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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집 감상

임화 시집 『현해탄』

by 언덕에서 2013. 4. 22.

 

임화 시집 『현해탄』

 

 

월북 시인 임화(林和.1908∼1953)의 시집으로 1938년 [동광당서점]에서 간행되었다. 이 시집에는 총41편의 시가 실려 있고, 주로 1934년 6월부터 1937년 사이에 쓰여진 시들로 묶여져 있다. 첫머리에 실린 「네거리의 순이」만이 이른바 ‘단편서사시’ 계열로서 1929년작일 뿐이다. 1934년은 임화가 지도적으로 이끌어나가고 있던 카프가 제2차 검거사건으로 와해의 길로 치닫던 때이며, 뿐만 아니라 국내의 민족해방운동이 일제의 탄압으로 극도로 위축되어가기 시작하던 때이기도 하다.

『현해탄』에 실린 시들은 이런 암흑기를 당한 임화의 심경을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다시 네거리에서」, 「암흑의 정신」, 「주리라 네 탐내는 모든 것을」 등 전반부의 주요 시편에서, 카프 해산 무렵의 패배의식 및 그것을 주관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시인의 관념이 짙게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집의 세계는 거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집 후반부에는 「현해탄」, 「해협의 로맨티시즘」, 「눈물의 해협」 등 주로 현해탄이라는 바다를 소재로 한 일련의 시들이 실려 있는데, 이들에서 임화는 현해탄이라는 바다를 오고가는 우리 청년의 운명을 구체적인 매개로 삼아 우리 민족의 역사적 운명을 노래함으로써, 주관적인 심정의 토로를 넘어서서 한층 정제된 서정성을 구현하고 있다. 흔히 이 시들은 정지용. 김기림 등의 바다를 소재로 한 시들과 함께 당대 지성인들의 ‘현해탄 컴플렉스’를 반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단순히 일본편향성에 매몰되어 있지는 않는 걸로 보인다.

 임화는 1947년에 월북했고, 1953년에 처형당했다.

 

해협의 로맨티시즘

 

아마 그는

일본 열도의 긴 그림자를 바라보는 게다.

흰 얼굴에는 분명히

가슴의‘로맨티시즘’이 물결치고 있다.

예술, 학문, 움직일 수 없는 진리 …

그의 꿈꾸는 사상이 높다랗게 굽이치는 동경(東京),

모든 것을 배워 모든 것을 익혀,

다시 이 바다 물결 위에 올랐을 때,

나는 슬픈 고향의 한 밤,

홰보다도 밝게 타는 별이 되리라.

청년의 가슴은 바다보다 더 설레이었다

 

- <현해탄>(동광당.1938> - 

 

  초기 임화의 작품들이 구체적인 인물의 등장을 통해 노동쟁의와 계급투쟁을 다루는 경향이 강했다면, <해협의 로맨티시즘>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모습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대신 유행에 민감하고 일본 잡지와 서적을 통해 근대적인 사상을 접하게 된 임화가 현해탄을 건너가서 새로운 문명을 배워 오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것은 그 시대의 지식인들이 조선의 식민지화를 조선의 미개성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관계가 깊다. 이것은 임화로 하여금 ‘현해탄 콤플렉스’라고 불리는, 일본의 근대에 대한 동경의 표현이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임화는 당대의 지식인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세계 자본주의의 흐름을 간파하는 폭넓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일방적인 서구 지향성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일본의 근대문화를 제국주의로 파악하는 측면에서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청년이 민족에 대한 각성을 이루면서도 민족이 겪고 있는 질곡의 해결책을 다시금 현해탄 건너의 일본에서 찾는 모습은 당시의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해 임화가 가지고 있었던 복잡한 심경과 의식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네거리의 순이

 

네가 지금 간다면, 어디를 간단 말이냐?

그러면, 내 사랑하는 젊은 동무,

너, 내 사랑하는 오직 하나뿐인 누이동생 순이,

너의 사랑하는 그 귀중한 사내,

근로하는 모든 여자의 연인……

그 청년인 용감한 사내가 어디서 온단 말이냐?

 

눈바람 찬 불쌍한 도시 종로 복판에 순이야!

너와 나는 지나간 꽃 피는 봄에 사랑하는 한 어머니를

눈물 나는 가난 속에서 여의었지!

