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화
첸밍타이
먹을 뿌린 구름 아래론
울창한 산
하얗게 테를 둘렀고
산 아래론
끝없이 뻗은 광야
하얗게 테를 둘렀다.
눈은 아직도 내린다.
그날
함께 거닐었던 고요한 오솔길
국적이 다른 형제
두 사람의 발자취
그토록 환히 마음에 새기고
끝없이 꼬불꼬불한 길에 새겨 있다.
얼마나 불을 갈망했던가
주전자에 남은 소주 몇 방울까지 마시고
집에 돌아온 뒤
서로 건강하지고
서로 편지하자고.
그토록 진실한 약속을 교환한 것은
벌써 5년 전의 옛일
지금
아득하도록 소식 끊긴 채
어느 날인가 불쑥 부고를 받을지도......
두 눈으로 응시하면서
어제 밟던 발자국을 그려서
벽에 붙이련다.
소박한
한 장의 풍경화를.
한 폭의 그림 속에
눈길을 묻는 동안
눈은 계속 쓸쓸히 내리고 있었다.
- 신현림 엮음 시집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기나긴 겨울이 이제 끝나가나요?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수많은 그 어떤 그림보다 풍경화가 좋았던 기억이 나는군요. 하늘 길 따라가며 자연 속에 그려놓은 공간 속의 그림을 보노라면 초록빛 움으로 꽃을 유혹하는 신비, 녹음 우거진 산속의 풍경, 텅 빈 들녘에 남아 있는 늦가을, 겨울날 눈 덮여 몸 시린 나목들과 자연의 소리까지 하늘 시계에 맞추어 모두 그림 속에 볼 수 있었지요. 아름다운 공간 속 자연의 풍경화는 향기 없는 그림만 그리는 인간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그린 자연의 그림 속에 붓을 든 자신이 있겠지요. 이 시를 쓴 이는 5년 전 추위 속에서 새긴 두 사람의 마음을 풍경화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 그들은 서로 소식이 끊기고 그들이 밟았던 발자국을 풍경화로 그려내어 벽에 붙이고 마는군요. 주체할 수 없는 외로움이 넘쳐흐릅니다. 신현림 시인의 말마따나 슬픔이 터져 빛이 될것 같군요. 풍경화 속에 어쩌면 외로운 인간의 속마음도 자연 속에 기대어 그려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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