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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록(Rock)음악가 신중현(1938 ~ )

by 언덕에서 2012. 11. 10.

 

 

록(Rock)음악가 신중현(1938 ~ )

 

 

 


 

한국의 록 음악가. 대중음악가. 기타연주자. 작곡가. 한국 최초의 록큰롤 밴드인 애드포를 비롯하여 조커스·덩커스 등의 그룹을 조직하여 활동하면서 한국적 록음악의 지평을 넓혔다. 1973년 '신중현과 엽전들'을 조직해 4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한국 록 음악사에 길이 남을 대표작들을 남겼다. 특히 <미인>이 수록된 1집이 명반으로 평가된다.

 일본의 지배를 받던 시기인 1938년에 서울에서 태어난 신중현은 아버지를 따라 만주벌판을 떠돌았고, 귀국해서는 6·25전쟁 동안 가족을 모두 잃었다. 공장에서 일을 하며 기타를 쳤으며, 1958년 미8군 무대에 기타리스트로 데뷔했다. 신중현은 한국적인 록 음악을 제시했다. 1964년 그는 자신의 첫 앨범이자 한국 록 음악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밴드 애드 포(Add 4)의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이 앨범에는 〈빗속의 여인〉을 담고 있는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애드포에 이어 조커스·덩키스·퀘션스 등의 그룹을 조직해 활동하면서 ‘그룹 사운드’를 한국 땅에 정착시키고 로큰롤의 리듬과 한국적인 리듬을 결합시킨 독특한 사운드를 개척해 나갔다. 록 밴드로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신중현은 1968년 자매 듀오 펄시스터즈의 데뷔 음반을 제작하면서 프로듀서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때 발표한 〈님아〉, 〈커피 한 잔〉, 〈떠나야 할 그 사람〉은 한국에서 히트한 거의 최초의 로큰롤과 리듬 앤드 블루스 곡이 되었다.

 신중현은 뒤이어 김추자와 김정미, 박인수, 장현 등을 발굴하면서 스타 제조기로서 명성을 쌓았다. 1968~73년 발표했던, 박인수가 부른 〈봄비〉(1969),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1970)와 〈거짓말이야〉(1971), 장현의 〈미련〉(1972), 김정미의 〈봄〉(1972) 같은 노래들은 큰 성공을 했다. 신중현은 밴드 더 맨(The men)을 결성해 1972년 한국 록 음악사상 불후의 명곡으로 칭송받는 〈아름다운 강산〉이란 대곡을 발표했고, 이후  자신이 기타와 보컬을 맡고 이남이(베이스)·권용남(드럼)과 함께 3인조 밴드 신중현과 엽전들을 결성해 밴드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3인조 밴드 '신중현과 엽전들'을 결성한 뒤 4장의 앨범을 발표하면서 한국적 록사운드가 담긴 대표작들을 남겼다. 이 중에서도 〈미인〉이라는 노래가 실려 있는 1집은 한국 가요사의 명반으로 꼽힌다.

 1974년 발표한 앨범에는 〈미인〉, 〈떠오르는 태양〉 등 총 10곡이 담겨 있는데, 이 음반은 록 밴드로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최초의 음반이었다.

 

 

 

 

 하지만 그는 1975년 대마초 사건으로 인해 5년 동안 활동을 하지 못했다. 유신정권이 막을 내리고 그는 마흔이 넘은 나이로 컴백해 신중현과 뮤직파워, 세 나그네 같은 후속 밴드를 결성했지만 군사정권 아래에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언론과 음악비평계는 그의 음악사적 의미를 재조명 했으며, 봄여름가을겨울·강산에·윤도현·한영애를 위시한 후배 뮤지션들은 헌정 앨범 〈A Tribute To 신중현〉(1997)을 발표했다.

