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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모란 / 류 흔

by 언덕에서 2012. 5. 21.

 

 

 

모란牧丹

 

                     류 흔 (1964 ~  )

 

1

모란시장의 명물은 누가 뭐래도 모란이다

붉은 꽃이 피는 서쪽 통로에 비명이 즐비하다

 

까딱,

지적指摘 한 번에 태어나는 죽음들

사시사철 살아있다는 것이 무료해

목에 칼 들이는 것들

 

살아온 날이 초 단위로 표시되는 전자저울 위,

애완의 추억 한토막이 척 올라앉았다

 

손님, 한 송이만 사가세요.

방금 꺾어서 싱싱합니다.

 

비좁은 화단 안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생화生花들이

오전에 꺼낸 동료의 내장을 먹는다 먹어야 산다, 살아야

죽을 수 있기에,

 

2

통로를 지나는 사람은 모두 면식범이다

띄워쓰기없는단골들,

 

장수원보신탕원조호남집보신탕언니네보신탕산골흑염소문형산토끼만수건강원여수토종닭오리현대건강원여주흑염소충남닭집영남흙염소형제흙염소영광축산장흥상회백세건강원전주건강원전남건강원전남가축무등흑염소소성도흑염소모란만물상회서울건강원부안가축장수건강원태양건강원순천가축장터건강원호남건강원원조건강원고향건강원백제약초 앞을 지나며

 

보았다, 통째 그을린

검은 유두에서 흐르는 흰 젖을

두고 온 새끼가 파고들어도 물릴 수 없는 익어버린 젖내와

공포에 오줌 지린 비린내를

 

보았다, 점점이 뿌려준 꽃잎을

울혈의 포인트를,

 

3.

맞닥뜨린 골목에서

사람이 되돌아가던 시절이 있었다

한쪽 다리를 들어 전봇대에 영역표시를 하던 요의尿意의 한때를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났다,컹컹

 

울음이 났다 쇠창살 쪼개놓은 하늘을 물고

늘어지지도 늙어지지도 못하는 시간을 어쩌나,

예절을 배웠고 복종을 알아서

길길이 날뛰지도 못하는 이 심사를 어찌하나

 

이제는 하늘이 내려와 물고 있는 이빨과

이빨이 물고 있는 혀를

 

혀에서 돋아나는 떨림을

그 정밀精密을,

 

4

어떤 각오가 죽음을 덮치는가

말하라,꽃이여

 

모란이 피기까지는*

쿵, 쿵, 떨어지는 꽃잎에 쑥대밭이 된 통로와

부서진 화단을 탈출하는 개들과

돌아온 개를 얼싸안은 주인과

되찾은 목줄과 양은밥그릇을

그릇에 수북 담기는 목 메임을

 

아직은 살아있으므로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먼 훗날의 일이라 생각했던 것인데

 

덜컹,

 

열리는 철창 틈으로 지문指紋이 다가왔다

 

 

 

 

*김영랑의 시 

 

 

 

 


시 제목이 말하는 ‘모란’은 성남시에 있는 모란종합재래시장을 지칭합니다. 모란시장에서는 대한민국 개고기 유통의 30%를 담당하는 개고기 시장이 있는데, 이로 인해 외국인과 동물애호가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잔인한 도살장면은 어린시절 저도 보았는데, 이 나이 되도록 잊혀지지 않는 고통스런 장면입니다. 인간이 육식을 하고 있지만 동물을 함부로 죽이는 것, 상처를 입히는 것, 괴롭히는 것 등은 재고해야 할 문제입니다. 생명체인 동물의 습성을 고려하여 적정하게 다루는 과정. 동물보호에 대한 사고가 정착되려면 불필요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의도적으로 주는 것을 혐오하는 사고가 필요하지요. 비교생물학은 사람뿐만 아니라 신경계가 발달한 동물도 아픔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였고, 또한 진화론의 보급은 사람만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고 하는 관념을 주었습니다. 현재 동물보호의 대상이 되는 동물은 애완동물이나 산업동물뿐만 아니라 생물학, 의학용 실험동물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학술잡지의 대부분은 동물보호에 반하는 형식을 다룬 논문을 접수하지 않는다는 편집방침을 세우고 있군요. 또한 연구기관은 실험동물 취급에 관한 지침을 정하고 있습니다. 동물애호는 동물보호와 거의 같은 뜻이지만, 애호 쪽이 좀더 감성에 치우친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에 들어서 인권과 대치하는 것으로 동물권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다큐멘터리 프로를 보니 덴마크,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에서는 소. 돼지. 닭 등을 자연친화적으로 키우며 도살도 그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인간적으로 배려하고 있더군요. 틱낫한 스님은 불행하게 살다 죽은 동물의 고기를 먹으면 그 '화'가 그대로 사람에게 옮겨온다고 말했지요. 좁은 새장 속, 강한 백열등 아래에서 잠을 못자며 매일 알을 낳아야만 하는 닭은 얼마나 화가 날까요? 그렇게 화가 난 닭이 낳은 계란을 먹으니 요즘 아이들이 포악해지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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