그리하여 너는 이 믿지 못할 얼굴 하얀 오빠를 염려하고,

오빠는 가냘픈 너를 근심하는,

서글프고 가난한 그날 속에서도,

순이야, 너는 마음을 맡길 믿음성 있는 이곳 청년을 가졌었고,

내 사랑하는 동무는……

청년의 연인 근로하는 여자 너를 가졌었다.

 

겨울날 찬 눈보라가 유리창에 우는 아픈 그 시절,

기계 소리에 말려 흩어지는 우리들의 참새 너희들의 콧노래와

언 눈길을 걷는 발자국 소리와 더불어 가슴 속으로 스며드는

청년과 너의 따듯한 귓속 다정한 웃음으로

우리들의 청춘은 참말로 꽃다웠고,

언 밥이 주림보다도 쓰리게

가난한 청춘을 울리는 날,

어머니가 되어 우리를 따듯한 품속에 안아 주던 것은

오직 하나 거리에서 만나 거리에서 헤어지며,

골목 뒤에서 중얼대고 일터에서 충성되던

꺼질 줄 모르는 청춘의 정열 그것이었다.

비할 데 없는 괴로움 가운데서도

얼마나 큰 즐거움이 우리의 머리 위에 빛났더냐?

 

그러나 이 가장 귀중한 너 나의 사이에서

한 청년은 대체 어디로 갔느냐?

어찌된 일이냐?

순이야, 이것은……

너도 잘 알고 나도 잘 아는 멀쩡한 사실이 아니냐?

보아라! 어느 누가 참말로 도적놈이냐?

이 눈물 나는 가난한 젊은 날이 가진

불쌍한 즐거움을 노리는 마음하고,

그 조그만 참말로 풍선보다 엷은 숨을 안 깨치려는 간지런 마음하고,

말하여 보아라, 이곳에 가득 찬 고마운 젊은이들아!

 

순이야, 누이야!

근로하는 청년, 용감한 사내의 연인아!

생각해 보아라, 오늘은 네 귀중한 청년인 용감한 사내가

젊은 날을 부지런한 일에 보내던 그 여윈 손가락으로

지금은 굳은 벽돌담에다 달력을 그리겠구나!

또 이거 봐라, 어서.

이 사내도 네 커다란 오빠를……

남은 것이라고는 때묻은 넥타이 하나뿐이 아니냐!

오오, 눈보라는 `트럭'처럼 길거리를 휘몰아 간다.

 

자 좋다, 바로 종로 네거리가 예 아니냐!

어서 너와 나는 번개처럼 두 손을 잡고,

내일을 위하여 저 골목으로 들어가자,

네 사내를 위하여,

또 근로하는 모든 여자의 연인을 위하여……

 

이것이 너와 나의 행복된 청춘이 아니냐?

 

 - [조선지광] 82호(1929. 1) -

 

 현해탄을 매개로 하여 노래되는, 청년의 식민지 현실에 대한 자각과 그 극복을 위한 노력이 비극적인 표정을 짓고 있으며, 그 비극성은 현재의 패배를 미래의 승리로 승화시키려는 낭만적 열정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시집의 마지막에 실린 「바다의 찬가」를 두고 임화는 스스로 새로운 경향의 첫 출발점이라고 적고 있다. 이 시에서는 역사적 공간으로서의 현해탄 이미지가 사라지고, 바다 그 자체의 심상이 제시되면서 현실 속의 몸부림이 노래될 뿐이다. 이후 일제 말까지 임화의 시는 현실에 저항하는 모든 몸부림마저 잦아들고 있는 밤의 이미지에 지배당하게 되며, 역사적 전망은 사라지게 된다.

 

 

월북 시인 임화(林和.1908&sim;1953)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임화(林和. 본명 : 임인식(林仁植(1908.10.13∼1953.8.6) 는) 서울 낙산 출생으로 보성중학(普成中學) 중퇴 후, 잡지 [학예사(學藝社)] 주간을 거쳐 1926년 카프에 가입한 이래 조직 활동에서 줄곧 중추적 역할을 했다. 1932년 김남천(金南天) 등과 함께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한 후 서기장이 되었으며, 35년에는 카프 해소파의 주류를 형성, 카프 해산을 관철시키기도 했다. 8ㆍ15광복 이후에 그는 조선문학건설본부와 그 후신인 조선문학가동맹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후 이태준, 오장환, 임학수 등과 함께 월북하여 문학가동맹, 조소문화협회(朝蘇文化協會) 등에 관계하였으며, 1953년 남로당 숙청 때 이승엽 등과 함께 미제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처형되었다.

