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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쇼데를로 드 라클로 장편소설 『위험한 관계(Les liaisons dangereuses)』

by 언덕에서 2012. 10. 19.

 

쇼데를로 드 라클로 장편소설 『위험한 관계(Les liaisons dangereuses)』 

 

 

프랑스 소설가 쇼데를로 드 라클로(Choderlos de Laclos, 1741~1796)의 장편소설로 1782년 출간되었다. 18세기말, 세기말 프랑스 사교계의 허영과 성적 욕망부패한 사랑 게임을여러 인물들이 주고받는 총 175개의 편지로 낱낱이 밝힌 서간체 소설이다이 소설은 남녀 간에 복잡하게 얽힌 애정관계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포병장교라는 저자의 직업에 걸맞게 냉철하고 치밀하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발발 직전의 프랑스 귀족사회에 대한 완벽에 가까운 묘사와 내밀한 심리 묘사로 18세기 프랑스 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작품이다이성과 도덕이 지배하던 계몽주의 시대그 아래 숨겨진 적나라한 생활상을 그린 시대의 풍속화이자 감정의 굴곡을 그린 연애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흔히 동시대에 쓰인 루소의 연애소설 <누벨 엘로이즈>는 같은 시대 서간체로 쓰였기에  비교되곤 한다. 전자가 '사랑과 미덕'의 이야기라면 『위험한 관계』는 '악덕과 방종'의 이야기로 답한 셈이다. 작가는 모든 도덕적 판단을 유보한 채 사랑의 미덕에 대해서나 방종의 악덕에 대해서나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그 깊은 본질에 이르고자 하는 탐구의 시선을 놓지 않는다. 이 소설은 환상의 위험과 위선을 보여주면서 '환멸'이라는 우리 삶의 조건을 그려내었다.

 『위험한 관계』는 여러 인물이 주고받는 총 175개의 편지로 구성되었다. 편지라는 개인적 글쓰기가 전제하는 감춤과 드러냄의 섬세한 조합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편지라는 형식은 소설 안에 펼쳐지는 욕망의 유희를 상당히 효과적으로 형상하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8세기 프랑스 상류 사교계에서 일어난 일이다.

 악마적인 후작 부인 메르퇴유와 호색적인 바르몽 자작은 공통된 복수를 위해 손을 잡았다. 과거에 메르퇴유는 제르클 백작에게 배반당한 일이 있었다. 그녀와 연인 사이였던 백작이 어느 지방장관의 부인과 사랑에 빠져 그녀의 곁을 떠나버리자, 그 부인 또한 사랑하는 제르클을 위해 애인이었던 바르몽을 버린 사건이었다.

 드디어 이들에게 복수할 기회가 찾아왔다.

 제르클 백작은 두둑한 지참금을 가져오는 세실이라는 어린 소녀와 결혼하게 되었다. 메르퇴유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르몽을 부추겨 세실을 유혹하게 했다. 그 일은 성공했으며, 메르퇴유는 세실의 애인이었던 당스니를 차지했다.

 바르몽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신앙심이 두텁고 정숙한 법원장 부인을 농락했다.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의식하지 못했으며, 연애 감정조차 경멸했다. 흔해빠진 사랑놀음에 질린 바르몽에게 그녀는 훌륭한 사냥감이었다. 이 사건으로 순진했던 세실은 절망 속에서 수도원에 틀어박혀 버리고, 법원장 부인 또한 바르몽이 자신을 정복한 후 버렸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다가 죽어 버렸다.

 바르몽도 결국 당스니와의 결투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메르퇴유는 천연두에 걸려 추한 모습으로 외국으로 도망쳤다.

 

 

 

 군인이었던 작가 라클로가 군생활의 무료함을 달래려는 목적으로 쓴 소설『위험한 관계』는 18세기말, 프랑스 사교계의 허영과 성적 욕망, 부패한 사랑 게임을, 여러 인물들이 주고받는 총 175개의 편지로 낱낱이 밝힌 서간체 소설이다. 이 작품은 ‘밀고 당기기’의 연애 교과서이자, 인간 욕망의 저 밑바닥을 환멸이 느껴질 만큼 철저히 헤집은 통속 소설이다. 등장인물들 간에 오간 175통의 편지로만 이 모든 이야기를 전달하는 저자의 능청이 압권이다. 군인 라클로는 지방 임지에서 소일거리로 여러 편의 소설과 수필을 썼다. 포병 출신답게 양측의 공격과 반격이 오가는 묘미가 있는 이 소설로 마흔한 살에 문명을 떨쳤다. 출간 사흘 만에 초판 2000부가 동이 났을 정도다. 저자의 목소리는 편지에 붙인 8개의 주석에만 나오는데 마지막 주석은 한껏 점잔을 빼면서도 이 막장 드라마의 ‘시즌2’라도 예고하는 듯하다. “언젠가는 이 책의 후속 이야기를 발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약속할 수는 없다… 독자들이 뒷얘기를 읽고 싶어 하는 이유는 우리와 같지 않을 테니 말이다.”

