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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스탕달 장편소설 『적과 흑(Le Rouge et le Noir)』

by 언덕에서 2011. 10. 27.

 

스탕달 장편소설  『적과 흑(Le Rouge et le Noir)』

 

프랑스 작가 스탕달(Marie-Henri Beyle. Stendal, 1783~1842)의 장편소설로 부제는‘1830년 연대사'이며 1830년 간행되었다. 이 작품은 스탕달이 사회로부터의 탈출과 해방을 가장 절실히 꿈꾸었던 왕정복고기에 쓰인 소설이다. 이 소설 주인공 줄리엥 소렐의 비극적인 생애는 연구자에 따라서는 사회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낭만적 젊은이의 좌절된 인생에 대한 교훈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또한 좌절당한 젊은이가 그와 같은 인생경로를 걷게 만든 자신의 시대와 사회에 던지는 준열한 고발로 해석하기도 한다. 스탕달은 이 작품에서 인간 심정의 세밀한 관찰을 넘어 시대화의 구체적인 관계를 통해 전개되는 인간의 삶을 통찰력 있게 묘사하여, 자신의 시대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시골 도시 베리에르의 목재상(木材商)의 아들로서, 나폴레옹 몰락 후 군대에서의 영달(榮達)의 길이 막힌 시대에, 아직도 나폴레옹을 숭배하는 야심적인 청년 줄리앙 소렐이 주인공이다. 뛰어난 지성과 불굴의 의지로 출세가도를 헤쳐 나가면서 타고난 미모와 섬세한 감수성 때문에 연거푸 연애 사건에 말려들며, 끝내는 사회의 중압에 굴복하여 단두대의 이슬로 짧은 일생을 마친다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영화 <적과흑 The Red And The Black, Le Rouge Et Le Noir> 1954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톱장이 목재상인 아버지와 형에게 학대받으며 자란 줄리앙 소렐은, 라틴어를 잘하여 부유한 레날 시장(市長) 집의 가정교사가 된다. 처음에는 부유한 계급에 대한 증오심에서 신앙심이 두텁고 정숙한 레날 부인을 유혹하지만, 그녀의 순정에 끌려 열렬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시내에 소문이 퍼지자 그 집을 떠나 브장송의 신학교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교장인 피라르 사제(司祭)에게 인정을 받아 그의 추천으로 파리의 대귀족 라몰 후작의 비서가 된다.

 상경하는 도중에 베리에르로 가서 레날 부인의 방에 몰래 들어가 환락의 하룻밤을 지낸다. 후작 집에 들어가서는, 자존심이 강한 딸 마틸드의 도전에 응해, 귀족 계급에 대한 증오심에서 그녀를 범한다. 상호의 증오에서 발단한 이 관계도 곧 정열적인 연애로 변하고 딸이 임신하자 부득이 후작은 두 사람의 결혼에 동의한다.

 이후 후작의 품행 조회에 대해서, 레날 부인이 본의 아니게도 진상을 알렸기 때문에, 귀족 딸과의 결혼으로 사회적 신분상의 성공을 거두려던 줄리앙의 꿈은 좌절된다. 격분한 줄리앙은 황급히 베리에르로 가서, 교회 미사에 참례 중인 레날 부인을 권총으로 저격한다. 부상한 부인은 옥중의 줄리앙을 찾아가고, 두 사람은 애정을 확인한다. 줄리앙은 사형 전의 몇 달 동안을 평안과 행복 속에 지내고 유유히 단두대에 오른다.

 

영화 <적과흑 The Red And The Black, Le Rouge Et Le Noir) 1954

 

 

 나폴레옹 몰락 후 서민층 자제가 입신하는 길은 무공보다는 승직이었다. 톱장이 아들 ‘쥴리앙 소렐’이 귀족집 가정교사가 되었다가 신학 공부하러 파리로 나와 귀족 집에 드나들게 되었다. 그 집 딸과의 연애가 전의 애인이었던 귀족 부인의 폭로로 깨어지자 분노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성당에서 그 여자를 저격, 자신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는 이 이야기는 귀족과 성직자와 부자만이 권세를 누리던 사회에서 아무것도 없는 맨주먹의 청년은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는 테마를 통하여, 이지와 정열의 양면을 지닌 ‘에고티스트(egotiste)'의 복잡한 성격을 분석하였다. 왕정복고 시대의 프랑스 사회를 예리하게 비판함으로써, 스탕달은 프랑스 근대 소설의 최초의 걸작을 이룩하였다. 이 소설의 제목은 그 당시 야심의 목표였던 군복(군인의 영광)을 빨강으로, 사제복을 검정으로 나타내었다.

 작중 마틸드 드 라 몰(Mathilde de la Mole)은 자신의 가족사에서 모델을 택한다. 주인공 줄리앙 소렐은 나폴레옹을 모방한다. 가난한 제재소 집 아들 쥘리앵은 나폴레옹의 회고록을 읽으면서 이 위대한 인물에 스스로를 동화시켜 야심가로 자라난다.

 이 작품은 일면 달콤하고, 또 한편으로는 출세 가도를 향해 달리는 세속적인 이야기로 일관하고 있다. ‘1830년 연대사’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 7월 혁명 전의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 평민 청년의 야심을 통해 귀족과 승려, 부르주아지, 세 계급 간의 격전에서 그 당시 사회의 반동성을 철저하게 비판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복합적인 시대 상황 속에서 인간의 진실이란 무엇인가를 규명하고자 하였던 것은, 주인공이 대담한 모험을 감행하며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가는 중에 인간의 순수한 정열이 타산적인 삶을 초월하여 순수한 사랑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장면에서 잘 나타나 있다.

 

 

 줄리앙은 지성을 갖춘 청년으로 귀족에 대한 불만과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려고 애를 쓰다 실패하는 인물로 나타난다. 그가 꿈꾸었던 것을 다 성취시켰다고 해도 좋을 시점에서 자의에 의해 좌절당하고, 죽음 직전에 비로소 진정한 사랑에 눈떠 행복을 맛본다. 권위적인 종교에서 보다 진실한 사랑으로 구원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때 기품 있는 얼굴과 훤칠한 용모를 이용하여 파괴적인 행위를 일삼으며 성직을 꿈꿔왔던 청년의 소용돌이와 같은 순간에 비하면 인간의 진실한 영혼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작품의 묘미는 연애소설의 극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18세의 미청년이 정숙하고 아름다운 유부녀를 유혹하고, 그 덫에 걸린 부인이 고통을 감내하며 연인 관계를 지속시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소설의 전반부에서 한결 흥미 있는 소설의 참맛을 느끼게 하며, 이후 전개되는 주인공 줄리앙의 능란한 연애 기술, 음모와 배신 등은 극적인 구성으로 긴장미가 넘치는 소설적 묘사로 이어진다. 또한, 야망을 달성하기 위하여 어떤 위장이나 간계도 서슴지 않는 위인이 자의식이 강하여 굴종이나 능멸을 당하고는 참지 못하는 기상을 갖고 있음에 되레 위선적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부단히 신분 상승을 노리는 부류가 있음에 비추어 볼 때 보다 더 높고 부유하고픈 인간의 적나라한 심성을 그대로 묘사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