 임화는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내 주요 비평가이자 대표적인 시인이었다. 『현해탄』은 그의 첫 번째 시집이며 총 41편의 시가 실려 있다. 시인이 주도했던 카프가 1935년 공식적으로 해체된 이후 문학적으로 전향하는 시기와 출간이 맞물린다. 역사적으로는 일제의 식민정책이 강화되면서 민족해방운동이 더욱 힘들어진 때였다.

『현해탄』에 실린 시들은 일제 암흑기를 당한 임화의 심경이 주로 담겨 있다. 카프 해산 무렵의 패배의식 및 그것을 극복하려는 시인의 관념도 드러난다. 시인에게 문학은 현실의 변혁을 꾀할 수 있는 강력한 실천 방법 중 하나였던 셈이다.

 

시인 임화와 부인 소설가 지하련

 

 

 

 시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1929년 무렵부터로, 이때 그는 <우리 오빠와 화로><우산 받은 요코하마(橫濱)의 부두><네거리의 순이>와 같은 단편 서사시 계열의 시를 발표, 경향시가 지향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한, 카프를 중심으로 하는 그의 비평은, 조직론에서부터 창작방법론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걸쳐 가장 강력한 지도성을 발휘하였다. 시집 『현해탄』에는 주로 1934년부터 1937년 사이에 씌어진 임화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무렵은 한동안 위세를 떨치던 사회주의 운동이 일단 퇴조하고 그에 따라 임화가 열정적으로 활동을 펼쳤던 문학단체 카프(KAPF) 역시 2차 검거에 이어 해산을 맞은 시기이다. 이때 임화는 폐결핵에 걸려 검거를 모면하고 요양 생활에 들어갔다. 그래서 『현해탄』은 병석에서 카프의 해산을 맞은 임화의 비감한 심정에서 씌어지고 있다.

 

다시 네거리에서

 

지금도 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맞고 보내며,

전차도 자동차도

이루 어디를 가고 어디서 오는지.

심히 분주하다.

 

네거리 복판에 문명의 신식기계가

붉고 푸른 예전 깃발 대신에

이리저리 고개를 돌린다.

스텁 - 注意 - 꼬 -

사람,차, 동물이 똑 기예(敎練) 배우듯 한다.

거리엔 이것밖에 변함이 없는가?

 

낯선 건물들이 보신각을 저 위에서 굽어본다.

옛날의 점잖은 간판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그다지도 몹시 바람은 거리를 씻어갔는가?

붉고 푸른 <네온>이 지렁이처럼,

지붕 위 벽돌담에 가고 있구나.

 

오오, 그리운 내 고향의 거리여! 여기는 종로 네거리,

나는 왔다, 멀리 駱山 밑 오막살이를 나와 오직 네가 내가

보고 싶은 마음에......

 

넓은 길이여, 단정한 집들이여!

높은 하늘 그 밑을 오고가는 허구한 내 행인들이여!

다 잘 있었는가?

오, 나는 이 가슴 그득 찬 반가움을 어찌 다 내토를 할까?

나는 손을 들어 몇 번을 인사했고 모든 것에서 웃어 보였다.

번화로운 거리여! 내 고향의 종로여!

웬일인가? 너는 죽었는가, 모르는 사람에게 팔렸는가?

그렇지 않으면 다 잊었는가?

나를! 일찍이 뛰는 가슴으로 너를 노래하던 사내를,

그리고 네 가슴이 메어지도록 이 길을 흘러간 청년들의 거센 물결을,

그때 내 불쌍한 순이는 이곳에 엎더져 울었었다.

그리운 거리여! 그 뒤로는 누구 하나 네 위에서 청년을 빼앗긴 원한에 울지도 않고,

낯익은 행인은 하나도 지나지 않던가?

 

오늘밤에도 예전같이 네 섬돌 위엔 인생의 비극이 잠자겠지!

내일 그들은 네 바닥 위에 티끌을 주우며 ......

그리고 갈 곳도 일할 곳도 모르는 무거운 발들이

고개를 숙이고 타바타박 네 위를 걷겠지.

그러나 너는 이제 모두를 잊고,

단지 피로와 슬픔과 검은 절망만을 그들에게 안겨보내지는 설마 않으리라.

