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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Nothing or Everything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

by 언덕에서 2011. 6. 22.

 

 

Nothing or Everything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

 

 

 

 

 

2005년 리들리 스콧이 감독한 이 영화는 중세 십자군전쟁에 관한 이야기이다. 교황은 이슬람 세력의 팽창을 막아보려는 의도로 여러 기독교 왕국의 기사들을 모아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게 하였다. 이것이 십자군 전쟁의 시작이다. 십자군들은 성지탈환과 인간구원에 관심이 없었고 같은 기독교도의 재물까지도 약탈했고 죄없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은 다반사였다. 이 영화에서 예루살렘의 왕이 되었다가 나중에 살라딘의 포로가 된 영주 ‘기’와 ‘레이널드’ 같은 사람이 그렇다. 신(神)은 영토와 재물약탈을 위한 핑계일 뿐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병으로 아들을 잃고 그로 말미암아 사랑하는 아내마저 자살한 발리앙은 그녀가 지옥에 떨어졌다고 떠벌리는 사제를 살해한다. 그리고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신의 음성을 다시 듣고자 성지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발리앙의 생부임을 고백한 이벨린의 영주이자 십자군 용사인 고프리(리암 니슨)는 아들과 동행한 길에 입은 부상으로 죽어가며 발리앙에게 기사 작위를 물려준다. 마침내 도착한 예루살렘은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왕 볼드윈 4세(에드워드 노튼)가 평화공존파인 티베리아스(제레미 아이언스)의 보필을 받아 다스리고 있다. 그러나 나병에 걸린 왕의 쇠약을 틈타 주전파인 기 드 뤼시냥과 전쟁광 레이놀드(브렌단 글리슨)는 전쟁을 도발하려 한다. 기 드 뤼시엥과 정략결혼한 시빌라 공주(에바 그린)와 사랑이 싹튼 발리앙은 상속받은 영지로 귀환해 오직 살기 좋은 땅을 가꾸려 한다.

 

 

 

 임종을 맞은 왕은 발리앙에게 공주와 결혼해 주전파를 숙청하고 전쟁을 막아주길 청하지만 도덕률을 중시하는 발리앙은 거절한다. 드디어 왕관을 쓴 기 드 뤼시엥의 개전으로 사막은 피로 물들고 예루살렘에 남은 발리앙은 술탄의 협상제의를 끌어낼 때까지 농성하기 위해 지략과 용기를 짜낸다.

 발리앙과 예루살렘의 수일간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성벽은 무너지고 밀려드는 대군을 간신히 막아낸다. 이에 살라딘은 회담을 요청하고 발리앙은 이에 응한다. 살라딘은 관용을 베풀어 예루살렘의 주민들이 해안가로 이동하는 동안의 안전을 보장하고 예루살렘은 살라딘의 손에 떨어진다. 풀려난 기는 발리앙과 결투를 벌이지만 지고 자신을 죽이라는 기에게 발리앙은 기사로 다시 일어나라는 충고를 한다. 시빌라와 함께 할 것을 약속한 발리앙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1187년의 일이다.

 

 

 

 성지수호의 기치를 내건 십자군 전쟁(제2,3차 십자군 원정 시기) 중 볼드윈 4세가 통치하던 성지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기독교와 이슬람간의 뿌리깊은 종교적 갈등 이면에는 인간의 탐욕에 있음을 주장하는 이 영화는 영웅적인 기사도 정신과 함께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고대 전투씬으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십자군전쟁은 이미 천 년 전에 끝났지만 지금도 중동지역에서는 전쟁의 역사가 되풀이 되고 있다. 살라딘의 말대로 예루살렘은 정말 아무것(nothing)도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것(everything)이기도 하다.

 고교시절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십자군 전쟁 내용 중 소년십자군이 떠올랐다. 웃을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엄연한 역사를 생각난 김에 그 내용을 정리해보자.

 

 

**소년십자군

 

 - 1212년경 성지탈환을 위해 프랑스와 독일의 소년, 소녀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십자군으로 알려져 있어 '소년십자군', '어린이십자군' 등으로 불린다.

