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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우울한 샹송 / 이수익

by 언덕에서 2012. 3. 5.

 

 

 

 

 

 

 

 

 

 

 

우울한 샹송

 

                              이수익 (1942 ~ )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 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되어 젖어 있는

비애(悲哀)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衣裳)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애정(愛情)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질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 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

하면,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우울한 샹송>(삼애사,1969)-

 


 

현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에게 전화나 인터넷 메일, 휴대폰 문자 등을 통해 직접 연락할 수 있는 편리한 시대입니다. 그러나 어떤 시대이던간에 여전히 편지의 본질적인 매력은 남아 있고, 여러 수단들을 통해 의사의 표시나 거기에는 붙일까 말까 하는 마음의 망설임까지도 포함되어 존재합니다.

 그래도 요즈음의 젊은이들이 편지의 묘미를 잘 알지 못한다는 건 아쉽기 짝이 없군요. 사연을 하나씩 써 내려가다 보면 편지 쓰는 이의 마음은 여러가지 빛깔로 우러나오게 되며 받을 사람에 대한 따스한 정이 절로 배어 나오게 되었던 기억을 우리 세대들은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서 `잃어버린 사랑'을 다시 찾을 수는 없을까,만약 그 사랑이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면 나는 그때 어떤 미소로 그를 맞이할 수 있을까 하고 시인은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우체국을 배경으로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사랑과 그리움, 안타까움, 그리고 기다리는 마음을 바로 그곳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를 안고 그곳으로 찾아와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 모습이지만 시인은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하는 `풀잎 되어 젖어 있는' 마음으로 그곳에 들렸을 뿐이네요. 그러면서도 나도 그들과 같이 웃고 싶고 잃어버린 사랑을 찾고 싶다는 안타까운 마음은 억제하기가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인간에게는 교감(交感)의 본능이 있습니다. 교감의 본능은 사랑하고 싶은 마음의 첫 신호가 아닐까요.

 편지를 쓰는 마음은 기다리는 마음이며 사랑하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쓰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대방으로부터의 답장이 있을 것만 같군요. 그리하여 `내 사랑의 /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 도어를 노크'할 것 같은 그러한 심정으로 시인은 기약 없는 편지를 써 보는 것입니다.

 새봄을 재촉하는 단비가 내리는군요. 즐거운 3월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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