비록 잠잠하고 희미하나마 내일에의 커다란 노래를

그들은 가만히 듣고 멀리 문밖으로 돌아가겠지.

 

오오 정다웁고 그리운 고햐으이 거리여!

너는 내 귀한 동생 순이와 같이

그가 사랑한 용감한 이 나라 청년과 같이

노하고 즐기고 위하고 싸울 줄 알며 네 우를 덮은 검은 XX을 X 수처럼 XX하던

저 위대하고 아름다운 청년들의 발길을 대체 오늘날까지 몇 사람이나 맞고 보내는가

고향의 거리여...... 나는 지금

네 우에서 한 사람의 낯익은 얼굴도 찾을 수가 없다.

 

간판이 죽 매어달렸던 낯익은 저 二階 지금은 신문사의 흰旗가 죽지를 늘인 너른 마당에,

장꾼같이 웅성대며, 확 불처럼 흩어지던 네 옛 친구들도

아마 대부분은 멀리 가버렸을지도 모를 것이다.

그리고 순이의 어린 딸이 죽어간 것처럼 쓰러져갔을지도 모를 것이다.

허나, 일찍이 우리가 안 몇 사람의 위대한 청년들과 같이.

진실로 용감한 영웅의 단(熱한) 발자국이 네 위에 끊인적이 있었는가?

나는 이들 모든 새 세대의 얼굴을 하나도 모른다.

그러나 < 정말 건재하라! 그대들의 쓰린 앞길에 광영이 있으라> 고.

원컨대 거리여! 그들 모두에게 전하여다오!

잘 있거라! 고향의 거리여!

그리도 그들 청년들에게 은혜로우라,

지금 돌아가 내 다시 일어나지를 못한 채 죽어가도

불쌍한 도시! 종로 네거리여! 사랑하는 내 순이야!

나는 뉘우침도 부탁도 아무것도 유언장 위에 적지 않으리라.

 

- <현해탄>(동광당.1938> -

 

 카프 해산 이후 임화의 시적 관심은 ‘식민지 청년의 운명’이란 데로 모아지는데, 이를 형상화하기 위해 선택된 제재가 바로 ‘현해탄’이다. 시집 『현해탄』 역시 ‘현해탄이라는 바다의 이상한 운명’으로 수렴되는 식민지 청년의 싸움과 운명을 주로 노래하고 있다. 실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식민 본국인 일본으로 건너가지 않을 수 없는 식민지 조선의 청년에게 식민지 현실에 대한 뼈아픈 인식을 매개해주는 것이 바로 현해탄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청년은 억압받는 식민지 민중의 현실에 대해서도 자각하고 민족해방에의 염원을 키웠다. 그 길은 그러나 평탄한 길이 아니라 온갖 시련에 노출된 고난에 찬 길이다. 당연히 청년의 심정은 비장하지 않을 수 없다.

 

 

현해탄 

 

 

이 바다 물결은

 

예부터 높다.

 

 

그렇지만 우리 청년들은

 

두려움보다 용기가 앞섰다.

 

산불이

 

어린 사슴들을

 

거친 들로 내몰은 게다.

 

 

대마도를 지나면

 

한가닥 수평선 밖엔 티끌 한 점 안 보인다.

 

이곳에 태평양 바다 거센 물결과

 

남진(南進)해온 대륙의 북풍이 마주친다.

 

 

몬푸랑보다 더 높은 파도.

 

비와 바람과 안개와 구름과 번개와.

 

아세아(亞細亞)의 하늘엔 별빛마저 흐리고.

 

가끔 반도엔 붉은 신호등이 내어걸린다.

 

 

아무러기로 청년들이

 

평안이나 행복을 구하여.

 

이 바다 험한 물결 위에 올랐겠는가?

 

 

첫번 항로에 담배를 배우고.

 

둘쨋번 항로에 연애를 배우고.

 

그 다음 항로에 돈맛을 익힌 것은.

 

하나도 우리 청년이 아니었다.

 

 

청년들은 늘

 

희망을 안고 건너가.

 

결의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들은 느티나무 아래 전설과.

 

그윽한 시골 냇가 자장가 속에.

 

장다리 오르듯 자라났다.

 

 

그러나 인제

 

낯선 물과 바람과 빗발에

 

흰 얼굴은 찌들고,

 

무거운 임무는

 

곧은 잔등을 농군처럼 굽혔다.

