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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겨울바다 / 김남조

by 언덕에서 2012. 12. 17.

 

 

 

겨울바다

 

                          김남조 (1927 ~ )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물 이랑 위에 불 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시집 <겨울 바다>(1967)-

 

 

 

 

 

 


 

 

겨울에 어울리는 시 한 수 올려봅니다. 몹시도 좌절했었던 젊은 시절의 어느날, 해변에서 이 시를 되풀이해서 웅얼거렸던 기억이 나네요.

 이 시는 겨울 바다가 주는 절망감과 허무 의식을 극복하고, 신념화된 삶의 의지를 그린 작품입니다. '물과 불'의 긴장된 대립으로 사랑과 삶의 생성과 소멸, 갈등을 보여 줍니다. 이 작품에서 '겨울 바다'는 삶의 끝이요, 죽음을 표상하는 동시에 인생의 시발점이 되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겨울 바다는 만남과 이별, 상실과 획득, 죽음과 탄생, 절망과 희망의 분기점이 되는 복합 심상이지요.

 소멸 이미지로서의 '불'과 생성 이미지로서의 '물'이 대립을 이루는 가운데, 이 시는 부정과 좌절, 대립과 갈등을 통해 깨달음과 긍정에 이르는 과정을 형상화한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이 시의 출발은 부재(不在)의 현실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시에서의 부재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죽고 없는 상태'이며, 다른 하나는 '진실의 동결(凍結)'입니다. 이런 부재의 현실로 인해 화자는 좌절을 느끼지만, '물 이랑 위에 불 붙어 있었네'에서 극적 전환을 이루며, 인고의 시간이 주는 삶의 의미를 깨달은 그는 사랑과 구원과 순명이라는 자기 긍정의 자세로 돌아서 구원의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미지의 새'는 곧, 그 어떤 진실의 실체로 시적 자아가 체험하지 못한 성스러움을 표상하고 있는 것으로서 그것이 상실된 겨울 바다는 죽음과 절망의 공간일 뿐입니다. 그 때 살 속을 파고드는 매운 해풍까지 불어 대기에 그간 자신을 지켜 주고 지탱하게 했던 사랑마저도 실패로 끝나는 삶의 좌절을 체험하는군요. 절망적인 현실 공간에 매운 해풍이라는 현실적 고난이 닥쳐옴으로써 인간은 더욱 비극에 빠지는 군요.

 그러나 삶의 고뇌에 몸부림치며 삶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의 갈등을 겪던 그는 사람은 누구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시간 속의 유한적(有限的) 존재라는 것과 지금 겪고 있는 괴로움은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치유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통해 긍정적 삶을 인식하기에 이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삶에 대해 경건한 자세를 가지게 된 화자는 허무와 좌절을 이겨내기 위한 뜨거운 기도를 올리며 영혼의 부활을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유한적 존재임을 분명히 자각하며 다시금 겨울 바다에 섰을 때, 그 곳은 이미 죽음의 공간이 아닌 소생의 공간이 되어 삶에 대한 뜨거운 의지가 커다란 물기둥같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쉬웠던 한 해에 연연하지 말고 다시 힘차게 숨을 쉬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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