 첫 번째 소년십자군은 프랑스 방돔 근처의 클루아쉬르르루아라는 마을의 양치기 소년 에티엔이 이끌었다. 그는 "환상 속에서 예수가 순례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프랑스 왕에게 전할 편지를 주었다"고 주장했다. 편지를 전달하러 가는 길에 그는 수백 명의 추종자를 모았으며 그중 일부는 성지로 가기로 했다. 약 3만 명이 마르세유로 갔으나 거기서 악명 높은 상인들에게 붙잡혀 북아프리카의 노예시장으로 팔려갔다.

 두 번째 소년십자군은 쾰른 출신의 10세 소년 니콜라스가 이끌었다. 그는 라인란트에서 소년십자군을 일으켜 약 2만 명의 어린이를 모았다.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들어간 그들은 몇 갈래로 나뉘어 일부는 롬바르디아의 여러 도시로 흩어지고, 다른 일부는 계속 행진해 제노바로 갔으나 지중해를 건너지는 못했다. 그 후 몇몇은 로마로 갔는데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1198 ~1216 재위)는 그들을 동정하여 십자군 서약에서 풀어주었다. 지도자 니콜라스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들 가운데 많은 어린이들이 첫 번째 소년십자군들과 마찬가지로 동방에서 노예로 팔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이름처럼 나이 어린 소년, 소녀들로만 구성된 무리는 아니었다. 참가자들은 귀족이나 왕, 성직자가 아닌 무장하지 않은 평민들이었고 이들 중 상당수는 중세 때의 잦은 전쟁과 영주의 횡포로 토지를 잃거나 떠돌아다녔던 빈자들이었다. 이들의 행렬은 조직화된 군대라기보다는 장기간 벌어진 무력 전쟁으로 인해 가난해진 평민들의 불만과 염원을 담은 평화 행진에 가까웠다. 그러나 여기에 이 시기에 일어난 민중봉기와 사람들 사이에 번졌던 과도한 종교적 열정, 풍물, 여러 가지 사건 등이 뒤섞이면서 소년십자군은 하나의 전설 혹은 사실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중세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소년십자군 이야기는 왜곡되거나 과장된 상태로 전해져 왔었다. 그러나 오늘날 연구자들은 소년십자군 사건을 전해지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 실체와 이러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적 배경에 더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소년십자군을 한두 가지 사건이라고 칭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한다. 이 시기에 있었던 빈자들의 행진과 민중봉기 대부분이 소년 십자군으로 불렸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건들의 동기에는 종교적인 열정, 기득권 세력인 귀족과 성직자 등으로 이루어진 십자군에 대한 불신, 사회구조에 대한 불만, 경제적인 문제 등이 다양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ㅎㅎ

 이 영화를 유심히 보노라면 감독 리들리 스콧은 기독교 진영내부를 보여주는데 여념이 없다. 살라딘이 대표하는 무슬림 진영 내부의 모습은 부차적인 장식으로 드러날 뿐이다. 영화에서 관객은 한결 진척된 감독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두 세계에 대하여 가능하면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고자 하는 자세이다.

 십자가를 전면에 내세워 피의 살육을 주장하는 주교나 드 루지앵의 호전적인 입장이 티베리아스의 평화주의와 대결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무슬림에게 빼앗긴 기독교 성지를 회복하려고 출정한 유럽 여러 나라의 국왕들과 제후, 기사들이 진정으로 목적한 것은 물질적인 부와 영토였다는 것을 티베리아스는 숨기지 않는 것이다.

 스콧은 무슬림 세계의 맹주 살라딘을 발리안 만큼 뛰어나고 신의 있는 영웅으로 묘사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영화가 평자들의 동의를 얻어내는 대목이 여기서 발원하는 듯하다.

 

 

 

 예루살렘 함락 직전 발리안과 살라딘이 벌이는 평화협정과 그것의 이행과정은 무의미한 죽음을 최소화하면서 상호신뢰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서로가 승리를 자축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나가는 장면은 매우 아름다운 것이었다. 종교의 도그마보다 인간생명을 존중하고자 하는 발리안의 입장은 객석의 동의를 얻어내기에 충분하다.

 

 

 

 전쟁은 오래 전에 종결되었고, 전장에는 셈족의 후예들이 서로 다른 종교를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개신교를 포함한 넓은 의미에서의 그리스도교), 천주교와 회교가 공존하는 예루살렘.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하루도 평안히 지탱하기 어려운 살얼음판 예루살렘.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그런 살얼음판의 과거에서 무엇을 배울 것이며, 현재의 양상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