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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Artificial Intelligence: AI

by 언덕에서 2011. 8. 3.

 

 

Artificial Intelligence: AI

 

 

 

 

 

이 영화는 2001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SF 판타지영화로  인간이 만든 로봇 소년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시사점이 큰 영화이다.  1999년 타계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1983년부터 구상했으나 완성하지 못했던 미완의 프로젝트를 현존하는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인 스티븐 스필버그가 완성한 탓에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거장들 사이의 감성 대결'이라고까지 불렸던 1억불짜리 대작 SF 드라마인데 로봇 소년을 통해 재음미되는 기억과 사랑의 본질을 주제로 한, 긴 여운을 가진 매혹적인 SF 영화이다.

 거물 감독인 스필버그의 작품답게 호화 캐스팅과 스탭진으로 구성되었는데, 할리 조엘 오스몬트, 주드 로우, 프랜시스 오코너, 샘 로바즈, 브렌던 글리슨과 오스카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명배우 윌리암 허트 등이 공연하고, 스필버그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로빈 윌리엄스가 내레이션을 담당했다.

 1969년 하퍼스 바자를 통해 소개된 브라이언 올디스(Brian Aldiss)의 단편 소설 〈Supertoys Last All Summer Long〉은 10여년 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판권을 사들였다. 인간 엄마와 가까워지려는 한 로봇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이 미래 소설은 20여년의 산고를 거쳐 스필버그 감독에 의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미래의 어느 날, 빙하가 녹아 지구의 수많은 도시들이 물에 잠기게 된다. 물자와 음식이 부족하지만 과학은 대체식품과 물자를 제조할 정도로 발달한다. 모든 것이 인공제조물로 배급되고 가구당 출산은 한 명으로 제한된다. 로봇 회사에 다니는 헨리 스웬튼은 불치병에 걸린 외아들 마틴을 냉동 수면시키고 신약이 개발되길 기다리고 있다. 그는 부인 모니카를 위해 회사에서 만들어진 인공지능로봇 데이빗을 주문한다. 인간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인간과 흡사한 데이빗을 통해 모니카를 아들의 빈자리를 채워가고, 데이빗 또한 엄마인 모니카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전하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기적처럼 죽은 아들이 되살아나고 인간 아들인 마틴과 기계아들인 데이빗이 함께 살아가는 상황을 맞게 된다. 데이빗은 기계인간으로써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는 가운데 갖가지 문제를 발생시켜 모니카는 곰 인형인 테디 베어와 함께 그를 숲속 깊은 곳에 버린다. 데이빗은 모니카로부터 들은 피노키오 동화를 떠올리며 마법의 힘으로 진짜 인간이 되어 잃어버린 엄마 모니카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데이빗은 인간에게서 버림받은 수많은 로봇들을 만나게 된다. 더 이상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떠돌이 생활을 하는 그들이 잡힐 경우 고철덩어리가 되는 운명이다. 이들을 피해 다니던 데이빗은 여자박사라 불리는 섹스로봇을 만나 푸른 요정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갖은 역경 끝에 이미 바다 속으로 수장된 도시 맨하탄을 찾은 데이빗은 바다 속에서 푸른 요정을 보게 되는데 그녀 앞에서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매일 간절하게 기도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빙하기가 찾아오고 시간은 이미 2천년을 넘어 해빙기를 맞고 인류가 사라진 시점에서 데이빗은 냉동상태로 후생인류에게 발견된다. 이들 후생인류들은 인류의 유전자를 찾아 빙하기 이전의 인류를 복원하고 싶어 하는데, 마침 데이빗과 함께 있던 테디베어 로봇이 엄마의 머리카락을 간직했다가 내놓게 된다. 데이빗은 복원작업의 결과로 엄마를 극적으로 만나게 되지만 후생인류의 기술은 살려낸 인간을 하루밖에 생존시키지 못하는 정도였다. 데이빗은 되살아난 엄마와 꿈같은 하루를 보내고 다시 엄마는 영원의 우주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데이빗으로 명명된 주인공 로봇은 인간이 부리는 이기심에 상처입지만 역으로 인간이 베푼 감정을 잊지 못해 영원을 꿈꾸며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가장 인간적인 기계이다. 인간이 지닌 모든 잡다한 감정과 이성을 소유하지 못했지만 기계적인 단순함으로 인간의 나약함을 극복하는 순수지향적인 인물이다. 인간을 향한 그의 끝없는 애정은 인간이면서도 인간답지 못한 이들을 향하여 던지는 뉘우침에 다름 아니다. 비슷한 경우가 오늘날 우리 주변에 즐비하다. 반려동물이랍시고 좋아 기르던 동물을 경제사정이 조금 어렵다고 길거리에 버려서 발생하는 유기견, 길고양이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이 늙고 경제력이 없다고 방치하고 관계를 끊는 자식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주인공 데이빗을 통하여 인간됨의 편안한 지위를 불안해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물어보자, 이러고서도 오늘의 우리를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를.

 

 

 

 

 

 미국 개봉시 평론가들의 걸작-범작(졸작이 아닌!) 논쟁은 스필버그의 어떠한 전작보다도 뜨겁게 달아올랐으나 결국 이 영화에 격찬을 보내는 쪽이 수적으로 훨씬 우세하였다. 반면 일부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가리켜 잘 만들었지만 기대에는 못 미치는 작품이라고 평했는데, "어른들에게는 불쾌한 실망감을 아이들에게는 너무 폭력적인 작품이라는 평도 있었다.

 고(故)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에이 아이>를 구상하면서 지능공학의 미래를 예시하는 캐릭터의 표현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스필버그는 큐브릭이 생전에 구상하고 작업했던 내용을 그대로 살리고, 그 위에 자신의 상상력을 가미하는 식으로 이 영화를 찍었다. 그것이 오랜 친구였던 큐브릭에게 경의를 표하는 스필버그 나름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의 눈에 어리는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 눈물은 진정한 인간이 되기를 지향하며 현재 우리의 모습을 반성적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 세계를 이야기한다. 스필버그의 상상력이 빚어낸 그의 공상과학 필름 중에서도 단연 우뚝 서게 될 감동을 느꼈던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