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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집 감상

사후에 출간된 이상(李箱) 김해경의 시집 『이상(李箱) 선집』

by 언덕에서 2013. 3. 25.

 

 

사후에 출간된 이상(李箱) 김해경의 시집 이상(李箱) 선집

 

 

 

 

 

시인ㆍ소설가인 이상(李箱)의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으로 이상(李箱)은 필명이다.  서울 출생인 그는 1929년 경성 보성고보를 거쳐 1930년 경성고등공업 건축과를 졸업한 후 총독부 건축기수가 되었다.

 이상(李箱)은 1937년, 생을 마감하기까지 자신의 시나 소설을 책으로 묶어서 출간한 적이 없다. 『이상 선집』은 사후에 시인 김기림에 의해 [백양당]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219면 분량에 소설 3편, 시 9편, 수필 6편이 수록돼 있다.

 김기림은 서문을 쓰면서 이상(李箱)에 대해 “무슨 싸늘한 물고기와도 같은 손길이었다. (중략) 나는 곧 그의 비단처럼 섬세한 육체는 결국 엄청나게 까다로운 그의 정신을 지탱하고 섬기기에 그처럼 소모된 것이리라 생각했다”고 썼다. 이 선집은 이후 임종국, 이어령, 김윤식, 이승훈, 김주현, 권영민 등의 이상 전집 출간 작업에 단초를 제공했다.   

 

 

 

 

 

 처음에는 시로부터 출발하여 1934년 9월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烏瞰圖)> 등을 발표해서 난해시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문제작품인 단편소설 <날개>를 발표한 것이 1936년 9월 [조광(朝光)]지였는데, 여기에서 다시 소설로서의 난해한 작품을 내놓게 되었다. 결국 그는 1936년대를 전후해서 세계적으로 유행된 자의식 문학시대(自意識文學時代)에 있어 이 땅의 대표적인 자의식의 작가였다. <날개>는 이른바, 심리주의적인 사실주의 수법에 의해 그 자의식의 세계를 추묘(追描)한 작품이었다. 같은 계열에 속하는 작품으로 다시 <종생기(終生記)>(1937) <실화(失花)>(1939) 등 많은 단편ㆍ시ㆍ수필이 있다.

 본래 신경질적인 성격에다가 심한 폐결핵이었던 그는 시대적인 지성적 고민에서 의식적으로 자기 학대를 감행하여 사생활에 있어서도 거의 자포자기로 떨어졌는데, 자신도 그 점을 반성하고, 1939년에 일본에 건너가 갱생을 시도했으나, 결국 28세로 요절했다. 묘지는 서울 미아리 공동묘지로 알려져 있다.

 1957년 80여 편의 전 작품을 수록한 <이상 전집(李箱全業)> 3권이 간행되었는데 구성은 다음과 같다. 오늘 소개하는 부분의 책은 시편이다.

 

■ 소설편 : 날개 / 지주회시 / 종생기 / 환시기 / 실화

■ 시편 : 오감도 초 / 수염 / BOiteux.Boiteuse / 삼차각설계도 초 / 이런 시 / 거울 / 지비정식 / 명경 / 역단 / 이유 이전 / 척각 / 회한의 장

■ 수필편 : 산촌 여정 / 조춘 점묘 / 병상 이후 / 약수 / 행복 / 19세기식 / 공포의 기록 / 권태

 

 

오감도(烏瞰圖)

 

-詩 제1호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오.

(길은막달은골목이適當하오.)

 

第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四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五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六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七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八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九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十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十三人의兒孩는무서운兒孩와무서워하는

兒孩와그러케뿐이모였소.

(다른事情은업는것이차라리나앗소)

 

그中의一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좃소.

그中의二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좃소.

그中의二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좃소.

그中의一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좃소.

(길은뚤닌골목이라도適當하오.)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지아니하야도좃소.

 

-「조선중앙일보」(1934. 7. 24)-

 

 

 [조선과 건축]에 발표된 그의 초기 시편들은 주로 일본어로 씌어져 있는데, 내용이나 형식이 실험적이고 이색적이어서 당시의 문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미 그에게는 전통적 문학의 계승이니, 혹은 그 정서적 바탕 위에서 언어를 갈고 닦는 등 서정의 맛은 없었다, 숫자와 기하학적(幾何學的) 낱말, 그리고 관념적 한자언어로 구성된 극히 난해한 문학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 난해한 문학이야말로 그가 22세에 시도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의식세계에 대한 내시적 추구였으며, 지금도 일부의 추종자 또는 그 유사한 시도자들을 낳고 있는 결과를 초래했다.

 

꽃나무

 

벌판한복판에 꽃나무하나가있소. 근처(近處)에는꽃나무가하나도없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열심(熱心)으로생각하는것처럼열심으로꽃을피워가지고섰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 

 

나는막달아났소. 

 

한꽃나무를위(爲)하여그러는것처럼나는참그런이상스러운흉내를내었소.

