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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헤르만 헤세 장편소설『나르치스와 골드문트(Narziß und Goldmund)』

by 언덕에서 2012. 9. 13.

 

 

헤르만 헤세 장편소설『나르치스와 골드문트(Narziß und Goldmund)』

 

 

 

독일 소설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 ~ 1962)의 장편소설로 1930년 발표되었다. 가톨릭 수도원장으로 냉철한 철학자인 나르치스와 애욕의 편력을 일삼는 예술가 골트문트의 대립과 갈등, 열망에 대한 소설이다. 두 사람의 우정 이야기는 나르치스의 손에 의해 이끌리고 매듭지어지지만 전체적인 이야기의 중심은 골트문트이다.

 특히 이 둘의 이러한 양상은 인간이 '무상'이라는 슬픈 운명을 지고 영혼의 분열에 마음을 앓는 존재라는 사실이 인간으로 하여금 예술을 하게 하는 근원이 됨을 알게 한다. 헤르만 헤세는 작품 세계를 통해 내면의 길을 걷는 구도자적인 색채와 서양 문명의 행방에 대한 회의와 동양 사상에 대한 접근 등을 작품 속에 용해시켜 '참다운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대답하고 있다.

 이지적이고 뛰어난 젊은 학자 나르치스 (Narzis)와 감성적이고 다감한 소년 골트문트 (Goldmund)와의 만남과 헤어짐, 골트문트가 이성에 눈을 뜨고 수도원을 떠나 애욕의 편력을 계속하면서 조각가로 성장하는 시기, 사형 당하는 순간에 나르치스가 나타나 골트문트는 구출되고 둘은 함께 수도원으로 돌아와 다시 우정으로 맺어지게 되고 골트문트는 지와 사랑을 융합시킨 마리아상을 조각하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지와 사랑은 이렇게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독일 영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2020)>의 한 장면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야기가 시작될 무렵, 이국의 밤나무가 유난히 눈에 띄는 마리아브론 수도원에는 고립된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한 사람은 선량함과 순진과 겸허를 함께 지닌 늙은 원장 다니엘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기품 있는 희랍어를 구사하고 기사다운 행동을 하며 윤곽이 또렷한 용모와 사색가다운 눈매를 지닌 제자 나르치스였다. 그런데 이 수도원에 골트문트라는 어린 소년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는 곧 모든이와 친해졌으나, 참다운 벗은 쉽사리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소년의 마음을 끈 것은 바로 나르치스였다. 소년은 자기와 정반대로 보이는 나르치스를 존경하게 되었다.

 어느 날 안젤름 신부의 심부름으로 고추 나물을 캐러 갔던 골트문트는 리제라는 집시 여인의 유혹을 받는다. 그는 수도원을 떠날 결심을 하고 나르치스를 찾는다. 나르치스는 마지막으로 "너는 어머니의 품속에 잠자지만 나는 황야에서 눈을 뜨고 있다. 너는 소녀의 꿈을 꾸지만, 나는 소년의 꿈을 꾼다” 라고 작별 인사를 전한다. 골트문트는 약속한 장소에서 리제를 만나 격렬한 정사를 나누며 육체적 희롱을 즐기나, 날이 밝자 그녀는 자기 남편에게로 돌아간다. 골트문트의 기나긴 방랑 생활은 무수한 여인의 눈물을 뿌리게 했다. 그 동안 그는 결혼하지 않은 처녀에게 마음을 쏟고, 사랑하는 방법, 사랑의 기교에 관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방랑 생활이 어언 두 해가 지난 뒤, 골트문트는 어여쁜 두 딸을 가진 노기사의 저택으로 간다. 어느 가을 날, 영주가 부인과 함께 놀러 온 것을 계기로 골트문트는 영주의 부인에게 접근함으로써 노기사의 딸 리디아의 질투심을 불러일으켜 그녀와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런 후 리디아는 골트문트의 잠자리에 나타나 정사를 벌이며, 언니의 행동을 눈치챈 율리에는 언니와 잠자리를 같이하고 있는 골트문트의 방에 들어와 자기도 함께 즐기자고 한다. 이에 놀란 언니 리디아는 뛰쳐나가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고백한다. 골트문트는 당장 쫓겨나고, 리디아는 한스라는 하인을 시켜 그녀가 손수 짠 재킷과 소금에 절인 고기, 금화 하나를 건네준다.

 재킷으로 갈아입고 길을 재촉하던 골드문트는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저녁, 해산의 놀라운 광경을 통해 쾌락과 고통은 동반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마을에서 그는 빅토르라는 유랑자를 만나 함께 유랑 생활을 하지만, 도벽이 심한 빅토르는 골트문트가 잠자는 사이에 주머니를 뒤지다가 발각되자 목을 조르고 달려든다. 골트문트는 자기에게 죽음의 공포가 닥치자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빅토르를 살해한다. 그리고 굶주림에 회한과 공포를 잊고 그저 방황하다가 빅토르와 만났던 마을 근처에 쓰러져 크리스티네라는 부인에게 구출된다.

