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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일제시대 시인ㆍ소설가 이상 (李箱.김해경 : 1910 ~ 1937)

by 언덕에서 2013. 2. 15.

 

 

 

일제시대 시인ㆍ소설가 이상(李箱.김해경 : 1910 ~ 1937)

 

 

 

 

 

 

시인ㆍ소설가. 본명 김해경(金海卿). 서울 출생. 1929년 경성고공(京城高工) 건축과 졸업. 1931년 시 <이상한 가역반응><파편의 경치><∇의 유희><공복><삼차각설계도> 등을 [조선과 건축]에 발표하는 한편, 이해의 조선미술전람회에 서양화 <자화상>을 출품, 입선되었다.

 1932년 역시 [조선과 건축]에 시 <건축 무한면각체>를 발표하면서 처음으로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이 무렵 그는 백부의 알선으로 조선총독부 내무부 건축과 기수(技手)로, 또 관방회계과 영선계로 전전하며, 근무하였다. ‘이상’이란 이름은 기수 시절 인부들이 그를 가리켜 ‘리상’이라 부른 데 연유한다지만, 고공 졸업 앨범에 그러한 별명이 나와 있다는 설도 있다.

 

 

 

 [조선과 건축]에 발표된 그의 초기 시편들은 주로 일본어로 씌어져 있는데, 내용이나 형식이 실험적이고 이색적이어서 당시의 문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미 그에게는 전통적 문학의 계승이니, 혹은 그 정서적 바탕 위에서 언어를 갈고 닦는 등 서정의 맛은 없었다, 숫자와 기하학적 낱말, 그리고 관념적 한자 언어로 구성된 극히 난해한 문학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난해한 문학이야말로 그가 22세에 시도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의식세계에 대한 내시적 추구였으며, 지금도 일부의 추종자 또는 그 유사한 시도자들을 낳고 있는 결과를 초래했다.

 

 

 

 

 

 1933년 폐결핵에 의한 각혈로 총독부 기수직을 버리고 황해도 배천 온천으로 요양을 갔다가 기생 금홍)을 알게 된 그는 금홍과 함께 서울로 돌아와 백부가 물려준 통인동 집을 처분, [제비]라는 다방을 차렸다. 이 무렵부터 격심한 고독과 절망, 그리고 자의식에 침전돼 수염과 머리를 깎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기도 하고, 온종일 어둠침침한 방에 박혀 술만 마시기도 하였다.

 1934년 난해의 극을 이루는 대표작 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 학예란에 연재, 항의와 투서가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신문사로 날아들었다. 다방ㆍ카페 등의 잇단 시업 실패와 병고로 말미암아 그는 이미 정신적 황폐를 겪고 있었고, 몸도 극도로 쇠약해졌다. 그는 아우 운경의 청소부 봉급으로 생활을 지탱해 갔으며, 셋방을 전전, 방세를 못 내 거리로 쫓겨나기도 했다.

 

 

 

 1936년 [조광]에 단편소설 <날개>를 발표함으로써 시에서 시도했던 자의식을 소설로 승화시켰다. <날개>는 그의 첫사랑 금홍과의 2년여에 걸친 무궤도한 생활에서 얻어진 작품으로, 그 자신의 자화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박제된 천재’의 번득임이 나타나 있다. <날개>를 발표할 무렵, 같이 폐를 앓고 있던 작가 김유정과 함께 자살을 기도한 적도 있었다.

 1936년 여름, 친구인 화가의 여동생과 돈암동 흥천사에서 결혼했으나, 생활을 비참했고, 몸은 극도로 쇠약해져 갔다. 이해 암담한 생활과 자신에 대한 회오의 눈물을 남긴 채 도일, 이듬해 도쿄 거리를 굶주림과 병마에 시달리며, 배회하다가 사상불온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곧 풀려나왔다.

 

 

 

 자기 생활의 결산과도 같은 장편소설 <종생기> 1편을 남기고 그 해 4월 17일 도쿄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사망했다.

 1936년 9월 <조광>에 발표한 단편 <날개>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이며, 우리 문학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 그의 자의식의 발로가 보다 심화된 <종생기>, 금홍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다룬 작품 <봉별기>도 그의 대표작으로서 일제시대의 작가들 중에서도 유달리 중요하게 인식되는 작가로서 시인으로서도 우수한 자질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1930년대 후반에 유행된 자의식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히며, 우리나라 최초로 심리주의적인 수법으로 자의식의 세계를 묘사했다. 그는 독특한 위트와 패러독스로 근대적 자의 의식을 강렬하게 옹립하고 나섰으며, 그의 자의식의 특이한 점은 작중 인물 등이 자의식의 실의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구본웅이 그린 이상 초상화>

 

 

 그는 심리주의 기법에 의해 내면세계를 다룬 초현실주의 기법과 심리주의 경향의 난해한 실험적인 작품을 썼는데, 이와 같은 경향은 시와 소설에서 공통된다. 그의 문학적 특징은 ‘난해하고 자기중심적이며 피해 망상적인 데’ 있으며, 그의 세계는 ‘당대의 세기말적 위기감으로부터 우러나온 현대인의 고민을 천재적 재능을 빌어 표출한 것’이라는 찬사와 ‘자기기만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혹평 속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오감도>에서 거의 무모할 정도로 대담한 언어를 실험한다든지, 그 외의 작품에서는 아라비아 숫자나 고등 대수의 수식까지도 사용했다. 그의 초현실주의 시들은 몽환의 분위기와 의식의 착란이라고 하며, 이상의 이런 시작 태도는 당대에 심한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나 문학의 특징이 개성화에 있다고 한다면, 그의 문학적 특징이 시대의 선구자적 역할을 한 점을 간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