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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예술영화일까? 에로영화일까? 영화 <뽕>

by 언덕에서 2012. 10. 18.

 

 

 

예술영화일까? 에로영화일까? 영화 <뽕> 시리즈

 

 

 

 

어제 소개한 나도향의 소설 <뽕>은 영화로도 많이 제작되었다. 첫번째 영화 <뽕>은 이두용(1941 ~  ) 감독이 1985년 제작하였는데 이미숙이 주연을 맡았다. 이두용은 1970년대 액션영화 전문감독이며, 1980년대에는 시대극으로 알려진 감독인데 특이하게 토속영화에 처음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이미숙이 주연한 <뽕>이 히트를 한 이유는 이미숙의 섹시한 육체미에 기인할 것이라는 게 중평이지만 나도향 원작을 적절하게 각색하여 영화의 재미를 더한 점도 눈에 띈다. 가난한 농촌에서 남편과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마을 사내들에게 몸을 파는 아내의 이야기는 토속적인 에로티시즘과 서정감이 돋보이면서도 해학적인 페이소스 자체이다.

 

 

 원작과는 내용이 좀 다른 윤삼육이 각색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20년대 중반 일제 치하의 산간벽지. 고의적삼 안으로 비치는 까무잡잡한 살결의 안협댁(이미숙)은 용담골 사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요염한 여인이다. 떠돌이 남편을 둔 그녀는 남편이 집안을 돌보지 않고 전국 노름판을 찾아 떠도는 동안 먹고살기 위해 동네 남자들에게 몸을 바치고 곡식을 얻어다 구차한 삶을 연명한다. 이러한 안협댁의 화냥기 때문에 동네에선 뒷소리가 분분하지만 남자들이 거의 다 한 번씩은 그녀를 거친 터라 아무도 안협댁을 쫓아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뽕지기, 폐병쟁이에게까지 몸을 내돌리면서도 왠지 안협댁은 주인의 머슴 삼돌이에게만은 죽어도 몸을 허락하지 않는다. 앙심을 품고 있던 삼돌이 모처럼 집에 들른 안협의 남편 삼보에게 안협댁의 방종한 행실을 고자질한다. 그러나 삼보는 도리어 일러바치는 삼돌을 넙치가 되도록 두들겨 패준다. 그리곤 안협댁이 내어준 새 옷을 갈아입고 어디론가 표연히 떠난다. 그는 노름꾼을 가장하여 전국을 잠행하는 항일투사였다. 마을을 빠져나가는 삼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안협댁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용담골 전경엔 어둠이 짙게 깔린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는는 백수건달인 남편 삼보가 독립투사이고 안협댁은 독립투사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몸을 팔고 있다는 그야말로 나도향의 소설과는 내용이 다른 황당한 설정이다. 나도향의 원작을 보면 남편이 삼돌이에게 떡이 되도록 얻어 맞지만 이 영화에서는 정반대다. 남의 여자를 틈만 나면 탐내고 욕보이려 하는 나쁜 놈 삼돌이(이대근)를 어느날 불쑥 나타난 남편이 응징하는 영화의 설정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른바 '애국심'을 담보로 한 마케팅 성격이 짙다.

 안협집 역에 이미숙, 남편 역에 이무정, 삼돌 역에 이대근이 주연하였다. 이미숙은 요부 같은 농염한 성적 연기로 1986년 아태영화제와 제6회 영평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이 작품은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두어 약 13만 7,000명의 관객을 모으며 1986년도 한국영화 흥행 순위 4위에 올랐다.

 1988년 전편의 흥행 성공에 힘입어 이두용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은 <뽕2>는 안협집 역에 또다른 톱배우 강문영, 남편 역에는 전과 같이 이무정, 삼돌이 역에는 김동수가 맡았다. 이 영화에서도 강문영은 당시 기준에서 '심할 정도'로 많이 벗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88 올림픽'을 맞아 드디어 한국영화의 노출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간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나 강문영의 열연(?)과는 무관하게 흥행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아 6만 명에 그쳤다.

