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이 2008년 메가폰을 잡은 영화로 황정민과 전지현이 주연을 맡았다. 남들은 제정신이 아니라며 비웃지만, 자신은 스스로 잠시 초능력을 잃은 슈퍼맨이라고 주장하는 사나이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담았다. 기발한 캐릭터와 스토리, 기막힌 유머와 판타지를 넘어 한국판 슈퍼맨의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는 가슴 벅찬 감동을 맛볼 수 있다. 용기 있는 행동주의자인 주인공을 통해 우리는 남을 돕는 것은 의무나 고통이 아닌 생명의 본능이며 즐거움이라는 소중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하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공포소설 <어느 날 갑자기>에 실린 단편이 원작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송수정PD(전지현 분)는 3년째 방송프로덕션에서 신파 ‘휴먼다큐’를 찍고 있다. 억지 눈물과 감동으로 동정심에 호소하는 프로그램에 신물이 난 그녀는 차라리 ‘동정심 없는 아프리카 사자’를 찍겠다며 밀린 월급 대신 회사 녹화카메라를 챙겨 나온다. 그러나 난데없이 아프리카 촬영은 취소가 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카메라까지 날치기 당한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하와이언 셔츠의 남자가 도둑을 쫓아 카메라를 되찾아준다. 그는 악당이 머릿속에 넣은 크립토나이트 때문에 현재는 초능력을 쓸 수 없다는, 자칭 슈퍼맨이라고 주장하는 사나이다.
수정은 그 남자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슈퍼맨은 여학교 앞 바바리맨 혼내주기, 잃어버린 개 찾아주기 등 하찮고 사소한 선행에 열중하는가 하면, 북극이 녹는다며 지구를 태양에서 밀어내기 위해 물구나무를 서는 등 엉뚱한 행동을 일삼는다. 수정은 제정신이 아닌 듯하지만 눈길을 끄는 그를 휴먼다큐 소재로 이용하기로 하고 새로운 이야기 꺼리에 동료들은 열광한다.
어느날 숙취에 시달리며 집에 누워있던 수정의 눈앞에 다시 슈퍼맨이 나타난다. 슈퍼맨은 진실을 알려야 한다며 괴물이 나온다는 골목 맨홀로 수정을 데려가지만, 괴물은커녕 하수구 냄새만 진동할 뿐이다. 수정은 그 곳에서 머리를 다친 슈퍼맨을 병원으로 데려가게 된다. 거기서, 엑스레이 사진 속 슈퍼맨의 머릿속에 진짜 무언가가 박혀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수정은 그를 집중 취재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슈퍼맨의 진짜 이야기가 냉철한 그녀의 마음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수정이 그를 만나기 전, 세상은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직 누구도 몰랐다.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집은 어디인지. 그의 활약이란 고작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은행의 에어컨을 끈다거나, 인간CCTV가 되어 쓰레기 무단 투척자를 잡아내거나, 집 잃은 개 주인을 찾아주는 따위였기 때문이다. 그를 발견한 수정의 시선엔 제정신이 아니거나 이용해 먹기 좋은 하찮은 남자로 보일 뿐이었다.
그가 슈퍼맨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가족을 잃은 끔찍한 사고 때문이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그의 가족에게 지나가던 행인의 일부라도 손을 빌려주었다면 딸이라도 구할 수 있었겠지만 혼자 힘으로 역부족이었던 탓에 눈앞에서 부인과 딸을 잃고 말았다. 그가 정신을 놓고 다른 사람의 곤경에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그는 과연 예전부터 남다른 의협심이 있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역시 평소 때라면 그를 외면했던 행인들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당사자가 되고 보니 이제 세상이 달리 보이게 된 것이다. 그가 정신을 놓은 뒤 하는 행동도 의협심보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내가 슈퍼맨만큼 힘이 있었다면 사랑하는 가족을 지킬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죄책감은 가족을 모두 잃고 난 뒤에도 그를 온전한 정신으로 세상을 살게 하지 않는다. 이 영화 엔딩을 두고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그는 자신의 노력으로 스스로를 구할 수 있었지만 세상은 여전히 각박하기 때문이다. 그가 화재로 위기에 처한 또 다른 가족을 구하고 나서야 비로소 편안한 얼굴로 세상을 떠나는 장면에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어느 것을 가지려는가. 현명하게 미친 것인가 혹은 바보 같은 제정신인가?” -세르반테스- 그때나 지금이나 어디선가 또 다른 슈퍼맨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누구나 남을 돕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것이 인류애이든 개인적 동정심이든 인간은 다른 인간의 고통을 바라보며 가슴 아파한다. 하지만 마음과 행동은 다르다. 아무나 그 돕고 싶은 마음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용기의 대가는 종종 자기 삶의 불편과 손해, 나아가 더 큰 희생, 목숨까지 요구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저 바라만 보거나 못 본 척하거나 남이 나서길 바란다. 그리고 때때로 초인을 기다린다.
자신에게 닥친 불행은 물론 위험에 빠진 다른 사람을 구해줄 수 있는 놀라운 초능력을 지닌 사람들…… 그런 특별한 존재의 대표가 바로 슈퍼맨이다. 그는 인간의 꿈이고 구원자이다. 그는 빛의 속도로 하늘을 날아와 위기에 빠진 인간들을 구해준다. 도와줘요 슈퍼맨! 이라고만 외쳐주면 말이다.
자신을 슈퍼맨‘이었다’고 믿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비록 지금 초능력은 잃었지만 매 순간 모든 에너지를 쏟아 남들을 돕고, 나름대로 지구를 지키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꿈꾼다. 다시 초능력을 되찾아 하늘을 날 수 있게 되기를, 그래서 악당들로부터 지구를 구할 수 있게 되기를……. 그는 영락없이 미친 사람처럼 보인다. 그리고 의학적으로 볼 때 사실 제정신이 아니다. 하지만 그 망상의 세계 속에서 그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다. 남을 돕는 것은 달콤한 사탕 맛처럼 즐거운 일이며 다시 초능력을 되찾기 위한 꿈은 너무나 강렬하여 인생의 지루함은 끼어들 새가 없다. 그는 용기 있는 행동주의자이며,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자신 있게 말한다.
그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않기 위해 남들을 돕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되묻는다. 그러는 너희 자신의 진짜 모습은 어디에 있는가? 그렇다. 그는 누구보다 자기 확신에 차 있으며 제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시금 말한다. 원래 너희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영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러 버전의 영화 <폭풍의 언덕>,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0) | 2013.03.12 |
---|---|
웃기지 않았고 마음만 짠했던 영화 < 7번방의 선물> (0) | 2013.03.05 |
예술영화일까? 에로영화일까? 영화 <뽕> (0) | 2012.10.18 |
추억 속 성장소설 『불타는 신록』과 두 편의 영화 (0) | 2012.09.26 |
사실성은 부족했고, 보는 내내 불편했던 영화 「파란 대문」 (0) | 2012.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