 ‘위험한 관계’ 역시 개인의 감정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시대의 부산물이다. 2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계속 재생되는 매력적 콘텐츠가 된 비결이다.

 이 작품의 문학적 위상과 대중적 인기는 작가 라클로가 이 작품 하나로 프랑스 현대 문학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는 점, 초판 발행 직후 단 사흘 만에 2천 부 전량이 판매되고 그 후 30여 년 동안 50쇄를 넘기는 등 꾸준히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다는 점 등으로 충분히 뒷받침된다.

 부도덕한 인간관계의 너무도 적나라한 묘사로 인한 사회적 파장도 커서, 한때 판금 조치를 받기도 했던 『위험한 관계』는 후대 특히, 19세기와 20세기 초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스탕달과 보들레르, 앙드레 지드 등에게서 높게 평가받았고 현대의 문학평론가, 심리학자, 의료학자 들로부터는 예리한 심리 분석과 구성의 탁월함으로 주된 분석 텍스트로 사랑받아왔다. ‘사랑’의 무상함을 강조했던 20세기의 지성 앙드레 말로 역시 라클로의 이 작품을 이렇게 평가하기도 했다.

 

“두 주요 인물 발몽과 메르테유 후작 부인의 ‘관계’는 곧 인간 의지의 ‘신화’이다. 의지와 성적 욕망으로 유지되는 이들의 결속이 그들의 행동을 더욱 대범하게 이끈다 …” ―앙드레 말로

 

 

 

 

 

 프랑스 문학 수업 시간에 18세기 불문학, 혹은 시대와 장르에 관계없이 심리소설의 고전이자 교과서로 널리 읽히고 있는 『위험한 관계』는 이미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여러 차례 거듭 제작된 영화로 더 익숙한 작품이기도 한데, 영국 출신 유명 감독 스티븐 프리어즈가 메가폰을 잡고 글렌 클로즈, 존 말코비치의 신기에 가까울 정도의 연기와 원작의 밀도에 가장 충실한 연출이라는 극찬을 받았던 1988년 작 「위험한 관계」를 필두로, 밀로스 포먼의 1989년 작 「발몽」, 그리고 로저 컴블의 1999년 할리우드판 「사랑보다 아름다움 유혹 Cruel Intentions」, 그리고 배용준. 이미숙. 전도연 주연의 2003년 한국판 「스캔들, 조선남녀상렬지사」, 2012년 장동건과 장쯔이가 주연한,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사교계의 방탕한 남녀가 정숙한 이들의 사랑을 담보로 게임을 벌이다가 함께 파멸한다는 이야기 「위험한 관계」 등이 그것이다.

 

 

 


 

저자 쇼데를로 드 라클로 (Choderlos de Laclos)는 1741년 프랑스의 아미앵에서 태어났다. 1760년 신흥 귀족 집안의 아들로서 군인의 길을 걷기로 하고, 라페르 왕립포병학교에 입학한다. 이후 스트라스부르, 그르노블, 브장송 등 포병대에 근무하면서 틈틈이 희곡 작품을 쓰기 시작하여, 1770년에 『마르고에게 보내는 편지 Epitre a Margot』를, 1773년에 『추억, 에글레에게 보내는 편지 Les Souvenirs, epitre a Eglee』를 발표한다. 1777년 리코보니 부인(Marie-Jeanne Riccoboni)의 소설을 각색한 오페라 코미크「에르네스틴 Ernestine」 발표하나, 파리의 이탈리아 극장 무대에서 단 한 번 공연한 후 막을 내린다. 1782년에 5년에 걸친 집필 끝에 『위험한 관계 Les liaisons dangereuses』를 출간하고, 이것이 사흘 만에 초판 2천 부가 모두 판매되는 기록을 세운다. 1783년 사회개혁을 통해 여성을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논문「여성의 교육에 대하여 De l'education des femmes」를 쓰기도 했던 라클로는 1788년 군대생활을 청산하고 왕가의 일원이면서 혁명정신을 지지하던 오를레앙 공의 비서관이 되어 자코뱅파 일원으로 공화정 설립에 적극 참여한다. 그러나 1793년 로베스피에르가 집권하면서 투옥되었다가 1800년 같은 포병장교 출신인 나폴레옹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다시 군에 복귀한다. 3년 뒤 이탈리아의 타란토에서 병으로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