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소설『변강쇠가(가루지기타령)』
작자ㆍ연대 미상의 판소리 계통의 작품으로 1권 1책, 국문 필사본이다. ‘변강쇠타령’ㆍ‘가루지기타령’ㆍ‘송장가’ㆍ‘횡부가(橫負歌)’라고도 한다.
현존작품은 신재효(申在孝)에 의해 개작된 <변강쇠가>만이 있을 뿐, 다른 판소리처럼 소설화되어 전하는 것은 없다. 유랑민들의 비극적 생활상을 희극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조선 후기의 문인 송만재의 '관우희'에 '변강쇠타령'이라는 곡명이 보이고, 조선 후기의 판소리 이론가 신재효의 '판소리 여섯 마당'에 '변강쇠가'의 사설이 정리되어 있다. 또한 1940년 조선일보사에서 간행한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 의하면 조선 말기의 명창인 송흥록ㆍ장자백 등이 이 소리를 잘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어 적어도 19세기말까지는 '변강쇠타령'이 연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로는 판소리의 전승과정에서 소리의 맥을 상실하였으며, 박동진 명창이 신재효 대본을 바탕으로 소리를 재현한 '변강쇠가'가 가끔씩 공연되었다.
신재효가 지은 판소리 사설 6마당 가운데 가장 이색적인 작품으로 적나라한 성의 묘사와 노골적인 음담이 전편에 깔려 있는 외설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한국 고전에 드문 성문학(性文學)이다. 적나라한 성적 묘사, 음담패설, 외설적인 표현이 두드러진다. 기왕에 전해 온 것은 성적 표현이 지나치게 비속하였으나 신재효는 이를 서민적인 냄새가 짙으면서도 차원 높은 문학적 표현으로 개작하였다. 이 작품은 근래에 창극이나 마당극으로는 종종 상연되며 만화나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다. 여타의 판소리계 소설과는 차별화된 과정으로 이어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괴상망측한 이야기에 조선 후기의 모습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변강쇠가>는 줄거리가 괴상망측하고 음란하기로 둘째가면 서러운 작품이다.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주인공인 ‘변강쇠’와 ‘옹녀’는 익히 알고 있다. 그들이 정력가와 색골의 캐릭터로 널리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양반이나 부녀자가 감상하기에는 부적절하게 여겨져 판소리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도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다시 재창조되는 것은 단지 노골적인 주인공 캐릭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작품에는 조선 후기 사회에서 발생한 유랑민이 유랑에도 실패하고 정착에도 실패하여 패배하고 죽어갔던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변강쇠의 무지와 심술 이전에 그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회적 현실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또 ≪변강쇠가≫에서 주목되는 점은 예술 작품에서 금기로 여기는 ‘성(性)’과 ‘죽음’을 노골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의 시작부터 옹녀의 남편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하고, 동네에서 쫓겨난 옹녀가 유랑하다 만난 강쇠와는 관계 장면이 노골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강쇠가 장승에게 징벌을 받을 때, 온갖 징그러운 병이 나열되고, 계속해서 죽어나가는 송장의 모습도 계속 묘사된다. ≪변강쇠가≫는 매우 괴이하고 끔찍하여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작품이라 자칫 작품의 본질을 보지 못할 수 있다. 당시 사회상과 인물의 처지를 곰곰이 생각하며 표면적인 내용 아래 감춰진 깊은 의미가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천하잡놈인 강쇠는 남쪽지방에서 북쪽지방으로 올라오고, 팔자에 과부로 운명 지워졌기 때문에 마을에서 쫓겨난 옹녀는 북쪽지방에서 남쪽지방으로 내려간다. 두 사람은 개성으로 넘어오는 골목인 청석관에서 만나 즉시 부부로 결합한다.
강쇠와 옹녀는 혼인 후에도 유랑을 계속한다. 옹녀는 생활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는 데 반해, 강쇠는 도리어 온갖 못된 짓을 혼자 다 저지른다. 결국 이들은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지리산에 정착하게 된다.
