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을만한 사람이 없네!
선거철이다.
거리마다 선거 운동하는 이들의 구호로 요란스러운데
어제 아침 출근길에는 누군가 다가와 명함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2번 후보 김00…….
내가 쳐다보니 겸연쩍은 웃음을 짓는다.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년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열린우리당으로 옮겼던 독수리 5형제 중의 한 명이다.
YS계의 막내였던 그는 반대 진영으로 당을 옮긴 후 서울 광진구에서 두 번 국회의원을 했다.
20년 동안 발전이 정체된 고향을 두고 볼 수 없어 이 지역에서 출마하기로 했다고 한다.
나와 동갑인 그는 군대에 가지 않았다.
사지가 멀쩡한 그는 내가 3년 동안 각개전투하느라 빡빡 기고 있을 때 무엇을 했을까?
그제 퇴근길에는 아파트 입구에서 생판 모르는 이가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10명이 넘는 패거리의 중심에 선 입후보자가 길 가는 행인을 향해 애써 허리를 숙였다.
“후보님과 악수하시죠!”
이번에는 1번 후보다.
여당의 현직 비례대표 국회의원인 그는 박 아무개 여사가 인정한 경제통이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2번과 마찬가지로 그도 이 동네 출신이지만 그간 서울에서 살았다.
국회의원 하려고 몇 주 전에 내려온 것이다.
악수를 하고 싶으면 지가 내게 와서 해야지, 내가 무엇 때문에 지한테 가서 악수를 해야 한단 말인가?
기가 막힌다.
우리 동네 출마자는 3명이다.
며칠 전 휴일, 시장통에서 무소속인 세 번째 사람을 만났다.
유명 안과 의사이며 종합병원 원장인 그는 안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
그는 여당의 공천신청에 탈락하자 즉각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그 당에 공천이 안 될 때는 무소속 출마를 않겠다는 각서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약속을 어긴 것으로 보인다.
동명을 바꾸겠다. 재래시장을 현대화하겠다. 이 지역을 교육특구로 바꾸겠다…….
이 사람의 약속이 지켜질 지도 의문이지만, 지켜진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어제 퇴근길에 2번 후보를 길에서 또 만났다.
지원사격…….
그의 옆에는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서있었다.
눈웃음을 짓는다.
나도 눈웃음으로 대답했다.
57년 생…….
아, 이 여자 직접 보니 많이 늙었구나.
나는 정치를 잘 모르지만 들을 만큼 들어왔고, 욕할 만큼 욕해왔으며 지금도 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처럼 먹고살 만큼 됐고 정치문화 면에서도 보고 배울 만큼 배웠다.
우리는 이제 우리도 선진화에 걸맞은 정치를 할 때가 됐다는 자존심과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기회주의 정치, 부패 정치, 패거리 정치, 최루탄 국회, 쇠망치 국회, 대책 없는 비판, 반대를 위한 반대, 점거농성 정치, 지역사업 따내기 정치, 앞잡이 정치 같은 구시대 정치 환경과 풍토를 걷어낼 때가 됐다.
이것은 국회의원이나 정치권을 욕해서 시정될 일이 아니다.
유권자가, 국민이 투표로 엄하게 다스려서 그런 부정적 요소들이 발 못 붙이게 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자존심을 살리는 일이다.
문제는 그런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도 찍을만한 사람이 없다는 비극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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