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死靈)
김수영 (1921 ~ 1968)
…… 활자(活字)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黃昏)도 저 돌벽 아래 잡초(雜草)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 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纖細)도
행동(行動)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郊外)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시집 <달나라의 장난>(1959)-
어쩌면 연애시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는 관념시로도 느껴져 대단히 난해하게 여겨지는 이 시는 이승만 정권 시절인 1950년대 말경에 지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김수영의 시 세계는 정직과 사랑과 자유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세 개념은 별개로 존재한다기보다 상보적인 관계라고 느껴지는군요. 따라서 그의 시를 읽는 독자에 따라 정직으로 자유와 사랑을 말하기도 하고, 자유로써 정직과 사랑을 포괄하기도 합니다.
이 시는 어려운 느낌을 주지만 뭔가를 자꾸 생각하게 만듭니다. 제가 보는 견지에서 이 시의 핵심어는 '자유'입니다. 그런데 그 자유는 시인이 일상생활에서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적의 활자로만 존재하는 것일 뿐이지요. 근대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 규범 가운데 하나인 '자유'가 활자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사회가 비민주적 집단이라는 지적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시인은 자유가 억제된 독재 정권에 항거하지 못하는 자신의 영혼을 죽은 것으로 여깁니다. 흔히, '예언적 지성'으로 일컬어지는 작가와 시인은 독재자의 부도덕성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정의 사회의 구현을 위해 신명(身命)을 바칠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고 있지요.
그러나 현실은 독재 정권에 기생(寄生)하여 개인의 부귀와 영달만을 추구하는 타락한 사회입니다. 이 시에는 자유를 말하는 벗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시인은 자신의 비겁함을 고백합니다. 오늘날의 소시민의 모습과도 비슷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비겁함과 소심함을 자책하는 의미겠지요.
그렇다면 시인이 희망하는 자유와 정의가 보장된 사회는 실현될 수 없는 것일까요? 제1연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반복하면서 종결되는 이 시의 결구는 화자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 주네요. 그것은 나와 우리의 영혼이 죽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음으로써 현실 개혁의 운동에 앞장서자는 비판적 지식인의 솔직한 자기반성의 태도입니다. 이런 자기 반성적 태도가 전제될 때, 비로소 자유와 정의는 서적 속의 관념에서 현실의 가치로 구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시는 많지만 위대한 시를 접하기가 어려운 요즈음입니다.
정쟁으로 가득찬 기사가 실린 아침신문을 보면서 김수영 시인의 위 시가 생각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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