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소설 『호질(虎叱)』
조선 후기의 소설가ㆍ실학자인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영조13∼1805.순조5 )이 지은 한문 단편소설로 작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중 ‘관내정사(關內程史)’에 실린 작품이다. <열하일기>는 박지원이 44세 때인 1780년(정조 5)에 삼종형 명원(明源)이 청나라 고종 건륭제의 칠순 잔치 진하사로 베이징(北京)에 가게 되자 자제군관의 자격으로 수행하면서 곳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남긴 기록이다. 「호질」은 연암의 소설 중에서도 양반계급의 위선을 비판한 작품으로 <허생전(許生傳)>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기문(奇文)으로 널리 알려진 소설인데, 위선적 인물을 대표하는 북곽과 동리자를 내세워 당시의 양반 계급, 즉 선비(실은 선비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부패한 도덕관념을 풍자하여 비판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형식에 있어 전기체를 완전히 탈피하였으나 순정하지 못하다는 비판도 받았다. 동음어를 교묘하게 활용하고 민담과 전설을 삽입하면서 생략과 압축으로 완성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산중에 밤이 되자 범이 부하인 여러 귀신들을 모아 놓고 저녁거리를 의논한 후 마을로 내려온다. 이 때, 마을에서는 정지읍에 사는 도학(道學) 높고 인격이 고매하다고 소문난 북곽 선생과 절행(節行)이 뛰어나 천자가 칭찬하고 제후가 그 현숙함을 사모하는 동리자가 밀회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동리자의 다섯 아들 모두 그 성(姓)이 달랐으니, 동리자는 사실은 음부(淫婦)였던 것이다. 북곽 선생 또한 이런 동리자와 밤에 밀회 가졌으니 그 역시 위선적인 인물이었다.
동리자의 다섯 아들들은 이 밀회 광경을 보고 인격이 높은 북곽 선생이 밤중에 과부의 방에 들어올 리가 없다 하고 북곽 선생을 여우로 단정하여 방으로 쳐들어간다. 이에 북곽은 크게 당황하여 도망치다가 그만 들판의 똥구덩이에 빠지고 만다 간신히 똥구덩이에서 기어올라 왔으나 뜻밖에 범을 만나 크게 질책을 당하고, 마지막으로 새벽에 농부를 만났지만 또다시 위선적인 행동을 함으로 끝내 위선자의 탈을 벗지 못한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인 북곽 선생은 도학(道學)이 높고 인격이 고매(高邁)하다고 소문이 난 사람이었으며, 동리자는 수절 과부로 절행(節行)이 뛰어나 천자가 칭찬하고 제후가 그 현숙함을 사모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동리자에겐 성이 다른 아이들이 다섯이나 있었으니, 그녀는 실은 음부(淫婦)였다. 또 북곽 선생은 이런 동리자와 밤에 밀회를 가졌으니, 그 역시 위선적인 인물이었다. 그래서 북곽 선생은 아이들에게 여우로 몰려 곤욕을 당하고, 다시 똥구덩이에 빠졌다가 호랑이에게 질책을 당하고, 마지막으로 새벽에 만난 농부 앞에서 또 위선적인 행동을 한다.
이처럼 이 작품은 도덕이 높다고 소문난 북곽 선생이 결국은 여우같은 인간이요, 온 몸에 똥을 칠한 더러운 인간이요, 끝까지 위선을 버리지 못한 파렴치한 인간이라는 것을 고발, 풍자하고 있다. 또한 그 정절로써 천자와 제후들에게까지 우러름을 받는 과부의 다섯 아들이 모두 성이 다르다고 비꼰 것은 겉모습, 혹은 세상의 평판만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 없음을 통렬하게 풍자한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은 유학자의 위선과 아첨, 인간의 탐욕스러움을 호랑이라는 동물의 입을 빌려 질책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이 작품은 글 뒤에 붙인 박지원의 논평을 통하여 만주족의 압제에 곡학아세(曲學阿世: 道에서 벗어난 학문을 닦아 세상에 아부함.)하는 중국 인사들의 비열상을 풍자한 것으로 주제를 파악할 수 있다. 원래 중국의 어느 무명작가의 글을 연암이 약간 가필한 것이라 한다.
<호질>은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 사정에 비추어 두 가지 주제의 설정이 가능해진다. 하나는 북곽선생으로 대표되는 유자(儒者)들의 위선을 비꼰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리자로 대표되는 정절부인의 가식적 행위를 폭로한 것이다.
특히, 유자의 위선을 공격하면서 호랑이가 강상(綱常: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을 아울러 이르는 말)의 윤리를 절대당위로 조작한 북곽선생을 꾸짖은 것은 유가일반의 독선적 인간관을 풍자한 것이다.
♣
「호질」의 구성에 있어서 연암은 음란한 곳의 대명사가 된 정(鄭)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산, 집, 들판으로 장소를 옮기면서 황혼이 되어 음험한 계략이 꾸며지고, 밤이 되어 음란한 행위가 연출되며, 새벽이 되자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는 극한상황으로 이어지다가, 아침이 오자 다시 옛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교묘한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산에서 육혼이 유자를 추천한 것은 들판에서 북곽선생과 호랑이를 만나게 하기 위한 복선이었으며, 들판의 분뇨구덩이는 호랑이가 북곽선생을 잡아먹지 않는 상황에 필연성을 부여하고 있다.
「호질」은 그 형식에 있어 전기체를 완전히 탈피하였으나 순정하지 못하다는 비판도 받았다. 동음어를 교묘하게 활용하고 민담과 전설을 삽입하면서 생략과 압축으로 완성된 이 글은 연암 스스로도 절세기문(絶世奇文)이라 평가하였다.
'古典을 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대소설『허생전(許生傳)』 (0) | 2012.06.13 |
---|---|
고대소설 『변강쇠가(가루지기타령)』 (0) | 2012.06.05 |
고대소설 『설공찬전(薛公瓚傳)』 (0) | 2012.05.22 |
고대소설 『박씨전(朴氏傳)』 (0) | 2012.05.17 |
세계최고 여행기『열하일기(熱河日記)』 (0) | 2012.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