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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신현림 시인이 전하는 시 『딸아, 외로울 땐 시를 읽으렴』

by 언덕에서 2011. 5. 24.

 

신현림 시인이 전하는 시 『딸아, 외로울 땐 시를 읽으렴

 

 

 

 

   

이 시집은 신현림 시인이 평소 애송하던 시 90편을 모은 '자신의 딸을 위해' 엮은 시문집이다. 그러니까 시집인데 ‘신현림 엮음’이다. 그녀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 90편이라고 했는데, 자신이 얼마나 예쁜지도 모른 채 방황하고 있는 딸들을 생각하며 시를 골랐다고 한다. 이 책은 시를 통해 넘어져 아파도 씩씩하게 털고 일어나는 힘을 얻게 되길,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따뜻한 응원가에 다름 아니다. 이 시집 속에 실린 시 90편에는 어떤 해설이나 감상문이 붙어있지 않다. 편하게 독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읽어주기만 하면 된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는 와르르 무너지고

 

생각지못한 곳에서 파란 하늘 같은 것이 보이곤 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변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 부릴 기회도 잃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다정한 선물을 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몰랐고 투명한 눈빛만을 남기고 모두 떠나가 버렸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의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이런 엉터리 같은 일도 있느냐며 블라우스의 팔을 걷어 올리고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 재즈가 흘러넘쳤다. 담배 연기를 처음 마신 것처럼 어질어질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마구 즐겼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하고 나는 아주 얼빠졌고 나는 무척 쓸쓸했다.

 

나는 결심했다. 될수록 오래 살기로 나이가 들어도 아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불란서의 루오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이바라기 노리코

 

 

 엮은이 서문에 적힌 신현림 시인의 말처럼 산다는 건 한 편의 시, 한 권의 책으로 삶을 조금씩 열렬하게 바꿔가는 일이다. 이 책에 수록된 시인들이 남긴 시를 통해 그린 인생의 기쁨과 슬픔, 지혜를 엿보다 보면 어느새 외로움은 저만치 밀려나고 따뜻함만이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삶을 멋지고 감동적인 한 편의 시로 바꿔갈 힘이 생길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저자 서문에서 신현림 시인은 다음과 같이 적고있다.

 어른들은 말한다. “지금이 네 인생에서 가장 좋을 때야.” 하지만 세상의 많은 딸들은 자신이 너무나 바보 같고, 쓸쓸하고, 불행하다고 느낀다. 내 마음이 의지할 곳, 내가 진정 행복할 수 있는 곳을 간절히 찾고 싶지만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인생에서 단단하고 안정된 그 무언가를 하나도 마련하지 못해 밤마다 뒤척이기도 하고, 내게 다정한 선물을 주는 사람 하나 없고,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이 새처럼 훌쩍 떠나가 버릴까 봐 불안에 휩싸인다.

 

 신현림 시인 역시 자신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회상한다. 전깃불도 닿지 않는 캄캄한 계단을 올라가는 것처럼 느껴지던 시절이. 그렇기에 세상의 딸들이 삶의 무게에 눌려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애달픈 마음이 들었고 그래서 그녀는 외로울 때는 자신처럼 시를 읽으라고 말한다. 한 편의 좋은 시는 그녀의 인생을 따뜻이 밝혀주는 등불이다. 시는 넘어져 아파도 씩씩하게 털고 일어나는 힘을 주니까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늙어도 늙지 않으며, 절망스러울 때도 절망하지 않는다.  

 시인은 그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지금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딸들에게 주고 싶은 시 90편을 골랐다. 개별시에 관한 해설이나 설명은 없다. 하여, 시에서 얻은 힘만큼 독자의 사랑은 용감해지고 인생은 깊어지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래서 시를 읽는 동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집에 선택된 시들은 어렵고 난해한 시, 교과서에 나올 법한 시들이 아니라 우리가 그저 사느라 바빠서 놓치고 있었던 삶의 모습들과 깨달음을 간결하게 담은 시를 골라 엮었다. 그리고 세세하게 읽어보면 시가 아닌 글들도 꽤 발견할 수 있었다. 노자, 체 게바라, 정약용, 맹자, 성 프란체스코, 루쉰 등의 글들은 시가 아니라 짧은 명상의 글귀로서 신현림 시인은 이조차 딸에게 도움이 되는 ‘시’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신현림 시인은 노자, 루쉰, 셰익스피어, 바이런, 타고르에서부터 백석, 서정주, 정호승, 이성복에 이르기까지 제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다른 모습으로 치열하게 살았던 시인들의 시를 고루 소개했다. 윤주형의 일러스트가 돋보이는 디자인도 좋다.

 

 

 


 

 신현림 시인의 말처럼 산다는 건 한 편의 시, 한 권의 책으로 삶을 조금씩 열렬하게 바꿔가는 일일 것이다. 이 책에 초대된 위대한 시인들이 남긴 시를 통해 그린 인생의 기쁨과 슬픔, 지혜를 엿보다 보면 어느새 외로움은 저만치 밀려나고 따뜻함만이 남는다. 그리고 지금 내 삶을 멋지고 감동적인 한 편의 시로 바꿔갈 힘이 생길 것이다. 끝으로 이 시집에 소개된 ‘여인숙’이란 시를 소개한다.

 

여인숙

 

인간은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짧은 순간의 깨달음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들 환영하고 받아들이라.

설령 그들이 슬픔의 무리여서

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 버리고

가구들을 모두 가져가도.

 

그래도 저마다의 손님을 존중하라.

그들은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그대를 청소하는 것일지도 모르니.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후회

그들을 웃으며 맞으라.

그리고 그들을 집으로 초대하라.

누가 들어오든 감사히 여기라.

 

모든 손님은 저 멀리에서 보낸

안내자들이니까.

 

: 잘랄루딘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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