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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중년남자의 피로로 가득 찬 영화 <우아한 세계>

by 언덕에서 2011. 7. 6.

 

 

중년남자의 피로로 가득 찬 영화 <우아한 세계>

 

 

 

 

2007년 한제림이 감독하고 송강호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 <우아한 세계>는 도심의 차 안에서 피곤에 졸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시작한 뒤 결국 그가 텅 빈 대 저택에서 혼자 걸레질 하는 것으로 끝난다. 변하려고 몸부림치지만 그러지 못하는, 무언가 얻었지만 그걸 얻는 대신 더 중요한 걸 잃어버리게 되는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40대의 늙은 깡패 가장(송강호)의 힘겨운 희생사와 멈춰서거나 파멸될 것 같은 지점들이 있지만, 영화는 그걸 의도적으로 지나치며 또 다시 그를 힘겹게 살아 있게 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조직폭력배 들개파의 중간 보스인 강인구(송강호)는 아파트 시공권을 둘러싼 이권에 폭력으로 개입해 성사시키고 보스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지만,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낡은 아파트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며 가족들부터 별로 존경을 받지 못하는 불쌍한 가장이다. 아들의 외국유학 비용을 대느라 허리가 휘청거리는데, 어떡하든 남들 직장생활하듯 조폭 생활을 열심히 해서 제대로 된 전원주택 하나 장만하는 게 꿈이다. 그런데 그가 모처럼 성사시킨 아파트 시공권에 방해분자들이 여기저기 나타나며 일은 꼬이기 시작한다. 어릴 적 친구 녀석(오달수)은 상대조직의 일원으로 그에게 계약서를 내놓으라고 회유하고, 들개파 보스의 친동생은 자신의 일이라고 우기며 권리를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이렇게 죽을 둥 살 둥 열심히 사는 그에게 아내(박지영)는 언제 철들 거냐며 이혼을 요구한다. 그리고 딸은 폭력배로 방송을 타는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며 "빨리 나가 죽어라"고 경멸한다.  모두가 그의 존재를 위협하지만 조폭만이 생계수단인 그에게는 조폭질 외에는 달리 살아갈 방법이 없다.

 

 

 

 

 아파트 이권과 관련돼 보스의 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강인구는 급기야 보스까지 죽이게 되고 경찰에 체포된다. 친구(오달수)를 통해 아파트 이권 일을 처리하고 감옥에서 나온 강인구는 괜찮은 집도 하나 장만하는데, 아내는 딸과 함께 유학을 핑계 삼아 떠나버린다. 할 수 없이 자식들의 유학비용을 대기 위해 그는 조폭 생활을 계속하지만 외로운 존재다. 어느 날 그는 아들이 보내온 비디오 테이프를 반가운 마음으로 꺼내어 본다. 화면에서 가족들은 그림 같은 곳에서 평화롭고 재미있는 외국생활을 즐기고 있다. 라면을 끓여서 먹다가 장면을 바라보던 강인구는 문득 자신의 신세가 서글퍼 운다. 그리고 화가 나서 라면 그릇을 내던진다. 그러나 누구 하나 라면그릇을 치워줄 사람이 없다. 결국 일거리만 하나 늘린 셈이다. 라면 면발을 비닐 종이에 주섬주섬 주워 담는 장면에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우아한 세계>는 중년남자의 피로로 가득 찬 영화다. 어떻게 해서든 버티거나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중년 깡패의 난감한 삶을 타협 없이 드러낸다. 폭력을 업으로 삼기에 깡패가 좀더 극적인 상황에 처해 있기는 하지만, 깡패가 아닌 대한민국의 직장인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삶은 가혹하다.

 이 영화 <우아한 세계>는 누구나 알고 있고 겪고 있는 잔인한 삶에 하나를 더한다. 그것은 기어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더라도 그것은 이미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강인구는 널찍하고 물도 잘 나오는 집으로 이사를 하지만, 그 집은 이제 단순한 건물일 뿐이다. 온기가 없이 라면 면발만 불어가는 텅 빈 거실일 뿐이다. 그러므로 홀로 TV를 보며 그 면발을 씹는 강인구의 모습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시무룩하고 초라하지만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못하는 송강호의 고단한 얼굴, 웅얼거리듯 스쳐가는 낮은 목소리. 그것들은 마음을 스산하게 할 뿐만 아니라 육체마저 피로로 몰아넣는다.

 <우아한 세계>는 조폭을 숭배하거나 희극화하지 않는데도, 어떤 극적인 설정보다 강하게 감정을 이입하도록 만드는 영화다. 실제 영화 속에서의 강인구는 멋진 폭력 씬으로 연출되는 강한 이미지가 아니다. 그는 인질이 자신의 차에 뱉은 토사물을 닦아내기도 하고, 보스가 사냥한 동물을 묻기 위해 삽질을 해대는 <노가다형 조폭>이다. 아니, <생계형 조폭>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겠다. 생활 속으로 파고든 폭력이라고 하여 동정을 보낼 필요는 없지만 주인공이 하나의 문제적 인간으로서의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조폭 영화와는 차이를 둔다.

 

 

 스크린 속 송강호는 그야말로 이 시대 최고의 연기자의 명연기로서 빛이 난다. 송강호는 평범한 듯 비범한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데 평범과 비범을 절묘하게 섞은 교과서적 연기를 탁월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성숙해질 수 없는 그의 연기력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영화의 끝부분에 아들 딸, 부인의 행복한 비디오테이프 메시지를 보면서 울며 웃는 강인구의 표정에서,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중년 남자의 애처로운 눈빛에서 ‘우아한 세계’가 뭔지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다.

 

 제6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남우주연상 후보 , [제6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음악상 후보 ,  [제28회 청룡 영화상] 음악상 후보 ,  [제 28회 청룡 영화상] 감독상 후보[제 28회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한제림), 남우주연상(송강호)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