그러나 나무하러 간 강쇠가 장승을 패 와서 군불을 때고 자다가 장승 동티(動土 :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건드려 그것을 관장하는 지신의 노여움을 사서 받게 되는 재앙)로 죽는다. 죽은 강쇠의 시체를 치우기 위해서 옹녀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맨 처음 지나가던 중이 강쇠의 시체를 묻은 뒤 옹녀와 같이 살려고 하다가, 시체에서 나오는 독기인 초상살(初喪煞)을 맞고 죽어버린다. 이어서 유랑 광대패인 초라니와 풍각쟁이들이 나타나서 강쇠의 시체를 묻으려다가 역시 초상살을 맞고 차례로 죽어 넘어진다.
마지막으로 마종(馬從)출신의 뎁득이가 각설이패의 도움을 받아 시체를 운반하던 중, 시체들과 그것을 지고 가던 사람들이 함께 땅에 붙어버린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옹좌수가 굿판을 벌이자, 땅에 붙었던 사람들이 땅에서 떨어진다. 마지막까지 강쇠의 시체가 등에 가로 붙어서 애를 먹던 뎁득이도 시체를 떼어내고는 옹녀 곁을 떠나버린다.
이 작품은 기원이나 형성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판소리사에 하나의 문제를 제기한다. 서도(西道)나 경기지방에 <변강쇠타령> 또는 <변강수타령>이 잡가로 전하고 있는데, <변강쇠가>보다 단순한 내용이며 <변강쇠가>의 기원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왔다.
<변강쇠가>는 경기지방의 탈춤과도 상통하는 점이 있다. 작품 속의 유랑하는 대목을 보더라도, <변강쇠가>는 <배뱅이굿>과 더불어 판소리의 다른 작품과는 상이하게 경기 이북 지방에서 생겨났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판소리의 형성기에 충청도 이남에서 불리는 남도창(南道唱)의 중요한 종목으로 등장된 <변강쇠가>는 장승제의와 같은 굿에서 파생되었으리라 추정하는 견해도 있어서 기원과 형성을 밝혀내는 일이 매듭지어진 것은 아니다.
<변강쇠가>의 중요한 소재로는 음탕한 남녀의 이야기, 바보 온달 이야기에 나오는 <상여부착설화(喪輿附着說話)>를 들 수 있다. 이외에도 아홉 번씩이나 결혼한 여자의 이야기인 <구부총설화(九夫塚說話)>, 장승동티의 민속적 금기(禁忌), 시체를 가로지는 관습적 사실 등이 지적되어왔다.
이러한 소재들은 너무 단편적이고 서로 관련성을 맺을 수 없는 성질의 것들이어서, <변강쇠가>의 기원이나 형성의 구심점이 되었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중론이다. 이 소재들은 작품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유랑민의 생활과 그들의 유랑 생활에서 나타나는 참혹한 모습에 관한 것이다. 작품의 전반부는 유랑하던 강쇠와 옹녀가 정착생활을 강렬히 열망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좌절하고 마는 모습을 보여준다. 후반부 역시 정착생활에 실패하고 마는 유랑민들의 좌절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유랑민들의 비극적 삶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유랑광대들이 그들의 생활을 직접 이야기하는 방식을 통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보인다. <변강쇠가>가 잘 짜여 있다는 인상을 주기보다는 아무렇게나 얽혀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는 점도 그러한 가능성을 짐작하게 해 준다.
♣
이 작품은 겉으로는 매우 희극적으로 보이지만 속으로는 비극적 구조를 감추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부분은 떠돌아다니면서 삶을 즐기는 인물들이 아니다. 오히려 삶의 터전을 잃고 살아나가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해야 하는 인물들이다.
그렇게 볼 때 이들은 비참하고 불행한 인물들이다. 이러한 인물들이 작품의 진행에 따라 죽거나 파멸한다는 점에서 비극적 삶의 종말을 보여준다.
그런데 비극적 삶의 종말은 희극적으로 표현되며, 이에 따라 이 작품의 비극적 구조는 희극적 요소에 차단당한다. 비극적인 삶의 이야기가 희극적으로 나타나는 까닭은 유랑광대패가 청중이나 관중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비참하고 불행한 자신들의 삶의 모습을 희극적으로 변형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판소리로 불렸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풍부한 문학적 형상력을 보이고 있다. 특히 남녀의 성기를 묘사하는 기물타령(奇物打令)에서는 놀라운 상상력과 다양한 비유로써 남녀 성기의 묘사와 유랑민들의 현실적 욕구를 교묘히 묶어놓은 언어적 형상력이 나타나 있다. 일부를 보도록 하자. 강쇠와 옹녀가 처음 만나서 관계를 갖는 장면이다.
