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지 않았고 마음만 짠했던 영화 < 7번방의 선물>
남들은 코미디를 보며 웃는데 왜 나는 잘 웃지를 않을까? <개그콘서트>라는 코미디 프로를 볼 때마다 느끼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다. 혹시 우울증이 아니냐고? 그건 분명 아닌 것 같다. 남들이 조금 웃을 때 심하게 웃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21세기의 웃음코드가 나 자신과 잘 맞지 않는 점, 영화나 소설의 줄거리 흐름을 나 자신 너무도 많이 예측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판단한다. 지난 연휴에는 <7번방의 선물>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옆자리에 앉은 관객들이 웃고 우는 장면을 목도했는데 나는 별다른 감흥 없이 보기만 했다. 그런 나 자신을 지켜보며 드는 '나는 너무 늙었구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감옥에 들어간 아빠를 만나기 위한 어린 딸의 잠입액션(?)을 주요 줄거리로 하는 이 영화는 애당초 현실성, 즉 리얼리티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듯했다. 예승(갈소원 분)이 감옥으로 들어오게 된 과정은 설득력과 현실성이 제로이며 경찰청장이 왜 그렇게 용구(류승룡 분)에게 분노하는지도 개연성이 다소 부족하다.
그런데 다 보고난 후 이 영화는 리얼리티 요소가 중요한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판타지 톤에 가깝다. 조직폭력배, 사기범, 소매치기 등 범죄자들로 가득한 7번방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파스텔톤 동화풍의 공간이다. 현실적으로 이런 교도소 방이 과연 존재할까?
십 수 년 전, 전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최고 명문대를 나온 부하직원이 숙취상태에서 운전하여 출근하다 청소원을 치어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곧장 구속수감되었다. 나는 관리자로서의 책임을 절감하고 피해자 가족에게 합의를 이끌도록 하여 부하직원이 출옥토록 애를 썼다. 이미 그는 회사에서 파면이 되었고 출옥 후 위로 술자리를 마련했다. '고생 많았다'는 나의 위로에 그가 한 말은 의외였다. "교도소, 그곳도 지내보니 살만 했어요." 지금도 궁금하다. 그때 후배 직원이 내게 한 말이 과연 진심이었을까? 나는 지금도 진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저런 생각에 7번방과 실제의 감옥은 왠지 현실에서 떨어져있다는 느낌을 주는데 이는 그곳이 감옥이라는 격리된 공간이라기보다는 세상엔 볼 수 없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의 공동체와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영화는 오히려 경찰서장, 국선변호사와 같이 감옥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더 사악하게 그린다. 이처럼 ‘7번방의 선물’은 단점이 명확한 영화임에도 리얼리티의 잣대를 들이대고 냉정하게 평가하기가 꺼려진다. 이는 작가나 감독이 의도했음직한 우직한 감성일변도의 영화적 정서와 배우들의 연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어린 예승을 연기한 아역 갈소원은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며, 귀엽고 깜직한 이미지로 관객들의 감정이입 효과를 높여 준다. 영화는 극 후반부에 등장할 것이라 예상됐던 성인이 된 예승(박신혜)을 극 초반부부터 등장시켜 화자 역할을 시킨다. 이는 익히 예상 가능한 영화의 결말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고 막바지 최루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일 것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6살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가진 지적장애자 아빠 용구는 이혼 후 딸 예승이 좋아하는 세일러문 가방을 사주기 위해 매일 매장에서 가방을 보며 딸에게 가방을 사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가방은 다른 사람에게 팔리고 만다. 그 가방을 산 사람은 예승이 또래의 경찰청장 딸이다. 해피마트 주차장 일을 하는 용구는 경찰청장의 딸이 다른 곳에서 세일러문 가방을 파는 곳을 알려준다기에 동행하게 된다. 그러다 결국 경찰청장의 딸은 빙판에 넘어져 급사를 하고 만다. 용구는 유아 성폭행 및 살인 혐의로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아 성남교도소 7번방에서 복역하게 된다.
7번방은 온갖 죄로 인해 들어온 범죄자들이 머무는 방이다. 수감 중 재소자 중 한 명이 방장을 찌르려는 것을 용구가 알아채고 대신 칼에 찔리는 일이 발생을 하게 되는데 그 결과 방장은 자신의 조직을 동원해 용구의 소원인 예승이를 만나는 것을 들어주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교도소 보안과장의 용인 하에 예승이는 용구와 함께 7번방에서 살게 되고, 결국 예승이는 7번방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선물이 된다.
용구가 무죄라는 사실은 안 사람들은 용구의 2심 재판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지만 경찰청장은 용구가 무죄라는 걸 전혀 믿지 않는다. 용구가 무죄를 주장하면 예승이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을 가한다. 용구는 딸 예승이를 지키기 위해 재판에서 자신이 살인범이라는 거짓진술을 하게 되고 유아강간 및 살인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렇게 억울하게 죽어버린 아빠 용구. 시간이 지나서 사법연수원에서 예비법조인이 된 딸 예승은 아빠를 위한 모의재판에서 변호사를 맡게 된다. 아빠의 결백과 자유를 찾아주기 위해서다. 결국 불쌍한 아버지 용구의 무죄를 받아내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를 보면서 웃지도 울지도 않았던 나는‘7번방의 선물’이 가진 부자연스런 목적의식에 대해 거부감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따뜻한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극 분위기와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를 바탕으로 힐링무비를 표방한 영화의 지향점을 애써 외면하기도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목적은 뚜렷하다. 감성코드를 바탕으로 관객들이 눈물을 자아내게끔 만드는 것이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해범으로 몰려 죽은 용구(류승룡)와 딸 예승(갈소원)이의 이야기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지적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를 소재로 관객들의 정의감을 깨웠고, 박봉의 월급으로 목에 풀칠하고 사는 서민의 가난의 실체, 그 가운데서도 피어나는 아버지들의 맹목적 가족(딸)사랑, 그리고 소위 인간의 내재적 ‘착한’ 감성까지 기가 막히게 끌어올림으로서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공감대를 만들어 버렸다.
영화의 배경에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밑그림이 주저 없이 깔려 있는데 이는 지적장애인이라면 정신이 온전치 않을테니 충분히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편견, 정신 나간 사람이라면 그의 진실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멸시가 영화 전반부터 관객의 정서를 ‘콕콕’ 찌르며 영화의 현실감을 살리는 소재로 사용된다.
세일러 문 가방을 사주기 위한 지적장애인 아빠의 딸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이 사고로 죽은 경찰청장 딸 사망의 성추행범으로 기가 막히게 포장되는 과정 속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반성을 넘어 관객들은 세일러문이 외치는 정의의 사도로 급히 빠져든다.
용구와 같이 딸을 극진히 사랑하지만 딸의 죽음을 두고 엄한 용구에게 분풀이를 하며 범인으로 일부러 몰아가는 이성을 잃은 공권력 수장 앞에서는 어이없음과 분노에 여러 관객들이 실제 손가락질과 욕설이 나옴직하다. 관객들은 이런 착한 아빠의 순진한 사랑과 현실의 벽 앞에 답답해 할 수밖에 없고 마음 짠해함은 우리사회 엄연히 존재하는 계급의 벽 앞에서 반성과 사랑, 감동의 세레나데를 느끼게 한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이 영화는 장애인 인권에 대한 숙제를 던져주는, 결코 코믹 영화가 아닌, 사회참여 영화다.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웃음과 감동, 눈물과 한숨을 연달아 몰아쉬게 하는, 머리가 커서 제왕절개를 한, 착한 용구는 우리 주위에 무수히 많을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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