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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고대소설 『박씨전(朴氏傳)』

by 언덕에서 2012. 5. 17.

 

고대소설 『박씨전(朴氏傳)』

 

작자ㆍ연대 미상의 고대소설로 일명 「박씨부인전」이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ㆍ군담소설로서, 병조판서 이시백의 부인 박씨가 슬기와 도술로 병자호란을 수습한다는 내용의 역사적 사실에 설화적 요소가 첨가된 작품이다. 병자호란에 대한 쓰라린 경험에서 배청사상을 높이고 정치적 보상을 받으려는 심리에서 나온 소설이다.

 주인공인 이시백은 인조반정 공신이며 호란 때 병조참판을 지낸 실존 인물으로 그의 부인은 윤씨였다고 한다. 남존여비의 당시 세태에서 여성을 우월하게 묘사한 점이 이채롭다신간본으로는 1915810일 한성서관에서 나온 한글 신활판본 <박씨전>(62)1917[대창서원] 발행의 <박씨부인전>(52) 등이 있다.

 이 작품은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과 복수심, 그리고 박씨 부인의 영웅적 기상과 재주를 통하여 병자호란이라는 치욕적인 사건을 겪은 민중들의 현실적인 패배와 고통을 상상 속에서 복수하고자하는 심리적인 욕구를 표현하였다. 아울러 여성을 초인적은 능력을 지닌 주인공으로 설정함으로써, 봉건적 가족제도 하에 억압당한 여성들의 해방 욕구를 반영하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인조 때 서울 안국방에 살던 이조참판 이득춘의 만득자(晩得子) 시백16세 되던 해 금강산의 박처사 장녀와 혼인한다. 첫날밤 신방에 들어온 신부는 천하 박색에 어깨에는 두 혹이 매달려 있고 몸에서는 악취가 풍겼다. 소박데기가 된 박씨는 뒤뜰에 초당을 짓고 거처하였으나, 재주와 학식이 뛰어나고 도술로써 여러 이적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남편에게 이상한 연적을 주어 과거에 장원급제시켰다.

 이 때 친정아버지가 구름을 타고 학의 소리를 내며 찾아와 딸의 흉한 허울을 벗겨준다. 시백은 미인으로 변모한 부인에게 마침내 사과하고, 그의 벼슬은 평안감사ㆍ병조판서에 이른다. 이 무렵, 호국(胡國)의 가달(可達)이 조선을 넘보므로 그는 임경업과 함께 이를 평정하니 호국에서는 자객을 보내 두 사람을 암살하고자 하나 박씨가 미리 알고 예방한다. 또 용골대 형제가 호병 3만으로 서울과 광주에 침입하지만, 박씨의 도술에 혼이 난 용골대는 세 왕자만 데리고 물러났다. 뒤에 임경업 장군이 세 왕자를 구하여 돌아왔는데, 김자점 등이 이를 시기하여 임 장군은 옥사하고 만다. 박씨는 충렬정경부인이 되고, 시백은 영의정ㆍ세자사(世子師)가 되어 그 자손에게까지 벼슬이 내려졌다. 나중에 임 장군의 억울한 죽음을 안 임금은 충신문을 세워 준다.

 

 

임경업 장군 영정

 

 

 

 이 작품은 사건 진행의 구조상, 추녀 박씨가 탈을 벗기까지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전반부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영웅적으로 활약하는 이야기를 그린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와 후반부를 매개하는 사건상의 전환점으로 제시된 것이 박씨의 변신 모티프이다. 박씨의 변신은 비범한 부덕(婦德)과 부공(婦功)을 보여 줌은 물론, 신묘한 도술로써 징벌 의식적인 전생의 죄를 벗고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며 여성의 우수한 능력을 보여 주는 계기로 작용한다.

 이 작품은 병자호란이라는 치욕적인 사건을 겪은 민중들의 현실적인 패배와 고통을 상상 속에서 복수하고자 하는 심리적인 욕구를 표현하였다. 아울러 여성을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주인공으로 설정함으로써, 봉건적 가족 제도 하에 억압당한 여성들의 해방 욕구를 반영하고 있다.

 이 소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자주성이 매우 강한 작품으로, 조선을 주무대로 사건이 전개되면서 주인공 이시백을 비롯하여 인조 대왕, 임경업, 호장 용골대 등 역사적인 실재 인물들을 등장시킨 것부터가 특이하다. 더욱이 이 작품은 남존여비 시대에 여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이어서 오늘날 높이 평가받고 있다.

 신선의 딸인 박씨와 시비 계화, 만 리를 훤히 내다본다는 호왕후 마씨와 여자객(女刺客) 기홍대 등 이 작품에서는 가히 여인 천하라 할 만큼 여성들이 남성보다 우위에 있다. 이처럼 여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눈부신 활약상을 보여 주는 <박씨전>이 필사본으로 전승되면서 독자층에 깊이 파고들어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그 빛을 잃지 않는 것은, 이 작품의 탁월성과 함께 그 애독자의 대부분이 부녀자 층이었다는 데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보기에도 끔찍스러운 외모를 지닌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허물을 벗더니 아름다운 요조숙녀로 변신하고, 뿐만 아니라 공중에 바람을 일으키고, 나뭇가지를 떨게 만들고 천둥과 번개를 치며, 힘깨나 쓰는 장정들을 단숨에 척척 날려 버리는 미모와 지략과 힘을 겸비한 게다가 도술도 부리는 힘도 엄청난 괴력의 여자 박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우리 고전 작품에 이렇게 환상적인 매력들을 다 가진 천사처럼 고운 인물이 또 어디 있을까고전 작품 속에 드러나는 여성 주인공은 대부분 착하고 선량한 마음씨를 가진 인물이 대부분이다대표적인 인물인 '춘향', '심청', '장화·홍련대부분은 당대 유교적 가치관을 잘 지켜나가며 순응적인 삶을 사는 인물이다반면 「박씨전」의 '박씨'는 매우 진취적인 사고를 하고 자신과 나라의 운명을 개척해 가는 한국판 '잔 다르크'와 같은 인물이다.

 이런 영웅적인 여성인물이 소설작품에 등장하게 된 배경은 물론 임진왜란 후, 영웅적인 인물을 고대하던 당대 사회의 요구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선의 '남존여비'라는 오랜 관습이 이미 퇴색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남성보다 더 우월한 여성, 남자로부터 보호받는 여자가 아니라, 오히려 남자를 보호하는 여자를 통해 그 동안 억눌렸던 여성들을 대리 만족시키는 효과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입증할 방법은 없지만 이런 여러 가지 점들을 통해 볼 때 이 소설의 작자는 여성이 아니었는지 추측해 볼 수도 있.

 우리의 고대소설이 대부분 그렇듯이 『박씨전』의 작자를 알 수 없지만, 그 창작 시기는 대체로 현종ㆍ숙종조 무렵, 곧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 사이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 소설의 독특한 점은 여성에게 강인함을 부여한 점이다. 즉 여주인공 박씨가 여러 가지 도술을 부려 오랑캐 병사들을 곤경에 빠뜨린다. 박씨는 비록 연약한 여성의 몸이었지만 가정과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전술한 바와 같이 바로 잔다르크적 냄새가 풍기고 있다. 작자는 박씨를 통해 호란 때 나라를 지키지 못한 남성들을 간접적으로 질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