 밖으로 나오는 방법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김소연의 시에서는 안의 풍경을 비춰주는 어떠한 단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곳은 시인에게 있어 '알 수 없는 그 무엇'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시인에게 남아 있는 길은 그 주변 풍경이나마 온전히 그려내고 노래하는 일일 것이다. 그것은 끊어진 길 위에서 부르는 노래이기에 적조한 울림을 갖고 있다.(문학평론가 김진수) 」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장 위대한 관계, 사랑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아야겠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걷고 또 걸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잘 닦여진 길 안에서 걸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시를 읽고 난 다음부터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그러한 생각이야말로 너무 낡고 흔한 사랑법이라고 이 시는 말하고 있다. 이미 정해진 길을 쳇바퀴 돌 듯 따라가는 일은 다음 생애가 있고 그 다음 생애가 또 있는 바에야 너무 지겹고도 따분한 일이 아닐는지. 길을 버리고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일……. 조용하고 쓸쓸하며 앞이 확 트인 강릉 바다 앞에 서면 저도 누구라도 그런 사랑을 꿈꿀 것 아닌가.

'시(詩)를 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훈 / 그날이 오면  (0) 2022.08.15
안녕, 안녕 / 박남수  (0) 2015.12.08
결빙의 아버지 / 이수익  (0) 2013.01.07
나무가 말하였네 / 강은교  (0) 2012.12.31
성탄제 / 김종길  (0) 2012.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