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고 여행기『열하일기(熱河日記)』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박지원(朴趾源.1737∼1805)의 연행기(燕行記)로 26권 10책이다. <연암집(燕巖集)>에 수록되어 있다. 44세 때인 1780년(정조 5)에 삼종형 명원(明源)이 청나라 고종 건륭제의 칠순 잔치 진하사로 베이징(北京)에 가게 되자 자제군관의 자격으로 수행하면서 곳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남긴 기록이다. 청 건륭제의 피서지인 열하(熱河·현재 중국 허베이성 청더·河北省 承德)를 다녀온 것을 기록했기에 후에 열하일기라 불렸다. 열하에는 18세기 초 건립된 청나라 이궁(離宮=별궁)이 있었다. 박지원은 팔촌형님이던 정사(正使) 박명원(1725~1790)을 수행하는 자격으로 청으로 갔다. 1780년 6월, 압록강 국경을 건너 열하에 도착한 뒤 그 해 8월, 다시 연경에 돌아오기까지, 여행 기록은 물론 청조 문인 명사들과의 친교나 청나라의 문물제도 등에 대한 느낌을 날짜순으로 기록했다.
이 책에는 중국의 역사·지리·풍속·습상(習尙)·고거(攷據)·토목·건축·선박·의학·인물·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문학·예술·고동(古董) 지리·천문·병사 등에 걸쳐 수록되지 않은 분야가 없을 만큼 광범위하고 상세히 기술되어있다. 수레나 선박의 활용과 벽돌의 사용, 지동설에 대한 중국학자들과의 토론 등 청조의 번창한 문화와 문물을 본받을 것(북학·北學)을 주장,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기념비적 저작중 하나로 꼽히며 파격적 문장으로 국문학적으로는 영-정조(英-正祖) 연간 문체반정(文體反正)의 중요 저술로도 평가된다. 이 열하일기는 26권 10책으로 되어 있으며, 그 속에는 허생전, 호질 등도 실려 있다.
당시 사회 제도와 양반 사회의 모순을 신랄히 비판하는 내용을 독창적이고 사실적인 문체로 담았기 때문에 위정자들에게 배척당했고, 따라서 필사본으로만 전해져오다가 1901년 김택영에 의해 처음 간행되었다.
책의 구성은 크게 2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7권은 여행 경로를 기록했고 8∼26권은 보고 들은 것들을 한 가지씩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연행도’ 제13폭 ‘유리창(琉璃廠)’. 연경 유리창의 화려한 가게들과 번화한 거리를 묘사한 그림이다.
2명의 인물이 각각 낙타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가운데 아래)은 조선에서 구경하기 어려운 낯선 풍경이다.
<도강록(渡江錄)>은 압록강에서 랴요양(遼陽)에 이르기까지 15일간의 기록으로, 굴뚝과 구들 등 여염집의 구조와 배, 우물, 가마, 성(城)의 제도 등 배울 만한 것이 있으면 자세히 서술하면서 모든 물건을 이롭게 쓸 수 있어 백성의 생활이 윤택해져야만 덕을 바르게 할 수 있다는 이용후생의 주장을 폈다.
<성경잡지(盛京雜識)>는 스리허(十里河)에서 소흑산(小黑山)에 이르기까지의 5일간의 기록으로, 속재필담ㆍ상루필담 등 여정에서 사사로이 만난 평민들과 나눈 대화와, 그곳의 산천ㆍ절ㆍ사당ㆍ탑ㆍ골동품 등을 주로 소개하고 있다.
<일신수필(馹迅隨筆)>은 신광녕(新廣寧)에서 산하이관(山海關)에 이르기까지의 9일간의 기록으로 희대(戱臺)ㆍ저자거리ㆍ여관ㆍ교량 등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수레의 제도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한 것은 <허생전>의 중심 사상과도 상통한다.
<관내정사(關內程史)>는 산하이관 안에서부터 연경(베이징[北京]의 옛 이름)까지의 기록으로, 열상화보(洌上畵譜)에서는 특히 그림에 대한 그의 견해를 읽을 수 있다. 한편 이 안에 실려 있는 단편소설 <호질(虎叱)>은 중국인의 작품임을 빙자해 공격의 화살을 피하면서, 백이·숙제 사당 참관기와 함께 양반 사회의 모순과 명분론에 대해 강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열하일기’ 여정도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은 연경에서부터 러허[熱河]로 가기까지의 기록으로 연경에 겨우 도착한 사신 일행이 러허로 피서가 있는 황제를 좇아 밤을 새워 달려가는 동안에 겪은 숱한 고생들을 현장감 있게 서술하고 있다.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은 러허의 태학관에 머물러 있는 동안 목도한 중국 조관들과 황제 접견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하고, 또 우리나라의 역사ㆍ지리ㆍ풍속ㆍ제도ㆍ시문과 천체ㆍ음률ㆍ활불(活佛) 등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과 문답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 편에 수록된 지전설에 관한 토론은 과학에 있어 선구적인 그의 견해를 보여준다.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은 러허에서 다시 연경으로 돌아오면서 급히 갈 때 보지 못했던 것을 적고 있는데, 특히 교통 제도에 대해 서술한 것이 주목된다.
