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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집 감상

이육사(李陸史) 유시집(遺詩集)『육사시집(陸史詩集)』

by 언덕에서 2013. 5. 6.

 

 

 

 

이육사(李陸史) 유시집(遺詩集)『육사시집(陸史詩集)

 

 

 

 

 

독립투사·시인 이육사(李陸史,1904∼1944)의 유시집(遺詩集)으로 4ㆍ6판. 70면이며 서울출판사에서 발행했다. 1946년 유작(遺作) 20여 편을 모아 신석초(申石艸) 등 문우들이 발간했다.

‘광야’ ‘청포도’ ‘절정’ ‘교목’ ‘꽃’ 등 시인의 훌륭한 시적 성취를 보여주는 작품이 담겼다. 극한 상황을 부각시키는 비장미와 고결한 지사적 정신, 미래에 대한 희망, 절제된 형식과 호방한 기상 등을 고루 갖추고 있다. 이육사는 한용운·이상화·윤동주·심훈 등과 함께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 저항시인의 한 사람으로 직접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다른 시인과 구별된다. 시인이 순국한 지 2년 뒤 동생 이원조에 의해 서울출판사에서 초간본이 간행됐다. 70면에 총 20편의 시를 수록했다. 당시 『육사시집』의 정가는 40원이었고, 장정은 후에 월북한 화가 길진섭이 맡았다.

 

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및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문장] 7호(1939년 8월호) -

 

 이 시집에 수록된 작품 중에는 <청포도><황혼> 등 향토적인 정경을 그린 서정적인 작품이 있는가 하면 <광야><절정> 등 강인한 신념과 지조로 일관되었던 독립에의 절규를 노래한 시도 들어 있다. 문우 4명의 공동으로 된 서문을 보면 저자의 인간상과 시의 배경을 좀더 이해할 수가 있다. 곧, “실생활의 고독에서 우러나는 것은 항상 무형한 동경이었다. 그는 한평생 꿈을 추구한 사람이다. 시가 세상에 묻히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안타까이 공중에 그린 무형한 꿈이 형태와 의상(衣裳)을 갖추기엔 고인(故人)의 목숨이 너무 짧았다.”고 하였듯이 그는 17번이나 투옥된 끝에 1943년 6월, 베이징으로 압송 도중 40세의 일생을 끝마치고 말았다.

 

절정(絶頂)

 

 매운 계절(季節)의 채쭉에 갈겨

 마츰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리빨 칼날진 그 우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문장] 12호(1940년 1월호)-

 

 육사(陸史)라는 호는 그가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좌되어 3년형을 치를 때의 수인(囚人) 번호가 264번이어서 ‘육사’로 택하였다는 말이 있다.

 이 <육사시집>은 그 후 1956년 재간본(再刊本)이 나왔고, 생존했다면 그의 환갑이 되는 1964년에는 그의 큰조카 이동영(전문대 교수)이 신석초, 이효상, 조지훈 등의 협조를 얻어 <청포도>라는 이름으로 재중간(再重刊), 1971년에는 작품연보에서 밝히지 못한 연대를 밝혀내고, 종전 시집에 수록되지 않았던 작품을 추가하여 <광야>라는 제목의 시집으로 발간되었다.

 

 

독립투사 ·시인 이육사(李陸史, 1904∼1944 )

 

 

 

 이육사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이황(李滉)의 14세손으로, 조부인 이중식(李中植)에게서 한학을 배우고, 조부가 연 예안(禮安)의 보문의숙(寶文義塾)에서 신문학을 수학했다. 1925년 대구에서 [의열단]에 가입한 후 일본, 북경 등지를 갔다가 귀국한 1927년부터 3년간 옥고를 치르고 출옥하여, 1930년 북경으로 가서 북경대학 사회학과를 마쳤다.

 1933년 귀국하여 최초의 시작품 <황혼>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했다. 1933년부터 1941년까지 9년간에 걸쳐 시, 한시(漢詩) 외에도 논문ㆍ번역ㆍ시나리오ㆍ수필 등을 발표했고, 1937년 [자오선] 동인으로 활동했다.

 1943년 중국으로 갔다가 귀국하여 동대문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북경으로 압송되어 1944년 옥사(獄死)했다.

 

자야곡(子夜曲)

 

수만 호 빛이래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리라

 

슬픔도 자랑도 집어삼키는 검은 꿈

파이프엔 조용히 타오르는 꽃불도 향기론데

 

연기는 돛대처럼 내려 항구에 들고

옛날의 들창마다 눈동자엔 짜운 소금이 저려

 

바람 불고 눈보래 치잖으면 못 살리라

매운 술을 마셔 돌아가는 그림자 발자취 소리

 

숨막힐 마음 속에 어데 강물이 흐르뇨

달은 강을 따르고 나는 차디찬 강 맘에 드리라

 

수만 호 빛이래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리라

 

 - [문장] 23호(1941. 4) -

 

 이 시집의 수록 작품은 <황혼><청포도><노정기(路程記)><연보(年譜)><절정><아편(雅片)><나의 뮤-즈><교목(喬木)><아미(娥眉)><자야곡(子夜曲)><호수><소년에게><강 건너 간 노래><파초><반묘(斑猫)><독백><일식><해후><광야><꽃> 등 20편의 시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육사의 동생 원조는 발문에서 육사의 요절을 비탄하고, 천년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노래를 목놓아 부르게 될 날을 기다리면서 육사 생전의 친우들과 함께 산고(散稿)를 모아 엮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신석초ㆍ김광균 등이 그들의 공동 서문에서, “실생활의 고독에서 우러나온 것은 항시 무형한 동경이었다. 그는 한평생 꿈을 추구한 사람이다. ……육신은 없어지고 그의 생애를 조각한 비애가 맺은 몇 편의 시가 우리의 수중에 있을 뿐”이라고 하였듯이, 시집에 수록된 시편들은 구국항일투쟁으로 신산(辛酸)하였던 육사의 생애가 요약되어 있다.

 

 

광야(曠野)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유고시집 `<육사시집(陸史詩集)>(서울출판사.1946)-

 

 육사의 시집은 이후 범조사에서 재판본(1956)이 나온 것을 비롯하여 <이육사전집>(1986)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이러한 작업 끝에 시작품 33편, 한시 3편, 소설 3편, 문학평론 및 서평 7편, 수필 10편, 시론(時論) 9편, 방문기 2편, 서간문 3편, 잡저 3편 등과 같이 대량 증보되고 있다. 육사의 시는 원초적 가열성(苛烈性)과 시적 공간의 확대를 특징으로 들 수가 있다.

 

 

이육사 생가

 

 

 이것은 그가 광활한 중국 대륙을 내왕하면서 익혀진 공간 의식과, 자신의 내부에 깔고 있는 수사법과, 독립투사로서 일제에 대한 부단한 저항정신이 점화되어 발생한 분노와, 그의 강한 의지력의 표상에서 온 것이다. 요컨대, 육사로서는 민족 수난에 대한 울분과 그것을 극복한 민족의 미래에 대한 동경을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