 2006년 신중현은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은퇴를 선언하고 은퇴 공연을 가졌다. 인천에서 시작한 그의 은퇴 공연은 전국을 돌고 마지막으로 서울에서 45년 음악 인생의 대미를 장식했고, 그는 한국 록 음악계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그밖의 앨범으로는 〈무위자연〉(1994)·〈김삿갓〉(1997)·〈Body & Feel〉(2002)·〈도시학(都市鶴)〉(2005) 등이 있다.

 2008년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았으며, 2009년 12월에는 아시아 대중음악가로는 처음으로 세계적 기타 제조회사 펜더(Fender)로부터 맞춤 제작한 기타를 헌정받았다. 시나위의 기타리스트인 신대철을 비롯하여 신윤철·신석철 등 세 아들도 대를 이어 록 음악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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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록음악의 대부’ ‘대한민국 록의 구세주’ <중앙일보 2012. 11/8>


신중현(74)의 이름 앞에 붙는 이 수사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963년 한국 최초 록밴드인 애드포를 결성했고, 삼천만의 가요로 통했던 ‘미인’을 비롯해 ‘빗속의 여인’ ‘커피 한 잔’ 등 히트곡들을 쏟아낸 그다. 2009년엔 세계적인 기타 제작사 펜더는 기타를 헌정하기도 했다.

 그런 신씨가 다음 달 1~2일 오후 7시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단독 ‘더 기타리스트 신중현 콘서트’를 연다. 국내 공연은 2010년 ‘헌정 공연’ 이후 2년 만이다. 신씨를 7일 서울 명륜동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의 백발은 단발 정도로 자라 있었다. “록의 진수를 보여주기 위해 머리까지 길렀다”고 했다.

 신씨는 9월 2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엘 레이 시어터에서 첫 단독 공연을 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신씨의 대표곡을 모은 베스트 앨범 이 발매된 뒤 팬들의 요청으로 열린 공연이다.

 “미국 사람들이 표를 모두 사버린 바람에 교포들은 못 들어왔어요. 노래가 전부 한국말이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첫 곡 ‘떠나야 할 그 사람’부터 마지막 곡  ‘아름다운 강산’까지 굉장한 환호를 보내줘서 저도 용기가 났죠.” 신씨는 “앙코르를 전혀 준비하지 않았는데, 앙코르가 계속 쏟아져 무대 뒤로 도망갔다”며 웃었다.

 이번 공연 1부에서 신씨는 두 아들 윤철(기타·건반), 석철(드럼)씨가 중심이 된 4인조 밴드, 12인조 현악단과 협연한다. “1부에선 대중적으로 히트했던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 ‘커피 한 잔’ 등을 편곡해 선보일 거에요. 바이올린을 활용해 감정과 멜로디를 더 살렸죠. 2부는 좀 더 고차원적인, 정통 사이키델릭(환각) 록의 진수를 들려줄 겁니다.”

 신씨는 2006년 은퇴를 발표했다. 하지만 2009년 펜더 기타를 받은 뒤 “못다한 음악을 대중에 알리라는 하늘의 뜻인 것 같다”며 공연을 재개했다. ‘록의 대부’로 추앙받는 그에게도 고난이 있었다.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 75년부터 5년간 활동이 금지됐고, 복귀 후 대중으로부터 외면받기도 했다. 그는 “이번에 미국에 가서 ‘한국에서 태어난 난 행운아’라는 걸 느꼈다”고 했다.

 “한국은 춥고 덥고 맵고 짜고 굴곡이 심한 나라죠. 그 나라에서 온갖 역경을 부닥치며 살았기에 ‘내가 이런 기타 소리를 낼 수 있구나’ 싶었어요.”

 그는 “30대 땐 힘이 넘쳐 힘으로 기타를 연주했다면, 지금은 도(道)로 연주한다”고 했다.

 “손가락 힘만으로 내는 억센 소리를 넘어 지금은 손가락과 마음이 함께하는 정신적인 소리를 내고 있죠. 이 기타로, 일흔이 넘어서도 이런 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걸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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