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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고대소설『양반전(兩班傳)』

by 언덕에서 2012. 6. 21.

 

 

 



고대소설『양반전(兩班傳)

 

 

 


 조선 영ㆍ정조 연간의 실학자ㆍ소설가인 연암 박지원의 한문 풍자ㆍ단편소설로 작자의 여러 단편소설 중에서도 가장 정채있는 작품으로 꼽히는 이 <양반전>은 그의 유저인 <연암집>의 ‘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에 실린 7편의 전(傳) 가운데 하나이다.

 양반사회의 허영과 가식과 부패상을 폭로한 작품이다. 몰락하는 양반계급의 위선과 무능력을 주제로 하여 상민계급에 대한 양반들의 착취와 상민들의 양반에 대한 선망을 나타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연암 박지원의 한문소설 중에서 그의 작가 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의 하나로 조선 후기 양반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여기서 풍자의 일차적인 대상은 무위도식하며 살고 있는 양반 사족이다. 그리고 양반의 참된 도리를 생각하지 못한 채, 양반 신분을 돈으로 사려고 했던 상인의 망상을 통렬하게 풍자하고 있다. 지배 계층의 행패와 그로 인한 사회적 작폐를 신랄하게 제시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조선 후기 사회의 계층적 변혁의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공허한 명분에 사로잡혀 평민에 대한 침탈을 일삼는 양반층에 대한 풍자와 함께, 신분 질서가 크게 흔들린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은 투철한 실학 정신의 표현일 뿐 아니라, 문학이 경험적 사실성을 넘어서는 허구의 장치를 통해서도 진실을 드러낸다는 좋은 본보기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정선군에 한 양반이 살고 있었는데 사람이 어질고 글 읽기를 좋아하였다. 그리하여 새로 부임되어 오는 군수들은 의례히 그를 찾아가서 인사를 하였다. 그러나 그 양반은 집이 가난하여 해마다 고을의 환자 쌀을 타다 먹었는데 여러 해, 지나고 보니 천 석이나 되었다. 이때 그 마을에 신분이 미천한 한 부자가 있었는데 늘 신분이 높은 양반을 부러워하였다. 마침 그때 관찰사가 여러 고을을 돌아보면서 환자 쌀에 대한 문서를 검열하다가 이 사실을 알고 화를 내며 그 양반을 잡아 가두라고 명령하였다. 군수는 그 양반과 잘 아는 사이라 차마 가둘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달리 어쩔 수가 없어 난처해하였다. 양반은 밤낮 울기만 하면서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하였다.

 미천한 부자는 양반이 곤경에 빠진 것을 알고 쌀을 갚아주고 대신 양반이 되어 보려고 그 집을 찾아 나섰다. 양반은 기뻐하며 곧 승낙하였다. 부자는 그 날로 쌀을 고을로 들여보냈다. 군수는 가난한 양반이 쌀을 다 갚나 놀랍고 이상스러워 양반을 찾아갔다. 그랬더니 양반은 상민의 몸차림을 하고 길가에 엎드리어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 군수가 놀라서 일으키려 하자, 양반은 더욱 공손히 엎드리면서 양반을 팔아 쌀을 갚았으니 저 부자가 양반이고 자기는 상민이라 하였다.

 사정을 알게 된 군수는 부자를 의리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하고 나서 단둘이 사고파는 것은 후에 말썽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하여 문서를 만들어 증거를 남겨야 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고을 안의 사람들을 모두 모아놓고 양반 매매 문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문서에는 양반이 행해야할 여러 가지 행동이 구체적으로 지적되어 있었다. 죽 내려 읽던 문서의 내용을 한참 듣고 있던 부자는 서운해 하면서 양반은 신선과 같다고 하던데 이런 것만 가지고서야 누가 양반 노릇을 하겠느냐고 하면서 문서를 좀 이속이 있게 고쳐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문서를 고쳐 작성하였는데 새로 만든 문서에는 양반들이 누리는 호화로운 생활과 권세, 백성들에 대한 공공연한 억압과 착취, 행위를 용인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부자는 문서를 끝까지 읽기도 전에 혀를 빼물고 “그만두시오, 그만두시오, 이렇게 맹랑하다니. 아니 그래 나를 도적으로 만들 작정이요?” 라고 하면서 고개를 흔들고 가버렸다.

 부자는 그 후 두 번 다시 양반소리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풍자(諷刺)란 어떤 대상을 비고고 조롱하거나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풍자의 대상은 보통 잘못된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는 부정적인 사람이다. 따라서 풍자의 정신이란 곧 비판의 정신이기도 하다.

 <양반전>에서 풍자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물론 조선시대의 양반이다. 조선시대의 지배 계급이었던 양반, 하늘같은 양반이 이러한 풍자와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다. 이러한 사정은 조선 후기의 시대적 변동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선 후기는 양반층의 증가와 더불어 엄격했던 신분 질서가 붕괴되기 시작했던 시대였다. 신분 질서의 붕괴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부농층ㆍ상공인층의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농업생산력이 증가하고 상공업이 발달함에 따라 평민들 가운데 거대한 부(富)를 축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는 부족할 것이 없었지만 신분상으로는 여전히 평민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정부는 이들에게 돈을 받고 양반의 지위를 팔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 양반층의 수는 증가해 갔고 결과적으로 양반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박지원의 작품 <양반전> 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양반은 몰락한 양반층으로서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취해 있다. 게다가 이제 평민들은 더는 부패하고 무능력한 양반들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박지원은 돈을 주고 양반을 사려는 어느 부자의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부패하고 무능력한 양반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사실 박지원을 비롯한 실학자들도 양반층의 일부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시대의 문제점을 냉철하게 인식할 줄 아는 안목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며, 새로운 사회 질서를 이루기 위한 개혁의지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허생전>, <양반전>을 비롯한 박지원의 문학은 이러한 실학자들의 날카로운 비판 정신이 살아 있는 풍자 문학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