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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디스 프란의 생과 사 : 한 캄보디아인의 이야기 <킬링 필드(Killing Field)

by 언덕에서 2011. 9. 7.

 

 

 

디스 프란의 생과 사 : 한 캄보디아인의 이야기 <킬링 필드(Killing Field)

 

 

 

 

1985년 제작된 영국영화로, 데이비드 퍼트넘(David Puttnam)이 제작하였으며, 롤랑 조페(Roland Joffe)가 감독하였다. 샘 워터스톤(Sam Waterston), 행 응고르(Haing Ngor), 존 말코비치(John Malkovich), 줄리안 샌즈(Julian Sands) 등이 출연하였고, 브루스 로빈슨(Bruce Robinson)이 각본을 썼으며, 상영시간은 159분이다.

 1980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시드니 션버그(Sydney Schanberg) 기자의 글 〈디스프란의 생과 사: 한 캄보디아인의 이야기〉를 각색한 작품으로, 캄보디아내란을 취재하던 미국인 기자와 현지인의 우정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론놀의 우익(右翼)정권이 군사쿠데타로 전복되고 1975년 정권장악에 성공한 크메르루주가 4년간의 통치기간 동안 저지른 극도의 비인간적 야만과 살상을 다루고 있다. 킬링필드(Killing field)는 쿠메르루주 정권 때 대학살로 인해 생긴 집단 무덤을 말한다.

 1985년 아카데미상에서 편집, 촬영 부문 등 3개 부문 후보로 올라 행 응고르가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제57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이 영화의 주연 배우 헹 S. 응고르(Dr. Haing S Ngor)는 직업 배우가 아닌 의사였다. 그는 실제로 부모와 약혼자, 8남매 중 다섯 형제를 모두 공산 크메르 루즈(Khmer Rouge)군에게 남기고 1980년 9월 홀몸으로 미국으로 이주해 외과의사로 살고 있었다. 친구의 결혼식 파티에 갔다가 우연히 로랑 조페 감독의 눈에 띄어 이 영화의 출연 제의를 받았다. 그는 쿠메르즈군의 살육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명연기로 아카데미상이라는 큰 영광을 차지하는 순간 손가락 하나가 잘려나간 손을 치겨들면서 이렇게 수상 소감을 말했다. "내 조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 세상에 알릴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는 또 영화에서 묘사된 공산군의 잔혹상과 진실은 실제의 것보다는 덜 잔혹하고 덜 진실된 것이라면서 나의 연인은 끝내 굶어죽었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슬픈 과거를 회상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깝게 하였다. 

 아카데미 위원회는 그가 이 영화에서 주연을 했음에도 조연상을 수여하여 인종차별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행 응고르는 1996년 2월 25일 로스앤젤레스의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는데, 크메르루주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영화에서 미국 영사역을 연기했던 조연배우 스팰딩 그레이(Spalding Gray)는 영화를 찍으면서 겪었던 경험을 1인극 형식의 각본으로 썼고 1987년 조너선 드미(Janathan Demme)가 《킬링필드의 독백》이라는 영화로 만들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베트남이 공산화되면서 캄보디아에서는 내란이 일어난다. 정부군과 공산화를 원하는 크메르루주 군이 맞서게 된 것이다. 정부군을 지원하던 미국은 전황이 불리해지자 크메르루주 군을 퇴치하기 위해 대규모 폭격을 실시하여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내게 된다. 이 전쟁을 취재차 캄보디아에 주재하던 뉴욕 타임스 특파원 시드니는 폭격 장소를 방문코자 한다. 그러나 미군은 사실이 알려질까 봐 보도진을 따돌리려 하고, 시드니는 신문사에서 채용한 캄보디아인 기자 디스 프란을 만나 어렵사리 현장에 도착하게 된다.

 그들은 실로 형언할 수 없는 끔찍한 참상을 목격하고 그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 즈음 전황이 정부군에 불리해지면서 미국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위기를 느낀 프란과 시드니는 미국 대사관의 도움을 얻어 가족들을 탈출시키지만 자신들은 취재를 위해 최후까지 남기로 결정한다. 그들은 크메르루주 군에 잡혀 처형당할 위기까지 몰리지만, 프란의 간곡한 설득과 도움으로 시드니를 비롯한 다른 기자들은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크메르루주 군이 친미정부군을 물리치고, 결국 수도 프놈펜이 함락된다. 친정부 캄보디아인들은 도움을 청하기 위해 프랑스 대사관을 찾아가지만 대사관 측은 크메르루주 군의 압력으로 캄보디아인들을 보호해줄 수 없게 되고 프란 또한 크메르루주 군에게 포로 신세가 되고 만다. 시드니를 비롯한 동료기자들은 그를 구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탄식하며 본국으로 돌아간다. 프란을 구출하기 위한 시드니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를 구할 방법은 전무했다. 미국으로 돌아간 시드니는 캄보디아 내란 취재 기사로 기자상을 받게 된다.

