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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헤르만 헤세 장편소설 『황야의 이리(Der Steppenwolf)』

by 언덕에서 2012. 11. 15.

 

 

 

헤르만 헤세 장편소설 황야의 이리(Der Steppenwolf)

 

 

 

 

 

독일 소설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의 장편소설로 1927년 발표되었다. 지난 세기, 전 세계적으로 질풍같이 퍼져간 헤세 붐을 일으킨 작품, 가장 대담한 작품, 가장 예외적인 작품 등 화려한 수식어를 동반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융의 심층 심리학의 기본사상을 빌려 자신과 세상에 대해 불가능한 이상을 기대하여 심각한 심리적 동요를 겪는 한 이상주의자가 원형적인 상징 인물과의 대결을 통해 새로운 정신적 통일성과 자아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도정을 그리고 있다.《황야의 늑대》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중에서 가장 분방하고 대담한 작품으로 그의 작품세계는 모두 일관되게 ‘내면 추구’를 주제로 삼고 있다. 작가의 처절한 자기분열의 고백으로서, 영적 혼돈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소설이다.

 주인공 하리 할러(Harry Haller)의 두문자(頭文字)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와 똑같이 H.H.이며, 헤르만 헤세처럼 괴테와 모차르트를 최고의 존재로 숭배하고, 시를 쓰며, 그림을 그리고, 신경통으로 고생하는 인물로 그려진다는 점은 특기할만하다.

 작가가 노골적으로 소설의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50세가 되어 인생의 전환기를 맞은 작가가 50세의 하리 할러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켜 그 내면을 철저히 분석한 자기 고백서이다. ‘황야의 늑대’를 자기 안에 가지고 있는 인간의 비열함을 철저하게 폭로함으로써 타성적인 삶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자신의 내부를 깊이 응시하라고 통렬히 비판한다.

 헤세는 194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독일 소설가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1877∼1962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할러가 아웃사이더로서의 방황을 마치고 25년 이상 살았던 도시로 귀향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할러에 대한 묘사는 우선 할러가 세들었던 집의 조카가 쓴 '편집자의 서언'을 통해 전해진다. 집주인의 조카인 편집자는 '서언'을 통해 할러의 외모와 인상을 비롯해서 그의 독특한 행동방식과 생활 패턴을 객관적인 관찰자의 시선으로 묘사한다. 그가 묘사하는 할러라는 인물은 기인에 가까운 지식인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독자들에게 환기시켜준다. 내용의 뼈대를 이루는 '하리 할러의 수기'와 수기 속에서 소개되는 '황야의 늑대에 관한 소논문'은 현대인의 삶을 비판하면서도 현대인의 생활환경을 떠날 수 없는 한 인간의 딜레마적 상황을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여준다. 할러는 자신의 삶의 뿌리가 부르주아적 시민세계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시민성'이라는 획일화된 집단 정체성 안에 갇히는 걸 경계한다.

 할러가 시민세계에 거리를 두는 이유는 가치와 정의가 붕괴되고 신앙과 도덕도 사라져버렸고 온갖 기만과 부조리가 판치는 위기의 상황 속에서 시민사회가 그에 대응할 윤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보이는 무기력감 때문이다. 자유를 구속할 수밖에 없는 시민사회의 질서와 안정 지향도 할러를 불편하게 만든다.
 할러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시민사회 안으로 편입해보려 하지만 그것이 내포하는 속물성과 질서 안의 합리성이라는 것이 자신의 취향과는 결코 화해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결국 자신은 시민사회의 영원한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할러는 바에서 만난 낙천적이고 쾌활한 헤르미네라는 여인을 통해 억압되어 있던 자신의 다양한 모습들을 표현하게 되고 그녀가 소개한 파블로란 악사와 마리아란 직업여성을 통해 에로스와 '이성적인 것이 아닌 어떤 것'으로서의 광기를 '마술극장'이라는 환상의 무대를 통해 체험하게 된다. 전쟁에 반대하고, 시민생활을 그리워하면서도 그 속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과 체제에 반항한다. 강렬한 욕구불만을 표출하며, 인간존재의 문제에 또다시 부닥치게 된 그는 50세의 생일을 맞아서 결국 자살을 기도한다.

 

 

 작가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대립과 맞서 방황하며, 불안과 불만 속에서 자아를 고통스럽게 추구해가는 고독하고 불완전한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하리 할러의 당면한 문제는 결국 해결되지 않았으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괴테와 모차르트의 환영에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듯이, 삶의 다양성과 자아의 양극성을 동시에 긍정하고 지향해가는 경지가 제시된 점은 특히 주목된다.

 후기 현대인들의 성서가 되어 있는 <황야의 이리>에서는 동물적 요소와 인간적 요소를 한 몸에 지닌 주인공 하리 할러가 환각제를 피우고 재즈음악을 들으면서 미친 듯 춤을 춤으로써 팽팽했던 정신적 긴장을 해소하게 되고, 마술극장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전일성을 상징하는 ‘불멸인들’의 세계로 몰입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가정 안의 불행, 자기 자신의 신경증 극복을 작품 <데미안>에서 이원적인 정신과 육체를 자아애에 통일시킴으로써 일단 해결을 본 헤세는 자기 응시에 있어서 자아를 통일체로 고집하는 것이 번민의 근원이며 이에 만족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게을리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아를 완전히 파악하기 위한 자기분석이 이 소설의 주인공 하리 하라의 수기이다. 그 자아가 인간의 혼과 황야의 늑대에 의해 형성된 하리는 고독하며 인간을 사랑할 수가 없어 정신적으로 또한 사회적으로 볼 때 죽어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황야의 늑대’라고 부르는 주인공 하리 할러는 야수성으로부터 신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립을 한 몸에 지닌 복잡한 인물이다. 생의 분열과 양극성, 성자와 탕자, 그 사이에서 끝없이 절망하며 괴로워한다. 자신을 기만하고 시민적 낙관주의에 반발하면서도 그것의 집착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도 못한 그는 한마디로 체제에 순응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의 모습이다. 

 자기 조소로 끝나는 사랑을 해 보나 자기애가 없는 한 타인애는 성립할 수가 없다. 자조를 만들어내는 자기를 해체하여 전체에 복귀하는, 즉 무한히 자기의 영혼을 확대하여 우주를 포괄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의무이어야만 한다. 하리는 그 모든 가능성을 보여주는 마법극장에 안내된다. 거기에서 상연되는 순간의 현상에서 영원을 보는 것으로써 개적 자아를 확대시킨 모차르트와 괴테의 유머 의의를 아는 것이다.

‘황야의 이리’의 분열된 삶의 이면에는 보다 높은 불멸의 세계, 즉 치유와 신생에로의 길이 모색되고 있으며, 특히 1970년대에 미국의 청년층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전 세계적으로 헤르만 헤세의 붐을 조성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