<경개록(傾蓋錄)>은 러허 태학관에서 한족과 만주족의 학자 10여 명과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며,
<황교문답(黃敎問答)>은 불교의 한 지파인 라마교 중에서 갈라져 나온 황교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아울러 각 종족과 종교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중국 청나라 황제들을 위한 휴양지였던 허베이성 청더의 피서산장. 연암 박지원의 청나라 기행기인 ‘열하일기’의 열하가 바로 지금의 청더다
<반선시말(班禪始末)>은 황교의 법왕인 반선의 내력과 우리 사신이 반선을 만나보게 된 시말을 기록한 것이고,
<찰십륜포(札什倫布)>는 곧 반선이 살고 있는 지명으로서 그가 거하는 호화찬란한 궁전 등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망양록(忘羊錄)>에는 주로 음악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어 그의 악론을 살필 수 있으며,
<심세편(審勢編)>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청나라를 오랑캐 출신이라 하여 업신여기고 주시하지 않는 것을 지적하면서 아울러 반주자학적 견해를 역설하고 있다.
<곡정필담(鵠汀筆談)>은 중국인 곡정 왕민호와의 필담으로서, 정치ㆍ경제ㆍ종교ㆍ지리ㆍ역사ㆍ학문ㆍ풍속 등 다방면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특히 천문에 깊은 관심을 두고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박지원이 ‘열하일기’의 일신수필에서 언급한 청나라의 수레를 묘사한 그림
<산장잡기(山莊雜記)>는 러허 산장에서 보고 느낀 바를 담은 것으로 내면에 침잠하여 얻은 깨달음을 서정적으로 엮고 있다.
<환희기(幻戱記)>는 황제의 만수절을 축하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요술쟁이들을 구경한 이야기이고,
<피서록(避暑錄)>은 중국의 황제와 학자, 우리나라 학자들의 시 등에 관한 시문 비평을 적은 것이다.
<행재잡록(行在雜錄)>은 청나라 고종의 행재소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로서, 청나라가 조선에 대해 취한 정책을 적고 조선 당국자들의 청나라에 대한 관심과 대처가 너무나 소홀함을 개탄하고 있다.
<구외이문(口外異聞)>은 만리장성 밖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60여 항목에 걸쳐 서술하고 있는데 논점의 대부분을 우리나라와 관련시키고 있다.
박지원이 연경(베이징) 뒷골목에서 접한 뒤 크게 놀랐다는 요지경
<옥갑야화(玉匣夜話)>는 옥갑이라는 여관에서 비장들과 나눈 여러 이야기를 기록한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임을 빙자한 <허생전(許生傳)>을 이에 실어 그 나름의 부국강병책을 역설하고 있다.
<금료소초(金蓼小抄)>는 의술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엮은 것이고, <황도기략(黃圖記略)>은 연경에서 관광한 문물, 제도 등을 39항목으로 나누어 그 내력과 전해오는 말들을 곁들여서 기록한 것이다.
<알성퇴술(謁聖退述)>은 공자의 묘를 참배하고 난 후 그 건물과 학교, 학사의 연혁과 규모 등을 10항목에 나누어 기록한 것이다.
<앙엽기>는 연경 안팎에 있는 절과 궁 등 주요명소 20군데를 구경한 기록이고, 마지막으로
<동란섭필(銅蘭涉筆)>은 이제까지 기록한 것 이외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두서없이 적은 것이다.
'열하일기’ 박종채본과 청 건륭제의 초상
책의 내용은 주로 북학을 주장하는 내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고, 당시에 개혁군주인 정조조차 이 책의 문체가 순정(醇正)하지 못하다는 악평을 했으나 많은 지식층에게 회자된 듯하다.
종래의 연행록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열하일기>는 박지원의 기묘한 문장력으로 여러 방면에 걸쳐 당시의 사회문제를 신랄하게 풍자한 조선 후기 문학과 사상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박지원은 이 책을 통해 이용후생을 비롯한 북학파의 사상을 역설하고 동시에 구태의연한 명분론에 사로잡혀 있는 경색된 사고방식을 효과적으로 풍자하기 위해 사실과 허구의 혼입이라는 복합 구성을 도입했다. 즉, 여정과 관련시켜 삽입해놓은 일화들은 보고 들은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필요에 따라 창작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실험적 구성은 당시에 이미 연암체라고 일컬어진 정통을 벗어난 문장과 함께 기문(奇文)으로 지목받게 하는 요인이 되어, 정조를 중심으로 하는 수구세력이 일으킨 문체반정의 표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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