 한편 프란은 크메르루주 군의 포로가 되어 심한 부역에 시달리는데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지옥과 같은 매일을 고통스럽게 살아간다. 크메르루주는 유산계급이나 지식인이 없는 사회를 이상적인 국가로 생각하는데 그들이 지식인을 철저히 색출하여 처형한다는 사실을 안 프란은 자신의 신분을 속인다. 그는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위기감에 어느 날 탈출을 감행하지만 실패하여 오히려 다른 수용소에 감금되는 신세가 된다. 그러던 중 지식인 출신 크메르루주 장교 파트의 배려로 그의 어린 아들을 돌보는 일을 맡게 된다. 자신이 선택한 체제에 회의를 느낀 파트는 자신의 아들을 프란에게 부탁하고, 프란은 그의 아들을 안고 캄보디아를 탈출한다.

 그러나 탈출 도중 프란은 파트의 아들을 잃어버리게 된다. 결국 그는 킬링필드를 지나 제3국인 태국의 난민촌에 도착한다. 난민촌에서 환자들을 돌보던 프란은 1979년 10월 마침내 자신을 구하러 온 시드니와 극적으로 만나게 되고 인류평화를 갈구하는 존 레넌의 음악 ‘Imagine'이 그들의 뜨거운 포옹과 함께 잔잔히 흐르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영화는 몇 가지 시사점을 우리에게 나눠주는 인류애의 명작이다.

 우선 시드니와 프란의 국경과 인종을 뛰어넘은 우정을 감동 깊게 선사하고 있다. 아울러 시드니의 투철한 기자정신은 이념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르고 죽어간 순진무구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전쟁의 끔찍한 살육과 파괴, 인간의 잔인함을 고발하고 있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자신의 이념이 옳지 않다고 느낄 때 끊임없이 고뇌하는 지식인 파트를 만난다. 그는 이념의 포로가 되어 파괴와 살육을 끊임없이 행하고 심지어 어린아이에 까지 세뇌교육을 시키는 공산주의에 회의하는 사람이다. 그는 괴물 같은 이데올로기의 실체를 몸소 경험했기에 인간과 삶의 가치에 대해 고뇌했을 것이다.

 몇 년 전 캄보디아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내전이 종결된 지 30년에 가깝건만 도처에 상흔이 남아 있었다. 수만 구의 마른 유골들을 겹겹이 쌓아 만든 탑은 전쟁이 얼마나 끔찍했는가를 지금까지 증명해주고 있다. 1975년 4월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함에 따라 약화된 캄보디아의 친미 론놀 정권을 몰아낸 크메르 루주의 지도자 폴포트가 '농민천국'을 건설한다며 1979년 1월 베트남군이 프놈펜을 함락할 때까지 4년간 자국민을 대상으로 대량학살을 자행한 결과물이다. 

 

 

 

 당시 폴포트가 정권을 잡자 론놀 정권의 부패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국민들은 환영하였다. 그러나 폴포트는 새로운 '농민천국'을 구현한다며 도시인들을 농촌으로 강제이주 시키고, 화폐와 사유재산, 종교를 폐지했다.

 이 과정에서 과거 론놀 정권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지식인, 정치인, 군인은 물론 국민을 개조한다는 명분아래 노동자, 농민, 부녀자, 어린이까지 무려 전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00여만 명을 살해하였다. 그리고 크메르 루주 정권은 1979년 베트남의 지원을 받는 캄보디아 공산동맹군에 의해 전복되었다.

 이는 캄보디아 뉴욕타임스 특파원 시드니 쉔버그의 글 <디스 프란의 생과 사(한 캄보디아인의 이야기>을 통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시드니의 글은 1980. 1. 20 뉴욕타임스에 실렸고 쉔버그는 이 기사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 글은 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 ‘킬링필드’의 토대이다.

 

 

 

 최근 외신 보도에 따르면 캄보디아 내전으로 170만 명이 학살되었다고 하니 당시 캄보디아 인구 4명 중의 1명꼴이다.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는 2011. 6. 27부터 재판을 열기 시작했다. 유엔 국제전범재판소는 이날 첫 공판을 열고 사망한 크메르루주 지도자 폴포트에 이어 2인자였던 누온 체아 등 종족 대학살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전범 4인방에 대한 심리를 시작했다고 AP 등 외신들이 전했다. 너무 늦은 감이 있으나 진상을 철저히 파악하고 정당한 절차에 따라 죗값을 받게 하여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영혼들을 달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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