 <뽕2>의 흥행실패가 미련에 남았던 것일까? 1992년 이두용이 세 번째 감독을 맡은 <뽕3>은 특이하게도 당시 TV 유명 시사프로 사회를 보던 유명 변호사와 간통사건을 일으켜 신문지면을 장식했던 유명 여가수 유연실이 안협집 역을, 남편 역은 그대로 이무정, 삼돌이 역은 양택조가 맡았다. 유부남과의 간통사건은 그런대로 잘 나가던 가수 유연실에게는 치명타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녀는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당시로는 전례가 없던 '누드 화보'를 찍어 발매했고, 막 열리기 시작한 p.c통신을 겨냥해 '천리안', '하이텔' 등에 누드 CD를 광고하는 등 재기를 향해 몸부림쳤다. 그러다 출연한 것이 이 영화로 회상되는데 흥행 성적은 <뽕2> 보다 더 좋지 않아 1만 384명에 그쳤다.

 이렇게 하여 나도향 원작의 <뽕>에 대한 영화는 종말을 내리는 줄 알았는데, 1996년에 또 다른 <뽕> 영화가 나왔다. 이 영화는 이두용이 아닌 김동명이란 신인 감독이 영화를 찍었는데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감독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영화에서는 안협집 역에 신인 예지원, 남편 역에 최종원, 삼돌역은 조형기가 맡았다. 당시 신인배우였던 예지원의 데뷔작인 셈인데 거물급 중견배우인 최종원(후에 국회의원이 되었다), 조형기 등이 출연해서 관심을 모았지만 역시 흥행에 실패했다.

 명보극장(서울)에서 개봉되어 겨우 1만 4971명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 저조를 보인 후 <뽕> 시리즈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조형기가 예능 프로에 나와서 스스로를 ‘뽕 배우’라고 칭하는 건 이 영화에 출연했던 이력을 말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뽕> 시리즈로 인해 당시 국민들은 유명 여배우들의 나신을 적나라하게 목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뽕1>의 주연 이미숙은 아이가 딸린 의사를 이혼시키고 결혼해서 이십 몇 년간 잘 사는 듯했으나 오랜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최근 이혼했다. <뽕2>의 주연 강문영은 당시 최고의 가수 이승철과 결혼 후 얼마 못 가 파경 후 이혼했다. <뽕3>의 주연 유연실 역시 이 작품의 주연을 맡았으나 유부남과의 불륜이 들통나 '불륜 연예인'의 오명을 벗지 못하고 세간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나도향의 소설 ‘뽕’은 사회적 궁핍이 제재가 되는 여타의 빈궁소설과는 달리 당시 식민지 농촌 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제시하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러한 현실 문제에 생존해 나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특색을 지니고 있다.

 이를테면, 그의 사회 분석은 삶의 궁핍함을 비극성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거기에 담긴 인간의 심리와 애환을 제시한다.  <뽕 1>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 이대근은 최근 TV에 출연하여 영화 ‘뽕’은 성을 해학적으로 다룬 우리나라 명작이지 에로물이 아니다”며 몇 편의 영화로 굳어버린 자신의 에로배우 이미지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있는데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영화 뽕1 이후 등장한 ‘뽕’시리즈는 여배우들의 애로틱한 육체미만 부각하여 흥행을 노리다보니 작품성도 흥행도 제각각 엉망이었다. 1980년대에 에로영화가 인기를 끈 배경에는 군부통치 등 암울했던 시대를 벗어나려는 심리가 있었다. 2012년 요즘 잇따르는 19禁 영화도 경제불황의 스트레스를 잊으려는 탈출구 역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기대치 낮아진 세상, 답답한 현실의 탈출구에만 초점이 가해진 결과로 보여진다.  

 결국 이 ‘뽕’시리즈 영화는 사회적 이익과 생산 활동의 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만 매달릴 수 없는 경제적 모순도 이면에 깔려 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제시된 안협집의 인물됨과 그녀 주위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은 단순히 흥미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과 이익에 대한 관심 또는 그것들의 충돌이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의 한 상징으로 표현하지 못한 아이러니의 산물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