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마리아 릴케 장편소설 『말테의 수기(The Notebooks of Malte Laurids Brigge)』
독일 시인 R.M.릴케(Rilke Rainer Maria.1875-1926)의 대표적인 소설로 1910년 발표된 일기 형식의 소설이다. 덴마크의 젊은 시인 말테가 파리에서 죽음과 불안에 떠는 영락한 생활을 영위하면서 쓴 수기 형태를 취하였으나, 이 소설에는 통일된 줄거리의 발전이란 것이 없다. 54패러그라프(小節)로 이루어진 단편적인 수기이다. 그런데도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통일된 견해, 즉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주된 패러그라프는 <파리의 생활> <죽음> <시인과 고독> <소년시절의 회상> <사랑> <신(神)> <베네치아로의 여행, 기타> <탕아의 전설> 등이다. 덴마크 귀족 출신의 젊은 무명시인인 주인공 말테를 통해서, 릴케 자신의 10여 년에 걸친 파리 생활의 체험을 묘사한 것으로, 릴케는 예술적 응시의 세계를 그려나갔다. 노르웨이의 고독한 시인 오프스토펠더가 모델이 되었다.
한 젊은 시인이 내적·외적 세계와의 갈등으로 비참하게 몰락해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독일제국 수립 당시, 시민들이 현실에서 체험하는 통찰할 수 없는 불안과 낯설음을 새로운 소설 형식으로 탁월하게 형상화해 주제나 형식면에서 현대문학의 위대한 발현으로 평가받는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 말테는 덴마크의 고향을 떠나 살기 위하여 파리로 떠난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파리에 오는 것을 보고, 그들은 살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누에 비친 파리의 모습은 불안과 죽음의 형태로 비쳐졌다. 시립병원과 요드프롬 냄새와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말테는 어린 날에 체험했던 여러 죽음을 떠올린다.
조부의 장엄한 운명, 어머니로부터 들은 동생 잉겔보르크의 죽음 그리고 괴상한 부인의 망령 이야기가 중첩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이 도시에서의 인간의 죽음이란 단지 공장에서 생산되는 대량의 의미로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인간에게 있어서의 존엄하고 숭고한 죽음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말테 자신은 이 대도시에서 일어나는 현실을 직시하고 20세기가 안고 있는 커다란 의문에 대해 자신의 사명을 깨듣는다. 자신은 시민이다. 그는 지금 보는 것을 배우고 있으며, 아무리 추악한 현실일지라도 그 현실을 위해서라면 모든 꿈을 던져버리고 다시 돌아보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버팀목이 없으면 어떻게 파리의 곤궁한 생활을 견딜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결심으로 말테의 생활은 그의 자신과 이웃한 일련의 사건들이 공통적인 인간의 길임을 인식하게 되고, 그들을 주도면밀하게 주시한다. 그러나 자신이 눈길을 주는 곳마다 부정과 부패가 판을 치며, 고독과 공포의 그늘만이 존재하는 곳을 구제해야 함을 알지만 그 방법을 찾지 못한다. 그리고 이웃에서 쓸쓸하게 죽어가는 남자와 무도병자들의 모습에서 이 도시의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공포의 그늘로 빨려 들어가 병들게 된다.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더욱 진한 역사상의 인물들의 죽음이 서술되어 나타난다. 그는 지난 시대의 여러 왕들에 대해 생각했다. 이런 옛날의 전설 같은 비극의 삶과 자신의 삶을 스스로 비교해 보기로 하며, 그들이 느꼈던 삶의 비애를 함께 겪어 보기도 한다. 이것은 자신의 존재가 하찮게 느껴져 공포와 절망의 구덩이 속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수기를 쓰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자신의 아름다웠던 유년시절과 지난 시대의 여러 왕들과의 비교에서 문득 말테는 사랑과 신에 대한 명제를 사색하였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들에 대해 경의를 보내면서 베티네나 포르투갈의 수녀 또는 사포에게서 삶의 위안을 얻는다. 그가 이러한 여성들에게서 얻은 하나의 원칙은 사랑이라는 힘을 여성들이 강하게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성은 사랑받는 남성보다 위대하며, 사랑을 받는 사람은 불안할 뿐이고,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데 귀착하게 된다. 이는 말테의 특이한 연애관으로 세속적인 의미의 사랑을 단념함으로써만이 그 사랑을 지속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수기의 마지막 장은 방탕한 아들의 이야기로 종결된다. 말테는 탕아에 비유해서 신과 사랑과 고독에 관하여 말한 다음, 사랑이야말로 영원히 꺼지지 않는 인간 생명의 원천이라고 생각하였다. ‘오직 신만이 그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끼나 그 한 분인 신은 아직도 그를 사랑하려 하지 않았다.’라는 탕아의 독백으로 이 수기를 마무리하고 있다.
♣
이 작품은 65개의 페러그래프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다시 3단계로 분류되는 데 파리에 사는 주인공의 생활, 유년 시대의 추억, 그리고 풍부한 독서의 추억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한 인간이 파리로 이주해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면서 이곳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깊은 인생의 내면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두 가지 의문, 즉 죽음과 사랑을 발견하여 인간과 인생에 대한 진지한 구명을 해 보고자 한다. 그는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나 신에게 무조건 사랑을 갈구하는 인간들에게 신은 아무런 사랑도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사랑과 죽음의 한 합일점이 신의 사랑이라고 하는데, 이 사랑의 목적도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듣는다.
말테는 영혼의 고독한 산책자이자 불안을 초극해 가는 고행자이다. 이 작품에서 묘사한 대로 말테의 내면적 영혼의 심부를 파헤쳐 모든 참상을 뛰어넘어 삶을 사랑하고 신을 찾는 탐구에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작품은 실존주의 문학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이 작품의 구성은 단편적인 수기의 모음 형식으로, 기존 소설의 형식과는 거리가 있으나. 인간적인 고통과 사색의 솔직성을 대담하고 세밀하게 다루고 있어 무엇보다도 깊은 인생관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릴케 자신의 파리시대 총결산이라고 말한다. 비록 말테라는 덴마크 태생의 28세 시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그 자신의 영혼의 혼백과 내면의 기록이란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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