계집이 허락한 후에 청석관을 처가로 알고, 둘이 손길 마주 잡고 바위 위에 올라가서 대사(大事)를 지내는데, 신랑 신부 두 년놈이 이력(履歷)이 찬 것이라 이런 야단(惹端) 없겠구나. 멀끔한 대낮에 년놈이 홀딱 벗고 매사니 뽄 장난할 때, 천생음골(天生陰骨) 강쇠놈이 여인의 양각(陽刻) 번쩍 들고 옥문관(玉門關)을 굽어보며,
"이상히도 생겼구나. 맹랑히도 생겼구나. 늙은 중의 입일는지 털은 돋고 이는 없다. 소나기를 맞았던지 언덕 깊게 패였다. 콩밭 팥밭 지났는지 돔부꽃이 비치였다. 도끼날을 맞았든지 금바르게 터져 있다. 생수처(生水處) 옥답(沃畓)인지 물이 항상 고여 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옴질옴질 하고 있노. 천리행룡(千里行龍) 내려오다 주먹바위 신통(神通)하다. 만경창파(萬頃蒼波) 조개인지 혀를 삐쭘 빼였으며 임실 (任實) 곶감 먹었는지 곶감씨가 장물(臟物)이요, 만첩산중(萬疊山中) 으름인지 제가 절로 벌어졌다. 연계탕(軟鷄湯)을 먹었는지 닭의 벼슬 비치였다. 파명당(破明堂)을 하였는지 더운 김이 그저 난다. 제 무엇이 즐거워서 반쯤 웃어 두었구나. 곶감 있고, 으름 있고, 조개 있고, 연계 있고, 제사상은 걱정 없다."
저 여인 살짝 웃으며 갚음을 하느라고 강쇠 기물 가리키며,
"이상히도 생겼네. 맹랑이도 생겼네. 전배사령(前陪使令) 서려는지 쌍걸낭을 느직하게 달고, 오군문(五軍門) 군뇌(軍牢)던가 복덕이를 붉게 쓰고 냇물가에 물방안지 떨구덩떨구덩 끄덕인다. 송아지 말뚝인지 털고삐를 둘렀구나. 감기를 얻었던지 맑은 코는 무슨 일인고. 성정(性情)도 혹독(酷毒)하다 화 곧 나면 눈물난다. 어린아이 병일는지 젖은 어찌 게웠으며, 제사에 쓴 숭어인지 꼬챙이 구멍이 그저 있다. 뒷절 큰방 노승인지 민대가리 둥글린다. 소년인사 다 배웠다, 꼬박꼬박 절을 하네. 고추 찧던 절굿대인지 검붉기는 무슨 일인고. 칠팔월 알밤인지 두 쪽이 한데 붙어 있다. 물방아, 절굿대며 쇠고삐, 걸낭 등물 세간살이 걱정 없네."
그런데 이러한 묘사가 일으킬 외설적․감각적인 자극이 투철한 현실인식을 계기로 바뀌고 있다는 점은 주목되는 일이다.
한편, 다른 판소리 작품들은 생산 주체인 광대들의 문화와 소비 주체인 양반 사대부층의 문화의 상호관련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오로지 생산 주체인 하층민의 문화적 성격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판소리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작품은 신재효가 정착시킨 여섯 마당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종 때까지는 계속 공연되었던 작품으로 보이나, 현재는 전수가 끊어진 상태이다. 다만 박동진(朴東鎭) 명창에 의해 불려진 바가 있기는 하다.
『변강쇠가』보다 훨씬 더 조잡하고 음란한 대사로 구성되는 민속극은 현재까지도 전승되고 있다. 이와 관련지어 볼 때, 이 작품의 사설이 조잡하고 내용이 음란하기 때문에 판소리의 공연작품으로서의 생명이 일찍 단축되었다는 견해는 <변강쇠가>의 판소리역사적인 운명을 완전히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다.
'古典을 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대소설『양반전(兩班傳)』 (0) | 2012.06.21 |
---|---|
고대소설『허생전(許生傳)』 (0) | 2012.06.13 |
고대소설 『호질(虎叱)』 (0) | 2012.05.29 |
고대소설 『설공찬전(薛公瓚傳)』 (0) | 2012.05.22 |
고대소설 『박씨전(朴氏傳)』 (0) | 2012.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