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촌
황인숙(1958~ )
보랏빛 감도는 자개무늬 목덜미를
어리숙이 늘여 빼고 어린 비둘기
길바닥에 입 맞추며 걸음 옮긴다
박카스병, 아이스케키 막대, 담뱃갑이
비탈 분식센터에서 찌끄린 개숫물에 배를 적신다
창문도 변변찮고 에어컨도 없는 집들
거리로 향한 문 활짝 열어놓고
미동도 않는다
우리나라의 길을 따라서 샛길 따라서
썩 친숙하게
빛바랜 셔츠, 발목 짧은 바지
동남아 남자가 걸어온다
묵직한 검정 비닐봉지 흔들며, 땀을 뻘뻘 흘리며
햇볕은 쨍쨍
보랏빛 감도는 자개무늬 목덜미 반짝
날씨가 많이 쌀쌀합니다. 본격적인 지구온난화가 시작되는 건지 근래의 겨울은 유난히 춥게 느껴지네요. 위의 시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힘겹게 살아가는 해방촌의 여름 풍경을 스케치한 시입니다.
작년 연말부터 학교 폭력, 왕따 등의 문제가 우리사회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고 이 문제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 탈북자 가정의 자녀에게 더 심각한 걸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 중 학교폭력의 피해를 가장 많이 받는 이들이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심지어 정부로부터 '다문화 거점학교'로 지정돼 교사 배정과 예산에서 여러 가지 지원을 받아 온 학교에서도 잔인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니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한국인과 외국인이 짝을 이룬 가정이 18만 가정이나 됩니다. 대부분이 월 소득 200만원이 안 되는 어려운 살림살이고 그런 가정 출신의 초·중·고교생이 3만7000여명이군요. 국가인권위 조사를 보면 그중 42%가 우리말 발음이 서툴러 따돌림을 받고 25%가 피부색 때문에 놀림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15%는 폭행을 당했고, 59%나 되는 아이들은 친구 한명 없이 지낸다고 했구요. 이 아이들 가운데 29%는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처지를 호소합니다.
왕따와 학교폭력에 먼저 희생되는 아이들은 신체·정신적으로 미숙한 아이, 말이 어눌하거나 행동이 굼뜬 아이 등 또래보다 뒤처진 아이들입니다. 그래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표적이 되기 쉬운 것이지요. 인간의 본성은 원래 악한 걸까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시스템 같은 것이 고장이 나있는 상태인 것이지요. 작금의 우리 사회 모습은 너무도 우울합니다. 해방촌……. 인간의 삶을 물질적,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동네……. 그런 동네로 단어의 뜻이 바뀌기를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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