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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몽해 항로 6 - 탁란 / 장석주

by 언덕에서 2012. 3. 12.

 

 

몽해 항로 6 - 탁란

 

 

                            장석주(1954~ )

 

가장 좋은 일은 아직 오지 않았을 거야.

아마 그럴 거야.

아마 그럴 거야.

감자의 실뿌리마다

젖꼭지만 한 알들이 매달려 옹알이를 할 뿐

흙에는 물 마른자리뿐이니까.

생후 두 달 새끼 고래는 어미 고래와 함께

찬 바다를 가르며 나가고 있으니까,

아마 그럴 거야.

물 뜨러 간 어머니 돌아오시지 않고

나귀 타고 나간 아버지 돌아오시지 않고

집은 텅 비어 있으니까,

아마 그럴 거야.

지금은 탁란의 계절,

알들은 뒤섞여 있고

어느 알에 뻐꾸기가 있는 줄 몰라.

구름이 동지나해 상공을 지나고

양쯔강 물들이 황해로 흘러든다.

저 복사꽃은 내일이나 모레 필 꽃보다

꽃 자태가 곱지 않다.

가장 좋은 일은 아직 오지 않았어.

좋은 것들은

늦게 오겠지, 가장 늦게 오니까

좋은 것들이겠지.

아마 그럴 거야.

아마 그럴 거야.

 

 

 

 

 

 


 

 

'몽해항로'는 꿈 같은 바다 항해길을 의미합니다. 탁란은 '어떤 새가 다른 종류의 새의 집에 알을 낳아 대신 품어 기르도록 하는 일'을 말하는데 '사회나 정치의 분위기가 흐리고 어지러울 때'도 사용하는군요. 

 좋은 일, 좋은 것들이 우리에게 오지 않는 이유는 그 일과 그것들이 가장 좋은 무엇이기 때문일 것일 겁니다. 인류에게 평화가 오지 않는 것도 우리에게 통일이 오지 않는 이유도 그것이 가장 좋은 일이기 때문이 아니겠는지요. 그러니까 언젠가는 아주 늦게라도 오기는 올 것이 아니겠는지요. 가장 좋은 것들은 그렇게 쉽게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위의 시에서 이야기합니다. 깊은 바다 산호 숲, 거기 숨은 새끼 고래 때문에 바다가 파도치듯이 좋은 것은 숨었다가 나중에 오려고, 오늘은 이렇게 파도만 치는 것이다……. 어둠의 땅, 굶주리는 동포들에게 좋은 일이, 사선을 넘어 탈북해야만 하는 그들에게 좋은 일이, 강제송환되지 않는 좋은 일이 생기기를 매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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