 

나는 이 바다 위

 

꽃잎처럼 흩어진

 

몇 사람의 가여운 이름을 안다.

 

 

어떤 사람은 건너간 채 돌아오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돌아오자 죽어갔다.

 

어떤 사람은 영영 생사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아픈 패북(敗北)에 울었다.

 

 

--- 그 중엔 희망과 결의와 자랑을 욕되게도 내어판

 

이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지금 기억코 싶지는 않다.

 

 

오로지

 

바다보다도 모진

 

대륙의 삭풍 가운데

 

한결같이 사내다웁던

 

모든 청년들의 명예와 더불어

 

이 바다를 노래하고 싶다.

 

 

비록 청춘의 즐거움과 희망을

 

모두 다 땅속 깊이 파묻는

 

비통한 매장의 날일지라도.

 

한번 현해탄은 청년들의 눈앞에.

 

검은 상장(喪章)을 내린 일은 없었다.

 

 

오늘도 또한 나젊은 청년들은

 

부지런한 아이들처럼

 

끊임없이 이 바다를 건너가고. 돌아오고.

 

내일도 또한

 

현해탄은 청년들의 해협이리라.

 

 

영원히 현해탄은 우리들의 해협이다.

 

 

삼등 선실 밑 깊은 속

 

찌든 침상에도 어머니들 눈물이 배었고.

 

흐린 불빛에도 아버지들 한숨이 어리었다.

 

어버이를 잃은 어린아이들의

 

아프고 쓰린 울음에

 

대체 어떤 죄가 있었는가?

 

나는 울음소리를 무찌른

 

외방 말을 역력히 기억하고 있다.

 

 

오오! 현해탄은. 현해탄은.

 

우리들의 운명과 더불어

 

영구히 잊을 수 없는 바다이다.

 

 

청년들아!

 

그대들은 조약돌보다 가볍게

 

현해(玄海)의 큰 물결을 걷어찼다.

 

그러나 관문해협 저쪽

 

이른 봄바람은

 

과연 반도의 북풍보다 따사로웠는가?

 

정다운 부산 부두 위

 

대륙의 물결은.

 

정녕 현해탄보다도 얕았는가?

 

 

오오! 어느 날

 

먼먼 앞의 어느 날,

 

우리들의 괴로운 역사와 더불어

 

그대들의 불행한 생애와 숨은 이름이

 

커다랗게 기록될 것을 나는 안다.

 

일팔구0년대(一八九0年代)의

 

 

일구이0년대(一九二0年代)의

 

일구삼0년대(一九三0年代)의

 

일구사0년대(一九四0年代)의

 

일구 XX년대(一九 XX年代)의

 

.............

 

 

모든 것이 과거로 돌아간

 

폐허의 거칠고 큰 비석 위

 

새벽별이 그대들의 이름을 비출 때,

 

현해탄의 물결은

 

우리들이 어려서

 

고기떼를 쫓던 실내(川)처럼

 

그대들의 일생을

 

아름다운 전설 가운데 속삭이리라.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이 바다 높은 물결 위에 있다.

 

- <현해탄>(동광당.1938> -

 

 시집 『현해탄』의 이러한 성격이 가장 잘 집약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이 시이다. 현해탄의 물결은 예부터 높고 험하지만, 두려움보다 용기가 앞선 우리 청년들은 끊임없이 이 바다를 건너가고 돌아온다는 것, 평안이나 행복을 구하여 오고간 것이 아니라 "늘 희망을 안고 건너가 결의를 가지고" 돌아온다는 것, 그리하여 바다보다도 모진 대륙의 삭풍 가운데서 꽃잎처럼 흩어져 가지만 이들의 괴로운 역사와 불행한 생애는 언젠가 아름다운 전설이 되리라는 것 등이 장엄하게 노래되고 있다. 우리 근대 시사에서 민족해방투쟁에 나선 식민지 청년들의 운명을 이 시/시집만큼 장엄하게 형상화한 시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임화는 80여편 가까운 시와 200편이 넘는 평론을 남긴 현대시사와 비평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문학의 예술성보다는 적극적인 현실성을 추구하여, 정치적 이념과 계급적 현실개혁에 문학을 복무시키고자 했다. 진보적 좌익의 이론 비평과 지도 비평에서 그의 활동이 두드러지나, <우리 오빠와 화로> 등의 작품으로 대표되는 시작(詩作)에서도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