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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추억 속 성장소설 『불타는 신록』과 두 편의 영화

by 언덕에서 2012. 9. 26.

 

 

추억 속 성장소설 『불타는 신록』과 두 편의 영화

 

 

 

 

『불타는 신록』은 여류소설가 구혜영이 1972년 바오로출판사를 통해 초판 간행한 이 작품은 초판년도에서 보듯이 박정희 철권정치가 절정이던 1970년대의 하이틴 로맨스류 소설이다. 1971년 ~ 1972년 월간지 <여학생>에 연재되었던 소설로 1972년 성바오로 출판사에서 출간되었고, 1979년 어문각에서 재출간되었다.

 1975년 <여고졸업반>으로, 1984년 <불타는 신록>이란 다른 제목으로 영화로 제작되었다. 어이없는 규율과 제도 속에 가두어 진 불타는 신록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운 청춘을 색 바래져 버리게 하지 않는 잔잔한 이야기가 여운을 남게 만드는 청춘 순정소설이요 성장소설이다. 뜨거운 사랑이란 열병을 앓은 후 성숙한 여인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철없는 17살 여학생의 때묻지 않은 마음과 이를 지켜주는 교사의 배려가 테마가 되었다.

 

 

영화 [여고졸업반], 1975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서울에서 어머니 병환의 휴양을 위해 외삼촌 친구 김 박사의 별장이 있는 을포로 내려온 여고 2년생 유시내는 을포여고로 전학한다. 시내의 긴 머리와 의상은 생활지도부 선생의 경계와 급우들의 질투의 대상이 되나 담임 현기목 선생의 배려로 학교생활에 전념하게 된다. 급기야 시내에게 담임 선생님을 향한 사모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급우들에 의한 질투와 항의는 현 선생이 사표를 쓰고 시내가 다시 서울로 전학하려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제자를 향한 현 선생의 순수한 사랑과 어머니의 가발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길었던 시내의 효심을 안 급우들은 현 선생의 사직과 시내의 전학을 만류, 감동의 화합을 한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시내의 감정이 스승 이상의 것임을 안 현 선생은 동료교사와 약혼을 한다. 현 선생은 시내에게 자신은 젊음의 뿌리를 내릴 때까지의 바람막이의 가한 사람이라고 하며 젊음 속에서 밝게 성장할 미래를 위해 노력하라고 격려해준다.

 

소설가 구혜영(具暳瑛.1931-2006)

 

 구혜영(具暳瑛.1931-2006) 작가는 인간에 내재한 사랑의 욕구와 질곡(桎梏) 속에 갇힌 인간정신의 해방, 그 영혼의 구원을 추구하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6ㆍ25의 전란이 가라앉고 서울 수복과 함께 싹트기 시작한 전후문학에 가장 먼저 뛰어든 여류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수많은 작품을 저술했으면서도 여류작가가 흔히 남녀의 애정문제를 다룰 때 빠지기 쉬운 값싼 감상주의의 자취를 조금도 찾아볼 수 없도록 하는, 여유와 인격적인 안목을 지니고 있는 작가다.

 그의 작품은 인간에 내재한 사랑의 욕구와 질곡 속에 갇힌 인간 정신의 해방, 영혼의 구원을 추구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특히 남녀의 애정문제를 주로 다루었는데, 이러한 문제를 다룸에 있어 지나치게 개방적이지도 않으면서 또한 고루한 보수성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남녀의 애정 문제에 있어 중요한 것은 인간 본연의 자세로서의 사랑이며, 자유로운 인간성에 어긋나는 모든 굴레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 구혜영의 애정소설이 담고 있는 주제이다.

 

 

영화 [여고졸업반], 1975

 

   

영화 [불타는 신록], 1984

 

 

 성장 소설은 유년기에서 소년기를 거쳐 성인의 세계로 입문하는 한 인물이 겪는 내면적 갈등과 정신적 성장,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각성의 과정을 주로 담고 있는 작품들을 지칭한다. 자연히 이야기의 주된 내용은 지적 · 도덕적 · 정신적으로 미숙한 상태에 있는 어린아이 혹은 소년의 갈등이 중심을 이루며, 그가 자아의 미숙함을 딛고 일어서 자신의 고유한 존재가치와 세계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이 깨달음의 과정을 문화인류학자나 신화 비평가들은 ‘통과제의’, ‘통과의례’, ‘성인입문식’ 등등의 용어로 표현한다).

 

 

 

 

 

  <불타는 신록>은 1970년대 중반 하이틴영화 붐이 일어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다. 1975년 김응천 감독이 발표한 작품 <여고 졸업반>은 이 소설을 영화화하여 그해 8월 서울/허리우드, 부산/국도극장 등에서 개봉하여,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당시, 10대였던 여배우 <임예진>이 이 영화 한 편으로 10대들의 우상이 되었으며, 이후 수많은 하이틴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영화속 주제가들이 히트하였으며 특히 김인순의 <여고졸업반>은 1975년 가요계 최고의 히트곡으로 기록되었다. 박정희의 독재정치가 절정이었던  1970년대 한국영화계는 <청소년>과 호스테스>들이 영화계를 먹여 살렸다. 구혜영 원작의 <불타는 신록>을 영화화한 <여고졸업반>은 1980년대 중반, <불타는 신록>이라는 소설 원제대로 <조용원> 주연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하였다.

 

 

 

 

 

 한 인물의 생애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성장 소설은 '자전적 소설'과 유사한 면이 많지만 한 개인적 삶의 느슨한 기록이라기보다는 성인으로 입문하기 전의 시기와 그 시기의 갈등을 중점적으로 다룬다는 점, 그러한 이유로 인해 작가의 개인적 체험과 개인사가 비교적 많이 개입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그 차이점으로 제시할 수 있다. 성장 소설은 특히 독일 문학에 많은 자취가 남아 있으며(독일 비평가들이 사용하는 교양 소설(Erziebungsroman)은 거의 유사한 의미의 용어이다) 여타의 문학권에도, 이것이 근본적으로 본질적 인간 삶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이 유형에 속하는 적지 않은 작품들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크눌프> 등이 그중에서 흔히 거론되는 작품들이다. 우리 소설로는 이광수의 <나/소년편>과 박태순의 <형성>, 구혜영의 <불타는 신록>, 공선옥의 <라일락 피면> 등이 예로 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