 

- [가톨릭 청년] 2호(1933년 7월호) -  

 

 1933년 폐결핵에 의한 각혈로 총독부 기수직을 버리고 황해도 배천(白川) 온천으로 요양을 갔다가 기생 금홍을 알게 된 그는 금홍과 함께 서울로 돌아와 백부가 물려준 통인동(通仁洞) 집을 처분, [제비]라는 다방을 차렸다. 이 무렵부터 격심한 고독과 절망, 그리고 자의식에 침전돼 수염과 머리를 깎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기도 하고, 온종일 어둠침침한 방에 박혀 술만 마시기도 하였다.  

 1934년 난해(難解)의 극을 이루는 대표작 시 <오감도(烏瞰圖)>를 [조선중앙일보] 학예란에 연재, 항의와 투서가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신문사로 날아들었다. 다방ㆍ카폐 등의 잇단 시업 실패와 병고로 말미암아 그는 이미 정신적 황폐를 겪고 있었고, 몸도 극도로 쇠약해졌다. 그는 아우 운경(雲卿)의 청소부 봉급으로 생활을 지탱해 갔으며, 셋방을 전전, 방세를 못 내 거리로 쫓겨나기도 했다.

 

이런 시(詩)

 

역사(役事)를하노라고 땅을파다가 커다란돌을하나 끄집어 내어놓고보니 도무지어디서인가 본듯한생각이 들게 모양이생겼는데 목도(木徒)들이 그것을메고나가더니 어디다갖다버리고온모양이길래 쫓아나가보니위험하기짝이없는 큰길가더라.

 

그날밤에 한소나기하였으니 필시그들이깨끗이씻겼을터인데 그이튿날가보니까 변괴(變怪)로다 간데온데없더라. 어떤돌이와서 그돌을업어갔을까 나는참이런 처량한생각에서 아래와같은작문을지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수없소이다. 내차례에 못올 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생각하리라. 자그러면 내내어여쁘소서."

 

어떤돌이 내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것만같아서 이런시는그만찢어버리고싶더라.

 

- [가톨릭 청년] 2호(1933.7) -

 

 그는 1930년대 후반에 유행된 자의식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히며, 우리나라 최초로 심리주의 적인 수법으로 자의식의 세계를 묘사했다. 그는 독특한 위트와 패러독스로 근대적 자의 의식을 강렬하게 옹립하고 나섰으며, 그의 자의식의 특이한 점은 작중 인물 등이 자의식의 실의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그는 심리주의 기법에 의해 내면세계를 다룬 초현실주의 기법과 심리주의 경향의 난해한 실험적인 작품을 썼는데, 이와 같은 경향은 시와 소설에서 공통된다.

 

거울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잽이요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잽이요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事業)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 [가톨릭청년](1933. 10)-

 

 

 그의 문학적 특징은 ‘난해하고 자기중심적이며 피해 망상적인 데’ 있으며, 그의 세계는 ‘당대의 세기말적 위기감으로부터 우러나온 현대인의 고민을 천재적 재능을 빌어 표출한 것’이라는 찬사와 ‘자기기만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혹평 속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오감도>에서 거의 무모할 정도로 대담한 언어를 실험한다든지, 그 외의 작품에서는 아라비아 숫자나 고등 대수의 수식까지도 사용했다.

 그의 초현실주의 시들은 몽환의 분위기와 의식의 착란이라고 하며, 이상의 이런 시작 태도는 당대에 심한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나 문학의 특징이 개성화에 있다고 한다면, 그의 문학적 특징이 시대의 선구자적 역할을 한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가정(家庭)   

 

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른다.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않나.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침(鍼)처럼월광(月光)이묻었다.우리집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수명(壽命)을헐어서전당(典當)잡히나보다.나는그냥문(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렸다.문(門)을열려고안열리는문(門)을열려고.  

 

- [가톨릭청년](1936. 2) -

 

 1930년대 한국문학의 장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상(李箱)의 시ㆍ소설ㆍ수필 등의 문자 행위이다. 그의 기하학적인 두뇌에 의한 언어의 유희와 어둠의 인식은 가히 천재적이라 할 만하며, 그의 그러한 실험은 모든 작가들의 파수병적(把守兵的)인 존재라는 의미를 지닌다.

 <오감도>가 연재 중단되었을 때 ‘남보다 수십 년씩 떨어져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고 했던 그의 분노는 그가 동경(東京)서 띄운 김기림(金起林)에게의 편지에서 ‘암만해도 나는 19세기와 20세가 틈바구니에 끼여 졸도(卒倒)하려 드는 무뢰한인가 보오’라는 고백으로 연결된다. 그의 유클리드 기하학의 추상성(抽象性)에의 절망을 기호화한 20세기적일 수도 있었던 세계의 바로 옆에는 그에 대응되는 19세기로서의 생활의 세계가 놓이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성 및 사회성의 인식을 중시하게 되면, 그의 산문이 더욱 난해할 수 있다. 그것은 식민지의 어둠 속에서 20세기는커녕 19세기도 벅찬 현실이었던 엄연한 사실에 대한 인식의 성장에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