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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프란츠 카프카 / 오규원

by 언덕에서 2012. 7. 23.

 

 

 

프란츠 카프카

 

                     오규원(1941~2007)

 

 

-MENU-

 

샤를르 보들레르 800원

칼 샌드버그 800원

프란츠 카프카 800원

 

이브 본느프와 1000원

에리카 종 1000원

 

가스통 바슐라르 1200원

이하브 핫산 1200원

제레미 리프킨 1200원

위르겐 하버마스 1200원

 

시를 공부하겠다는

미친 제자와 앉아

커피를 마신다

제일 값싼

프란츠 카프카

 

 

 


 

위의 시를 다음과 같이 순 우리식으로 바꾸어 쓰면 어떨까요?

 

 

제목 : 이상(李箱 김해경)

 

-차림표-

 

김소월 800원

기형도 800원

이  상  800원

 

임   화 1000원

심상대 1000원

 

김태길 1200원

조   향 1200원

최재천 1200원

김용옥 1200원

 

시를 공부하겠다는

미친 제자와 앉아

커피를 마신다

제일 값싼

李箱 또는 김해경

 

시인은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요? 1200원에서 800원으로 떨어지는 두 갈래 가파른 길이 있습니다. 과학에서 문학으로, 그리고 이론에서 창작으로 내려가는 두 길인 것이지요. 거꾸로 선 메뉴판을 두고 선생과 제자가 마주앉아 있습니다. 스승은 제자에게 급전직하라고 말할까 망설이고 있네요. 

 "제자야, 청년실업이 대세인 이 판국에 꼭 돈 안 되는 시를 공부해야 하겠느냐?" 하면 첫 번째 길을 따르는 해석입니다.

 "제자야, 넌 도대체 시라는 것이 ‘공부’ 가지고 되는 건 줄 아니? 타고난 게 있어야 한다. 너두 알지 않느냐?" 하면 두 번째 해석을 따르는 길이겠네요.  

 말하자면 이 시는 분명한 지식이 숭상되고 창조의 신비가 부정되는 세태에 대한 두 가지의 풍자입니다. 선생은 맹목적으로 시를 배우려는 제자에게 시에는 다른 종류의, 어떤 ‘밝은 맹목’이 필요하다고 말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카프카일까요?  답은 거리마다 카프카란 이름의 카페는 많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시인 자신이 카프카를 가장 좋아하기 때문이겠네요. 그렇다면 한국적으로 변용시켜 '이상(李箱)'이라는 아주 이상(理想)적인 이름의 카페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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