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아픈 사랑
류근 (1967 ~ )
동백장 모텔에서 나와 뼈다귀 해장국집에서
소주잔에 낀 기름때 경건히 닦고 있는 내게
여자가 결심한 듯 말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라는 말 알아요? 그 유행가 가사
이제 믿기로 했어요
믿는 자에게 기쁨이 있고 천국이 있을 테지만
여자여, 너무 아픈 사랑도 세상에는 없고
사랑이 아닌 사랑도 세상에는 없는 것
다만 사랑만이 제 힘으로 사랑을 살아내는 것이어서
사랑에 어찌 앞뒤로 집을 지을 세간이 있겠느냐
택시비 받아 집에 오면서
결별의 은유로 유행가 가사나 단속 스티커처럼 붙여오면서
차창에 기대 나는 느릿느릿 혼자 중얼거렸다
그 유행가 가사,
먼 전생에 내가 쓴 유서였다는 걸 너는 모른다
- 시집 <상처적 체질 / 문학과지성사, 2010>
이 시를 읽으니 故김광석의 노래가 생각납니다. 김광석 특유의 진지한 창법에다 노랫말 또한 애절했지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무슨 뜻일까요?
우문현답인지 우문우답인지 누군가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Q: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무슨 뜻일까요?
A: 사랑하면 행복해 집니다. 행복한 사랑은 놓칠까 두렵고 더 집착하게 됩니다, 마음이 아파집니다. 그런데 그녀를 보내고 나니 너무 아픈 사랑이 사랑 그 이상이 아니었을까요?
A: 사랑이 지나쳐서 집착에 이른 상태인 것 같아요. 행복한 기분보다 아픈 마음만 커져가는…
이 시인은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작사가입니다. 음……. 이 포스팅의 배경음악으로 김광석의 <너무 아픈…….>을 끼워 넣으려고 했는데 Daum의 방침상 금년에 구입한 곡으로 포스팅을 만들지 못하게 되어있군요. 작년에 구입한 김광석의 다른 곡을 넣었습니다.
위의 시인은 대학 졸업 후 대기업 홍보실에서 근무하다가 홀연히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와 횡성에서 고추농사를 지으며 시작을 계속하고 있군요. 그는 코스닥 벤처기업, 케이블방송국, GPS개발사 등에서 각각 대표를 역임한 경력도 있습니다. 이 시가 실린 시집 <상처적 체질> 은 2010년 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에 선정되었지요.
요즘은 연애시가 드문데, 류근의 시집에는 연애와 이별, 상처투성이입니다. 류근 시인은 자신을 이별의 천재라고 소개하고 있네요. 죽을 때까지 연애를 꿈꾼다는 그는 자칭, ‘삼류 트로트 통속시인’입니다. 그런데, 그 통속의 세계가 만만치 않군요. 1980년대 시를 배워서 1990년대를 살아오다 보니 너무나 무거운 것들에 염증이 났다고 합니다. 시가 너무 어려워진 세상, 시 쓰기가 어려웠던 세상, 시인조차 시읽기 힘든 세상, 그래서 그는 읽히는 시를 선택했다는군요. “통속했으면 좋겠다. 나는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이다.” 시인은 그렇게 말합니다.
하하, 재미있는 시로 한 주를 열어봅니다. 쌀쌀한 날씨, 건강한 매일이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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