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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자본 앞의 나약한 '인간'이라는 괴물 <피에타>

by 언덕에서 2012. 9. 18.

 

 

 

자본 앞의 나약한 '인간'이라는 괴물 <피에타>

 

 

 

 

 

 

지난 주말, 영화 "<광해>를 볼까?  아니면 <피에타>를 볼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피에타>를 보기로 했다.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수상, 우리영화에 대한 예의로라도 기념비적인 작품을 봐야만 도리일 듯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애초부터 왜 망설였냐고? 김기덕 영화 특유의 잔인함, 정제되지 않은 폭력장면, 균형 잡히지 않은 강한 메시지 등의 선입관이 선택을 불편하게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김기덕 감독은 이 영화에서 대해서 말한다.

 

 자본은 인간을 악마로 만들어 왔다. 돈이라는 사탄은 인간을 노예로 만들어 그들을 짐승처럼 굴복시키고 타자를 공격하도록 지시했다. 인간의 구원은 어려워 보인다. 스스로 현대라는 지옥을 만든 인간의 구원은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가족이든 사랑이든 물질 앞의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보인다. 자본 앞에 인간은 나약한 괴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불쌍한 인간은 구원받아야 한다.

 

 영화 <피에타>는 '불편한 영화'일 거라는 관객의 예상을 한 치도 뒤엎지 않으며 잔인하고 강렬하게 시작한다. 주인공 강도(이정진 분)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사채 회수업자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등골을 빼먹으며 살아간다. 돈을 갚지 않으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상대방을 불구를 만들기 일쑤다. 주로 옛 청계천 뒷골목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피를 '쪽쪽' 빨아 먹으며 기생한다.

 그런 그에게 갑자기 엄마(조민수 분)라는 여자가 찾아온다. 30년이 넘도록 혼자 살아온 강도는 이 여자의 등장에 당황하고 그녀를 거부하지만 이내 안정을 찾으며 여자의 존재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그의 삶은 완벽하게 변하면서 점차 엄마라는 여자가 가진 비극적인 비밀이 드러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영화의 주인공 강도는 청계천에서 상상할 수 없는 잔혹한 방법으로 돈을 뜯어내는 사채 회수업자이다. 그는 닭을 제대로 익혀 먹지도 않고 날 것처럼 먹어대는 짐승과 같은 인간이다. 그는 손가락을 자르거나 다리를 부러트리는 인위적인 방식으로 채무자들에게 상해를 입혀 보험금을 뜯어낸다. 청계천의 노동자들은 그렇게 홀어머니 앞에서 구타를 당하고, 채무기간을 연장하려고 몸을 팔려고 하며, 급기야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

 그에게는 타인의 고통과 타인의 가족은 안중에도 없다. 강도에게 당하는 대부분의 채무자들은 가족의 테두리 안에 괴로워한다. 어떤 이는 사랑스런 아내가 있고, 어떤 이는 아내의 뱃속에 아이가 있고, 어떤 이는 늙고 병든 엄마가 있다. 하지만 강도에겐 이러한 가족이 없다. 그래서 타인의 고통이나 타인의 가족이 안고 살아야 할 슬픔을 알지 못한다. 그는 돈을 위해선, 돈을 벌기 위해선, 타인의 삶 따윈 무시해도 그만인 말종이요 인간쓰레기다.

 

 

 

 커다랗고 위엄있어 보이는 쭉쭉 뻗은 빌딩 숲 사이에 마치 유폐된 섬처럼 자리한 청계천 상가는 우울한 잿빛으로 포위되어 있다. 자본을 가진 지배자가 자본이 없는 피지배자를 사방에서 억누르듯이 서울이라는 한 공간에 서로 다른 국경을 가진 이질적인 공간적 이미지가 화면 안에 가득히 흐른다.

 

 

 

 그러던 중, 강도에게 엄마라고 자칭하는 중년 여인이 찾아온다. 강도는 처음에는 그녀를 폭행하는 등 매몰차고 잔인하게 거부하지만 차차 그녀를 엄마로 받아들인다. 자신이 그토록 공격했던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아픔을 엄마의 존재를 통해 자신도 느끼게 된다. 사채업자로 의심되는 누군가에게 엄마가 공격당하는 전화기 너머의 소리에 강도는 울부짖으며 괴로워한다. 비로소 그는 타인의 고통과 타인의 가족에 관심을 갖게 된다. 뱃속의 아이를 위해 자신의 두 손을 훼손하겠다는 젊은 노동자를 이해하게 되고, 한평생 청계천에서 잔뼈가 굵은 노동자가 자신으로 인해 자살하는 순간을 안타깝게 목도한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그녀는 강도의 엄마가 아니다. 그녀는 강도에 의하여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청계천 노동자의 엄마다. 그녀는 아들의 복수를 위해 강도의 엄마임을 사칭하고 그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녀는 강도에 의해 비참하게 자살한 아들의 복수를 위해 자신을 내던진다.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수에게, 자신의 가족을 파멸케 한 악마에게, 직접적 타격이 아닌 종교적 회개와 인간의 ‘양심’을 갖게 하기 위해 스스로를 내던진다.

