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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시인ㆍ소설가 황순원

by 언덕에서 2012. 10. 13.

 

 

 

 

시인ㆍ소설가 황순원(黃順元 1915.3.26∼2000.9.14)

 

 

 


시인ㆍ소설가.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재경면(在京面) 빙장리(氷庄里)에서 찬영(贊永)의 맏아들로 출생. 1929년 평양 숭덕소학교(崇德小學校)를 나와 같은 해 정주(定州) 오산중학교(五山中學校)에 입학, 다시 평양 숭실중학교(崇實中學校)로 전학했다.

 1930년부터 동요ㆍ시를 신문에 발표하기 시작, 이듬해 [동광(東光)]에 시 <나의 꿈>을 발표하고, 다른 잡지에도 작품을 게재했다. 1933년 시 <1933년의 수레바퀴> 등 다수의 작품을 내놓고, 이듬해 숭실중학을 졸업한 뒤, 일본 도쿄(東京) 와세다 제2고등학원(早稻田第二高等學院)에 입학했다. 이 무렵 도쿄에서 이해랑(李海浪)ㆍ김동원(金東圓) 등과 함께 극예술연구단체인 [학생예술좌(學生藝術座)]를 창립, 초기의 소박한 서정시(抒情詩)들을 모아 첫 시집 <방가(放歌)>(학생예술좌)를 출간했다.

 1935년 동인지(同人誌) [삼사문학(三四文學)]의 동인으로 시와 소설을 발표, 다음해 와세다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하고, 모더니즘의 영향이 짙은 제2시집 <골동품(骨董品)>(학생예술좌)을 발간했다. 이해 동인지 [창작(創作)]을 발행하고, 시와 소설을 발표, 1939년 와세다대학을 졸업했다.

 일제시대에 시집 <방가(放歌)>(1934) <골동품>(1936) 등으로 시단에 등단, 반세기에 걸쳐 의연하고 준엄한 자세와 인품으로 창작 활동과 문학의 독자적인 본령을 엄정하게 지켜 왔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인식의 심화와 확대에 기조하면서 한국인의 삶과 존재 양식을 탁월하게 천착(穿鑿)하고 형상화해 냄으로써 한국 문학의 위상을 높게 이끌어 올렸다. 그의 문학적 업적은 <소나기><학>을 비롯한 1백여 편의 단편과 <카인의 후예><일월><움직이는 성(城)> 등 장편에 응축되어 있을 뿐 아니라 단편에서 장편으로 확대된 그의 서사적인 세계의 추이 그 자체가 곧 우리 문학사의 질적 확산과 긴밀한 맥락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는 문학 작업에 의해 원형의 상징 형식을 통한 한국인 정신의 내면적 기조를 밝혀냄은 물론 신의 절대 가치와 인간 존재의 실존적인 구극(究極)과 구원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깊은 문제의식을 제기, 한국 소설사에 있어 크게 주목을 끄는 작가이다.

 일찍이 중학시절부터 동요와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1934년에 그의 소박한 서정시를 모아 <방가>라는 첫 시집을 출간했다. 1939년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신속>의 동인으로 활동하며 주로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발표하였다가 첫 단편집 <늪> 발간을 계기로 시인에서 소설가로 변모한다.

 그는 한국 사실주의 문학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세부묘사 같은 것은 대담하게 생략하고 이미지 전달에 주력한다. 초기 소설인 <별><소나기> 등의 작품에는 애수와 정감, 생의 비애들이 간결한 수법으로 잘 다루어져 있다.

 인간의 본능이나 직관의 세계를 다루며 인간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며, 순수하고 아름다움의 동경이 주된 소재인 서정적 세계를 다루었다. 사건의 급박한 흐름은 거의 없고 심리묘사와 분위기 조성으로 사건을 이끌어 가는 특징을 보여 준다. 6ㆍ25를 분수령으로 후기에는 보다 사회적인 방면으로 시선을 돌려 현대 문명의 역기는, 세태 묘사, 예민한 현실 감각을 보이고 있다.

 

 

 


 황순원의 작품을 대할 때 드러나는 것은 우선 그의 문체의 설화성(說話性)이다. 문체의 설화성은 묘사의 철저한 거부와 대화의 배척으로 나타나며, 그것은 기록의 완벽성(完璧性)에서 연유된다. 그리고 또한 기록의 완벽성은 문장의 정확성을 그 생명으로 한다.

 그에게 있어서의 유례없이 철저한 묘사의 거부는 주제나 소재를 작가가 통제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시각(視覺)의 거부라 볼 수 있다. 시각이 거부도리 때 생은 내면 탐구로서의 무의식(無意識)의 추구로 나가든가, 맹목적인 것에로 향하는 두 길이 놓이게 된다. 전자의 경우는 근대라는 관념으로 생을 파악하려 하여 어쩔 수 없이 주기 분열에 처하고 만 이상(李箱)과 최명익(崔明翊)을 들 수 있으며, 후자의 경우는 시각 또는 생활을 거부하고 눈을 감았을 때 운명과 형식이 동일화(同一化)되어진 선험성(先驗性)에 멈추게 된 김동리(金東里)를 들 수 있다.

‘구경적 생의 형식’이라는 운명관에서 천형(天刑)이라든가 죄와 벌, 육성(肉聲) 등 형식화된 과장을 제거하고 남은 자리에 놓이는 것은 생명 외경(畏敬)의 시상이다. 원시적 생의 강인성(强靭性)이 사각을 부정하고, 혹은 모사를 거부하는 것은 생명의 드러남이 언제나 내재적(內在的)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재성은 김동리의 초월성(超越性)과 병치(竝置)될 수 있다. 이러한 생명 외경(畏敬)을 선험성(先驗性)으로 대체심시 놓은 것이 황순원의 <별과 같이 살다>, <목넘이 마을의 개><거리기> 등의 작품 군이다. 특히 <별과 같이 살다>와 <목넘이 마을의 개>는 원시적 생명력의 강인성이자 한민족의 강인성을 보여주고 있어서 그의 문체의 묘사의 거부라는 측면과 내용으로서의 현실 인식의 강도의 측면을 통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간결하고 세련된 문체, 소설 미학의 전범을 보여주는 다양한 기법적 장치들, 소박하면서도 치열한 휴머니즘의 정신,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에 대한 애정 등을 고루 갖춘 황순원의 작품들은, 많은 논자들에 의하여, 한국 현대 소설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위치한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특히 그의 소설들이 예외없이 보여주고 있는 서정적인 아름다움은 소설 문학이 추구할 수 있는 예술적 성과의 한 극치를 실현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소설 문학이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 주력할 경우 자칫하면 역사적 차원에 대한 관심의 결여라는 문제점이 동반되기 쉬운 법이지만, 황순원의 문학은 이러한 위험도 잘 극복하고 있다.

 그의 여러 장편소설들을 보면,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충실히 견지되는 가운데, 일제 강점기로부터 이른바 근대화가 제창되는 시기에까지 이르는 긴 기간 동안의 우리 정신사에 대한 적절한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문예 사조의 관점에서 볼 때, 그의 문학 세계에서 주조음을 이루고 있는 것은 낭만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황순원은 한번 작품이 발표된 후에도 기회만 있으면 끊임없이 손질을 거듭하는 장인적 집요함의 소유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