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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야간열차 / 이수익

by 언덕에서 2012. 11. 19.

 

 

 

야간열차

 

                                   이수익 (1942 ~  )

 

침목(枕木)이 흔들리는 진동을 머얼리서

차츰

가까이

받으면서,

들판은 일어나 옷을 벗고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뜨거운 열기를 뿜으며

어둠의 급소를 찌르면서 육박해 오는

상행선

야간열차.

 

주위는 온통 절교한 침묵과

암흑의

바다였다.

 

드디어 한 가닥 전류와 같은 관통이

풀어헤친 들판의 나신을 꿰뚫고 지나가는 동안

황홀해진 들판은 온몸을 떨면서

다만 신음뿐인,

올가즘에

그 최후의 눈마저 뜨고 있더니

 

열차가 지나가고

다시 그 자리에 소름끼치는 두 시의 고요가

몰려들기 시작할 무렵엔

이미 인사불성의 혼수에 빠져 있었다.

 

 

 

 

 - 시집 <야간열차(夜間列車)>(예문관.1978)

 

 

 

 

 

 


 

에릭 파이가 쓴 여행 에세이 <야간열차>가 생각납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행을 통해 자신의 숨은 열정을 일깨우고 정신의 방랑을 즐겼던 수많은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었지요. 프란츠 카프카, 스콧 피츠제럴드를 비롯해 국내에서는 생소한 작가들, 가령 러시아 신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빅토르 펠레빈이라든가, 알바니아의 이스마일 카다레에 이르기까지 문학.영화.역사 전반에 대한 작가의 왕성한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은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무의미한 풍경에 예기치 못했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독창적인 시선과 해석을 통해 차창 밖 풍경은 현대 문명의 다층적인 모습을 담고 있는 역동적인 활동사진으로 변합니다.

 <야간열차> 안에선 그렇듯 순간적이고 덧없는 일들이 미세하게 다른 모습으로 끊임없이 되풀이되곤 했습니다. 떠나온 역에 대한 기억은 반 이상 지워졌지만, 다가오는 역에 대해선 통 짐작도 할 수 없는 상태. 벵골어로는 ‘어제’와 ‘내일’을 가리키는 말이 똑같다더니, 철로 위에선 현재가 과거나 미래와 똑같은 간격을 둔 채 끊임없이 나타나고 사라집니다. 일상적인 시간관념으로 파악할 수 없는 시간, 줄타기 곡예를 하는 시간이랄까. 멋모르고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었을, 그러니까 잠을 못 자서 큰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그 불면의 순간에, 희한하게도 마음 깊은 곳에서 왠지 모를 기쁨이 샘솟는 것을 느끼곤 했지요. 하긴, 에밀 시오랑도 말하지 않았던가요.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작가가 되지 않았을 거라고, 그럴 때마다 어두운 밤거리를 헤매며 황홀경에 빠지곤 했다고, 낮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세상사의 부질없음을 온몸으로 느끼곤 했다고. 심지어 그는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잘 잠 다 자고 보낸 일 년보다 잠 못 이루고 보낸 하룻밤 사이에 배우는 게 더 많다.”

 역이나 대합실의 규모와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 욕구 사이에는 분명히 상관관계가 있었나 봅니다. 큰 역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입니다. 왜 떠나지 못하는 걸까? 왜 개들만 숲의 부름에 따르는 걸까? 개보다 더 잘 사육된 인간이여, 제 목을 죄고 있는 사슬을 끊지 못하는 한심한 인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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