 

 

 

 그녀는 '엄마가 맞을까?'라고 의심하는 강도에게 자신이 엄마임을 끈질긴 노력으로 믿게 만든다. 그녀는 강도에게 자신이 사채업자에게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연기한다. 원수에게 ‘양심’과 ‘마음’을 갖게 함으로써, 그 원수가 진정으로 회개하여 짐승에서 인간으로 변모하게끔 하기 위해서다. 그녀는 강도가 보는 앞에서 투신자살한다. 그 원수가 진정으로 괴로워함으로써 복수가 완성되게 하려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 짐승에서 인간으로 변한 강도는 자신이 파멸시킨 가정의 구성원이 운전하는 차바퀴 밑에 목을 매달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안개 낀 고속도로 길바닥, 파멸한 남편을 대신해 일 나가는 아내가 운전하는 생계용 트럭 바퀴 아래 매달린 강도의 시체에서 흘린 핏자국이 선명하다.  마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를 오르는 예수처럼 아스팔트 위에 붉게 물드는 새벽의 핏빛은 숭고하게 묘사되며 영화의 결말과 여운을 장식한다. 여기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인간 백정 같이 살아온 강도에게 갑자기 찾아온 어머니는 과연 구원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영화는 김기덕 감독 특유의 작품처럼 광기를 가진 캐릭터, 가늠할 수 없는 복수심 등이 등장한다. 강도에게 시달리던 채무자가 자살하자 강도는 그의 시체를 폭행하기도 하고, 엄마(미선)와 아들(강도)의 근친상간까지 화면에 담기는 등 불편한 장면은 계속된다.

 

 

 

 다만, 전체적으로 기존 그의 작품에 비해 비정상적인 설정과 묘사가 많이 줄었다는 느낌이다. 많이 점잖아 졌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제목으로 쓰인 ‘피에타(Pieta)’는 이탈리아어로 슬픔, 비탄을 뜻하는 말로 기독교 예술의 주제 중의 하나이다. 주로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시체를 떠받치고 비통에 잠긴 조각 작품으로 표현된다. 이를 표현한 조각 작품으로는 영화 ‘피에타’가 차용한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조각상이 유명하다. 김기덕 감독의 이전 영화에서 엄마 혹은 모성이라는 존재는 그 스스로 뭔가를 하지 못하던(성모 마리아가 그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을 뿐인 것처럼) 사람이었지만 <피에타> 에서는 다르다. 그런 불신 혹은 악마와 직접 대면한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살려고 밖으로 나갔다가 차에 치어 죽는 영화 속 토끼처럼 희망이 없다.

 

 

 

 김기덕 감독은 '<피에타>는 극단적인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는데 '자본주의 중심인 돈이라는 것에 의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불신과 증오와 살의가 어떻게 인간을 훼손하고 파괴하며 결국 잔인하고 슬픈 비극적 상황을 만들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스스로의 작품을 표현했다. 이전 작품이 비정상적인 사랑과 권력을 다룬 것과 달리 돈에 집중한 점이 특이한 작품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속 모든 주인공처럼 강도 역시 어느 것 하나 손에 쥔 것 없는 '결핍의 종결자'로 표현된다. 돈도 없고 자신을 따뜻이 돌봐주는 이 하나 없다. 그가 사는 공간적 배경은 고층 빌딩이 즐비한 그 사이. 빈민의 노동자들이 부랑하는 어느 곳이다. 경제적 정신적으로 무엇으로도 충족할 수 없는 근원적 결핍이 강도를 '악마의 자식'으로 만들었다.

 강도가 입으로 내뱉는 언어와 폭력적인 행동으로 악랄함을 표현한다면, 그 여자 조민수는 눈빛의 각도와 입술의 떨림으로 잔인한 모성을 건드린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이 여자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드러나면서 조민수의 눈빛은 시시각각 변하며 강도를 훑는다.

 낡은 건물 위에 위태롭게 올라선 엄마와 그 밑에서 무릎을 꿇고 오체투지 하듯 엎드려서 회개하는 강도의 대비적 모습은 그야말로 이 작품의 압권이다. ‘잘못 했어요, 잘못 했어요, 우리 엄마만은 살려 주세요……!’ 이 애절한 절규가, 진정한 복수의 완성이다. 여자의 복수는, 원수가 ‘양심’을 갖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진정으로 괴로워하도록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여자는 원수를 ‘용서’하고, 원수 강도는 짐승에서 인간으로 구원받았다.

 

 

 

 

 <피에타>에서 여배우 조민수의 연기는 가히 압도적이다. 이정진이 가끔 감정선을 조절하지 못한 채 '뜬' 연기를 보여준다면, 조민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하나 튀지 않으며 안정적인 연기로 스크린을 누른다. 대사는 두, 세 장면에 한 마디뿐으로 극히 적은 양이지만 폭발적인 에너지로 관객을 묘하게 끌어당긴다.

 초반에는 마치 건들면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분노와 슬픔을 가슴 속에 가득 담고 있지만, 중·후반부를 지나면서 서서히 폭발한다. 누구도 주체할 수 없는 통곡은 조민수가 표현하는 이 여자의 모성이다.

 <피에타>는 김기덕 감독의 전작과 다르게 제작보고회와 기자회견 등을 열며 언론 매체와 접촉을 많이 했다. 그만큼 김기덕 감독은 대중과 소통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영화로만 보자면 김기덕 감독이 말한 소통을 실현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여전히 어둡고 음습하다.

 

 

 

 

 

 '섬' '나쁜 남자' '빈집'이 그러했듯이 제6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피에타>도 다보고 난 뒤 찜찜하고 불편한 느낌이 남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보고 나서 가슴 한쪽에 무겁고 우울한 무언가가 들어왔다. 하지만 전작과는 분명 다른 그 무엇이 있었다.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 때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