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절망의 시대에도 늘 희망의 불씨를... <아름다운 시절>
1998년 이광모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안성기, 송옥숙이 주연했고 100여차례의 로케 헌팅과 장면 당 최고 32회의 촬영기록, 18회의 색보정 기록 등으로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영화의 대표성을 가지는 기념비적인 영화다. 이광모 감독은 "고난과 절망의 시대에도 늘 희망의 불씨를 간직하고 사셨던 할아버님과 어머님께 이 영화를 바칩니다"라는 변으로 이 영화를 정의했다. 이 영화를 보면서 6·25때 참전했던 22세의 청년이었던 아버님과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어머니 생각에 나도 모르게 수차례 눈물이 났다.
제목은 <아름다운 시절>이지만 내용은 '처참한 시절'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전쟁의 피폐함과 그로인해 발생하는 인간성 훼손을 담담하고 처연한 시선으로 일관하고 있는 작품이다. 전쟁 장면이 직접 나오지 않는 이 영화는 6·25나 격동의 역사를 직접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아버지가 살았던 아름다운 시절을 회상하듯, 성찰하듯 만든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6.25가 막바지인 1952년에서 휴전이 성립된 1953년까지 미군 부대 주변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이 영화는 시작된다.
성민의 가족은 미군과 사귀는 성민의 누나 덕에 아버지 최씨(안성기)가 일자리를 얻게 되고, 비교적 편안하게 생계를 유지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웃한 창희네는 의용군으로 끌려간 아버지 때문에 창희 엄마 안성댁(배유정)이 미군들 옷을 세탁해 주며 힘겹게 살아나간다. 이즈음 동네 아이들의 흥밋거리는 미군들이 방앗간에서 동네여자들을 사며 벌이는 정사장면을 훔쳐보는 일이다.
창희네 엄마가 빨랫감을 도둑맞고 곤경에 처하자 성민의 아버지는 미군과 창희 엄마의 만남을 주선하고 창희는 방앗간에서 엄마와 미군의 정사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 후로 창희는 종적을 감추고 방앗간은 원인모를 화재를 타버린다.
미군 하사 한 명이 사망한 관계로 미군 헌병들은 범인을 잡으려고 혈안이고, 어느날 동네 개울가에 시체 한 구가 떠오른다. 아이들은 그것이 창희라고 생각하며 언덕 위에 작은 봉분을 하나 만들어 장사를 지내준다.
이후 휴전이 성립되고 포로수용소에서 창희의 아버지가 돌아오지만, 창희는 여전히 행방불명이다. 성민의 누나는 미군의 아이를 임신한 채 버림 받고 성민의 아버지는 미 군수품을 빼돌리다 발각되어 온 몸에 페인트 칠을 당하고 쫓겨난다. 이 상처로 성민네는 마을을 떠나게 된다. 이 즈음에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영화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영상 미학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카메라가 고정되어 있는 상태로 보여지는데 그 안에 인물들의 동선과 구도 그리고 상황이 이어지는 매우 절제된 느낌의 풍경화다. 지금도 가끔씩 생각나는 장면은 창희와 성민이 방앗간을 훔쳐보다가 창희네 엄마와 미군 하사가 관계하는 장면을 보게 되는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의 창희의 얼굴 표정이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무엇이었는데, 그것은 시대의 비극이자 한 가족과 개인의 절망일 것이다.
이 작품은 사운드 사용에 있어서 매우 섬세한 느낌을 준다. 인물의 위치나 움직임을 카메라에 모두 담을 수 없기에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으나 주변의 움직임과 인물은 계속 움직인다. 사운드의 활용을 통한 공감각의 활용이 눈에 띈다.
이 영화는 화면구도가 회화적이고 미장센이 뛰어나다. 마치 풍경화를 그리듯 하면은 진행되는데, 방앗간의 뚫린 구멍으로 역촬영된 두 아이의 모습, 빨래가 펄럭이는 들판의 모습, 구불구불한 길 위로 성민네가 떠나는 장면, 창희의 장례행렬 등은 말없는 감동과 감탄과 전율을 선사한다. 잘 만들어진 영화는 실패한 예가 극히 드물다는 모범적인 사례의 이 영화는 예술영화는 흥행이 안 된다는 통념을 깨고 관객동원에도 비교적 성공하였다.
제36회 대종상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하여 총 6개 부문을 수상하고 제11회 동경국제영화제 금상, 제4회 인도 케라라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등을 수상했고, 1998년 제18회 하와이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인 골든 마일상을 수상. 1998년 도쿄(동경) 국제영화제에서 신인감독에게 주어지는 최고상인 금상 수상, 1998년 그리스 테살로니카 영화제의 최우수 예술공헌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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