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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역설적인 제목의 영화 <달콤한 인생>

by 언덕에서 2011. 8. 10.

 


 

역설적인 제목의 영화 <달콤한 인생>


 

 

 

 

이 영화는 케이블 TV에서 재탕, 삼탕 방송하는 관계로 여러 번 볼 기회가 있었다. 몇 번을 보았음에도 다시 보게 만들고 마는 매력은 무엇일까? 에로틱한 장면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아주 심오한 철학적 구성도 없다. 영화의 3/4 이상은 잔인한 폭력 장면이 이어질 뿐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여러번 봤음에도 불과하고 또 보게 만들고 계속 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은 무엇일까? 아래의 내레이션이 영화를 끌고 가기 때문다.

 2005년 김지운 감독이 만들고 이병헌, 황정민이 주연했던 이 영화는 노승과 동자승의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 속에서 시작된다.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매력적인 연기파 남자 배우들이 총출동한 느낌을 주는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서울 하늘 한 편, 섬처럼 떠 있는 한 호텔의 스카이라운지가 있다. 그 곳은 냉철하고 명민한 완벽주의자 김선우(이병헌)의 작은 성이다. ‘왜’라고 묻지 않는 과묵한 의리, 빈틈없는 일 처리로 보스 강 사장(김영철)의 절대적 신뢰를 획득한다. 스카이라운지의 경영을 책임지기까지, 그는 꼬박 7년의 세월을 바쳤다. 호텔 영업에 물의를 일으키는 깡패/ 양아치가 등장할 때마다 그는 깔끔하게 일처리를 하며 강 사장의 신임을 얻으며  No. 2의 자리를 굳건히 지킨다. 김선우는 두목의 세력권을 위협하는 백 사장(황정민)파와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며 더더욱 신임을 얻는다. 한편, 조직 내 강 사장의 왼팔 격인 No. 3 깡패 문석(김뢰하)은 호시탐탐 김선우를 쓰러뜨릴 계획만 세운다.

 강 사장은 룰을 어긴 자는 이유를 막론하고 처단하는 냉혹한 보스이다. 강 사장(김영철)은 조폭들을 거느리고 이런저런 사업을 벌이는 냉혈한이다. 그런 그에게는 남들에게 말 못 할 비밀이 하나 있다. 젊은 애인 희수(신민아)의 존재가 바로 그것이다. 어느 날 보스는 김선우를 불러 한 가지 부탁을 한다. 3일 동안 중국출장을 가는데 그 사이에 자신의 어린 정부를 감시하라는 것인데, 만약 다른 남자와 어깨라도 스치는 것 같으면 알아서 처치하라는 것이다. 즉, 정부에게 딴 남자가 생긴 것 같다는 의혹을 가진 강 사장은 김선우에게 그녀를 감시하고 사실이면 처리하라고 명령한다. 

 

 

 

 

 김선우가 희수를 따라 다니기 시작한 지 3일째, 희수와 남자 친구가 함께 있는 현장을 급습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는 알 수 없는 망설임 끝에 그들을 놓아준다. 김선우는 잠깐 본 강 사장의 정부 희수(신민아)에게 마음을 뺏기고, 명을 어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는다.  그로인해 선우는 파국의 늪에 빠진다. 단 한 순간에 불과했던, 그럴 수도 있는 선택으로 인해 선우는 강 사장에게 끌려가 문석과 백 사장으로부터 모진 고문을 받고 죽음 직전 상태에서 간신히 탈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강 사장(김영철)이 어제의 적 백 사장(황정민)에게 자신의 부하 김선우를 제거할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끌려가 모진 고문으로 죽음 직전까지 몰리던 김선우는 간신히 탈출에 성공한다.

 

 

 

 김선우는 자신이 청춘과 열정을 바쳐 일한 조직이 적이 되어 자신을 파멸시킨 점을 납득할 수 없다. 러시아인 밀매조직으로부터 어렵사리 소총을 구한 그는 어느 새 적이 되어 버린 조직 전체를 상대로,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을 시작한다. 그를 지배하는 것은 더 이상 희수를 향한 일순간의 달콤한 감정이 아니다. 홀로 조직과 전쟁을 치르는 선우는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갔던 강 사장의 왼팔 문석, 백 사장 일당등을 차례로 사살하고 한 발짝 한 발짝 강 사장을 향해 나아간다. 마침내 강 사장과 마주선 선우는 그를 향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진다. “왜 그랬어요? 나에게 왜 그랬어요?” 어떤 대답이 나오던 그는 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 김선우는 강 사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김선우가 총기를 구입할 때 살해한 러시아 총기 밀매조직 보스 태웅의 동생 태구(문정혁)에 의해 자신도 살해당한다. 피투성이가 된 시체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아래의 내레이션이 들리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는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제목 <달콤한 인생>은 역설적인 제목이다. 우연히 어떤 사건으로 인생을 통째로 날려버리고, 온갖 위험의 구덩이에서 허우적거려야 하는 주인공의 상황을 표현하는 역설이자, 안타까움의 표시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이미지는 비정하고 어둡지만 멋스러운 남자들의 세계로 관객들을 빨아들인다. 에스프레소, 블랙 슈트, 취향부터 완벽주의자인 반 영웅적인 이미지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물 선우를 필두로 절대 권력과 냉혹함을 가진 피도 눈물도 없는 보스 강 사장,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행동파 넘버2 문석,  자존심에 상처 나는 것은 절대 참지 못하는 백 사장, 형의 죽음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복수의 여정에 오르는 킬러 태구(문정혁) 등이 그러한 남자들이다. 이들은 선우를 죽음의 문턱으로 몰아넣거나, 끊임없이 질투·견제하거나, 복수의 칼을 들이대거나, 총을 겨눈다. 또한 선우가 총구를 겨누는 전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개성과 폼이 넘치는 이 남자들의 유기적인 조합과 긴장이 만들어내는 영화는 날카롭고 냉혹하지만 감성적인 남자들을 살아 숨을 쉬는 캐릭터로 구현, 폼 나는 남자들의 마초(macho)적 세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영화는 액션 누아르임을 강조한다. <달콤한 인생>은 일정한 장르로서의 누아르 공식과 상업적 액션장면들을 적절히 섞어가며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 속 주요 공간들은 세심하게 설계되었고, 그 안에서는 잘 짜여진 액션이 벌어진다. 어두우면서도 고급스런 조명 및 색감을 내는 것에도 많은 신경을 썼고, 캐릭터들은 비중 있는 조역들로 구성되어 있어 흥미를 유발한다. 그중에서도 황정민의 야비하고 비열한 조폭연기는 영화 '친구'에 나오는 장동건의 비열함에 못지 않다. 그러나 영화가 담고 있는 어떤 진지한 태도가 상품으로서의 가치성 그 이상을 넘어서는 것에는 역부족이고, 지나치게 스타일을 강조하다보니 감독이 의도했을 주제의 흡착력이 상당 부분 떨어지는 면면들이 느껴졌다. 즉, 재미는 있는데 주제가 모호하다는 점이 그것일 것이다. <달콤한 인생>은 아주 재미있고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흥미진진한 영화로 잘 세공된 비싼 보석인데, 보고난 후에 주제가 너무 작음을 느끼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것이 아마 비싼 보석이 빛이 나지 않는 부분들일 것이다.

 

 

 

 

 

 42회 백상예술대상(2006) 남자최우수연기상(이병헌), 4회 대한민국영화대상(2005) 남우조연상(황정민), 26회 청룡영화상(2005) 촬영상(김지용), 42회 대종상 영화제(2005) 남우조연상(황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