 얼음이 녹고 오랑캐꽃이 피던 봄날, 그는 어느 아름다운 마을에 도착했다. 그는 빅토르를 죽인 것을 참회하려고 성당을 찾았다가 성모 마리아 상에 매혹되어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이 조각가 니콜라우스라는 사실을 성당 신부 파티우스에게서 듣고 니콜라우스를 찾아 떠난다. 그는 니콜리우스의 제자가 된다. 스승은 리스베트라는 아름다운 딸을, 감동과 투기심에 얽힌 감정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골트문트는 그녀를 눈을 뜬 여인, 관능적인 여인, 괴로워하는 여인으로 초상을 만들고 싶어 했으며, 마음속의 여인, 자기 어머니를 이브의 조각상으로 만들어 보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예술이 아니고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였다. 그는 여러 얼굴들을 소묘하는 것으로 나날을 보내다가 우연히 아그네라는 총독의 첩과 눈이 맞아 육체의 쾌락을 즐기다가 들키게 되자 도둑으로 가장하고 구속된다. 감옥에서 그는 살아야겠다는 집념이 생겨 고해성사를 받으러 신부가 들어오면 그를 죽이고 탈출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신부는 그의 옛 친구 나르치스였다.  

 나르치스의 구원으로 그는 마리아브론 수도원으로 돌아와 일터를 제공받는다. 나르치스는 이 수도원의 원장이 되어 있었다. 그는 이제야 참회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흐뭇해했으나 고해 신부는 그의 죄 자체보다 기도와 참회와 성례를 중시했다. 덕분에 2년 동안은 제작에 열중할 수 있었으나, 작품이 완성되자 그는 조금씩 방랑을 하기 시작한다. 프란체스카라는 처녀에게 구혼을 했다가 실패하자 자기의 늙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리디아의 모습을 부각시킨 마리아 목조상이 완성되자 그는 방랑을 결심한다. 나르치스는 하느님에게 종사하는 자신이 너무 친구에게 집착하고 있음을 스스로 개탄하며 골트문트를 떠나 보낸다.

 말을 타고 떠났던 그는 어느 보슬비 내리는 날 오후, 절뚝거리며 돌아온다. 골드문트는 문병을 온 나르치스에게 최후의 말을 한다. 

 "모든 사람 중 오직 자네만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네. 속세의 모든 여인과 방랑, 그리고 자유가 나를 버린 지금, 나는 자네의 사랑을 받아들이며 감사하네. 하지만 나르치스, 정말 어머니 없이는 죽을 수 없다네.”

 

 

독일 영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2020)>의 한 장면

 

 

 『지와 사랑』은 헤르만 헤세의 53세 때 쓴 소설로서 원숙기에 들어선 헤세의 의욕이 넘치는, 가장 충실함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뛰어난 젊은 학자인 나르치스와 다정다감한 소년 골드문트와의 만남과 헤어짐이 첫 5장이고, 중간의 10장은 골드문트가 여자를 알고 수도원을 떠나 애욕의 편력을 계속하면서 조각 수업을 하는 시기이다. 그리고 골드문트가 수도원으로 돌아와 다시 두 사람이 우정으로 맺어지고, 골드문트가 지와 사랑을 융합시킨 마리아상을 조각하는 마지막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에게 종사하는 나르치스는 사색가요 분석가요 어둡고 야위고 음울하며 지나치게 현명하고 통찰력이 예민하고 완강하며 확실하고 날카롭고 분명하다. 이에 반해 미에 열중하는 골드문트는 몽상가요 예술가요 맑고 수줍은 동심의 예민한 감각과 영감을 지닌 천부적 예술가이고 자연인이다.

 즉, 나르치스는 수도원의 철학자로 지와 정신을, 골트문트는 애욕의 예술가로 사랑과 자연을 상징하고 있다. 나르치스 (Narzis) 와 골드문트 (Goldmund) 라는 두 대비되는 인물의 우정을 통해 이성과 감성의 대립, 정신과 자연의 구분, 선과 악의 갈등을 작가는 이야기한다.

 

 

 

 인간은 이 양극의 어느 한쪽에만 위치할 수 없기에 고뇌하고 죽음과 같은 고통에 빠진다. 그러면서도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지닐 수 있는 인간은 없지만, 이 두 가지를 늘 동시에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고뇌한다. 지와 사랑을 통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인간은 영혼 속에 깃들인 정신적인 측면과 육체적인 측면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합일시킬 것이며, 또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를 작가는 두 인간의 삶을 통해 제시해 주고 있다.

 지성과 감성, 종교와 예술로 대립되는 세계에 속한 두 인물,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나눈 사랑과 우정, 이상과 갈등, 방황과 동경 등 인간의 성장기 체험을 아름답고 순순하게 그려낸 이 소설은 『데미안』과 더불어 헤세의 소설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다. 작가 자신의 삶의 체험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젊은 시절 그의 영혼을 뒤흔들던 추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헤세는 불완전한 인간이자 방황과 방랑, 예술에 대한 동경, 여성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끊임없이 낯선 세계에 부딪히는 청년 골드문트를 통해 자신의 성장기 체험을 한 인간의 운명에 대한 성찰로 승화시키고 있다.

 헤르만 헤세는 독일에서 태어나 1차 세계대전의 상흔을 통하여 내면적인 사고를 가지게 되었다. 인간 존재의 근원에 배반하는 이원성과 대결하며 혼의 자유와 인간성의 고귀함을 얻으려고 고민하였다. 『지와 사랑』은 그 결과물 중의 하나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헤르만 헤세는 194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