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쓸쓸한 자화상 <우작(Uzak)>
2003년 터키의 누리 빌제 세이란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현대인의 외로움과 좌절감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자신의 삶과 이상의 간격이 점차로 커져 가는 상황에 사로잡혀 있던 이혼한 사진가는 어느 날 시골에서 온 젊은 사촌과 어쩔 수 없이 같이 지내게 된다. 감독인 세일란은 사소한 사건들을 통해 한 개인의 고립된 초상을 그려내면서 타르코프스키나 안토니오니 영화에 필적할 만한 수작을 만들어냈다.
현대인의 우울한 내면을 매우 정적인 방법으로 전달한 이 영화는 스토리상에서는 볼거리가 별 없지만 느낌을 전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대단한 작품이다. 현대인으로서의 우리의 자화상을 정밀하게 진술한 여백이 좋은 영화로 동양화의 미학을 생각해주게 하는 역작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영화의 배경은 터키의 이스탄불이다. 중년의 사진작가인 마흐무트는 아내와 헤어지고 가끔씩 애인을 만나 육체의 욕망을 해결하며 살아간다. 혼자인 외로움을 자신의 방식대로 해결하며 익숙하게 살아가는 그는 고독한 현대인의 초상이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에서 사촌동생 유스프가 직장을 구하기 위해 그의 집으로 오면서 원하지 않는 동거를 시작한다. 타인의 생활방식에 적응하지 못해 생활의 리듬이 깨지는 스트레스를 겪게 되는 그는 사사건건 유스프가 못마땅하다.
유스프가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우는 것, 유스프 때문에 애인과 원하는 시간에 자유로이 만나지 못하는 것, 발냄새 나는 그의 신발 등이 그렇다. 때로는 혼자서 포르노 영상을 즐기고도 싶은데 유스프는 일찍 자지도 않는다. 유스프 역시 마흐무트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불쾌하지만 원하는 선원 일은 잘되지 않고 시골에 계신 어머니의 병환은 근심거리다. 시골에 전화 거는 일조차 마흐무트의 눈치를 봐야하지만 그렇다고 그와의 동거를 정리하기엔 돈이 없다. 마흐무트는 어느 날인가부터 유스프를 몰래 감시하게 된다. 그것은 호기심에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생활을 방해하는 삼자에 대한 사사건건 신경질적인 반응의 일단이다. 마흐무트의 불만은 가속이 붙어 점점 강해져 노골적으로 유스프를 공격하는 일이 반복되자 어느날 유스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비슷한 시기에 헤어진 이혼한 부인도 새 연인을 따라 외국으로 떠나게 된다. 마흐무트는 바닷가의 벤치에서 외롭게 담배를 꺼내 문다. 여기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터키어 ‘우작’(Uzak)은 ‘멀리 떨어진, 소원한(distant)'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누리 빌게 세일란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우작>은 쓸쓸한 울림을 품은 그 제목처럼 고향으로부터,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멀어진 도시인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스크린 속 터키 이스탄불의 풍경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과 흡사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도시가 현대화된 정도도 그렇고 대기오염도 비슷하고 뚜렷한 빈부격차에다 바쁘게 돌아다니는 무표정한 얼굴들, 길거리를 떠도는 실업자들도 그렇다. 그래서 사람들만 슬쩍 바꿔 놓으면 ‘우작(Uzak)’은 영락없는 한국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닮아 있고 더 섬뜩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속 풍경과 황량함이다. 극단적으로 비루하고 남루하며 이기적이 되어 버린 인간의 마음은 동서고금을 불문하는 현대인의 군상 자체이다.
이 작품은 따뜻함, 배려, 사랑 같은 정서에서 ‘멀리 멀리’ 떨어져 있는 지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래서 이 영화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 이 공간이 터키가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이며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앓고 있는 고독과 외로움, 상처와 아픔에 대한 고백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게 된다.
마흐무트는 말과 행동과 자신이 찍어 대는 사진이 일치하지 않는 인간이다. 어려운 경제여건에 놓여 있는 지금의 터키에서 마흐무트는 유스프와 달리 시골에서 올라와 자수성가한 사람이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잃어서는 안 될 것을 잃었다. 바로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다. 마흐무트는 물질적으로 성공했지만 대신 절대적인 이기심과 그로 인한 외로움을 얻었다. 영화 내내 마흐무트는 유스프의 등 뒤에서 그를 쥐새끼라고 욕해댄다. 얹혀사는 주제에 거실에서 담배를 피워 댄다며 불평을 늘어놓기도 한다. 마흐무트는 자신이 왜 아내를 잃었는지, 애인마저 왜 자기를 떠났는지, 무엇보다 왜 자기가 공허하고 지루한 일상을 반복하며 살아가는지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그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세상 어디를 가나 만날 수 있는 인간들, 곧 지식인들의 표상이 바로 이 영화 속 마흐무트의 모습이다.
‘우작’은 영화 내내 우중충하고 어두운 항구도시 이스탄불의 풍경을 롱테이크(길게 찍기)로 담아낸다. 그 장면 하나하나는 바로 우리들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56회 칸 영화제(2003) 심사위원대상(누리 빌게 제일란), 남우주연상(무자페르 오즈데미르), 남우조연상(에민 토프락)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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