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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봄비는 즐겁다 / 송수권

by 언덕에서 2012. 4. 30.

 

 

 

봄비는 즐겁다

 

                                        송수권 (1940 ~  )

 

며칠째 봄비가 지난다.

한 떼씩 마치 진군의 나팔 소리 같다.

샤넬 향수병을 따놓은 병마개 같다.

촉촉히 마음에 젖어 드는 얼굴,

세상이 보기 싫다며 손나발을 입에 대고

불던 친구가 있었다.

물구나무 서서 가랑이 사이로

세상을 건네보던 친구가 있었다.

젖지도 못하고 마른 종이처럼 구겨졌으면 어쩌나.

큰 길로 나서니 빨강 분홍 초록 파랑 우산 속에

소녀들의 밝은 표정이 갇혀 있다.

한 떼의 봄비처럼 조잘거리며 내를 건너 숲을 건너

밀림 속으로 사라져간다. 저 가벼운 종아리들,

문득 발을 막고 제재소가 나무 켜는 톱질소리가 들려온다.

향긋하다. 눈을 감는다.

거대한 삼나무 숲 속살들이 톱밥으로 무너져내린다.

자꼬만 밀림 속에서 휘파람새, 휘파람새가 운다.

생각이 발통이 되어 축축한 통나무들을 몰고 간다.

나무 찍는 우리 나라 강릉 크낙새의 빨간 주둥이가 보인다.

뚝방길 위 버드나무에 하얀 젖니를 뱉고 가는 봄비는 즐겁다.

아, 들길에 서서 나는 명아주 싹이라도 세어볼 건가.

강을 건너 북상하는 한 떼의 봄비, 뒷발꿈치가 다 젖는다.

오늘은 강가에 나가 남풍에 실려 종종걸음 치는 한 떼의 봄비.

조용한 전별식을 갖고 싶다.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때 쇼윈도 그라스에 눈물이 흘렀다. 이슬처럼 꺼진 꿈속에는 잊지 못할 그대 눈동자 샛별같이 십자성같이 가슴에 어린다.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눈물 속에 봄비가 흘러내리듯 임자 잃은 술잔에 어리는 그 얼굴. 아,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버렸네. 그 길에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보신각 골목길을 돌아서 나올 때에 찢어버린 편지에 한숨이 흐렸다. 마로니에 잎이 나부끼는 네거리에 버린 담배는 내 마음같이 그대 마음같이 꺼지지 않더라.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때 쇼윈도 그라스에 눈물이 흘렀다. 이슬처럼 꺼진 꿈속에는 잊지 못할 그대 눈동자 샛별같이 십자성같이 가슴에 어린다.

 이게 뭔 말이냐고 물을 분이 계실 것 같습니다. 김경수 시인의 시 <팝 아트4>입니다. 현인의 '서울 야곡'과 가수 박건의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이라는 부제가 붙어있구요. 즐거운 한 주를 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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