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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귀거래사(歸去來辭) / 도연명

by 언덕에서 2011. 5. 23.

 

 

 

         귀거래사(歸去來辭) / 도연명 (陶淵明 :365~427)                                                            

 

                                    歸去來兮        자, 돌아가자

田園將蕪胡不歸  논밭이 묵는데 어이 아니 돌아가리

旣自以心爲形役  스스로 마음이 몸의 부림 받았거니

奚추창而獨悲    어찌 홀로 근심에 슬퍼하고 있으리

悟已往之不諫    지난날은 돌릴 수 없음을 알았으니

知來者之可追    이에 앞으로는 그르치는 일 없으리

實迷途其未遠    길이 어긋났으나 멀어진 건 아니니

覺今是而昨非    지난날은 그렀고 이제부터 바르리

舟遙遙以輕      고운 물결 흔들흔들 배를 드높이고

風飄飄而吹衣    바람 가벼이 불어 옷자락을 날리네

問征夫以前路    지나는 이에게 앞길 물어 가야하니

恨晨光之熹微    희미한 새벽빛에 절로 한숨이 나네

乃瞻衡宇        어느덧 이르러 집이 바라다 보이니

載欣載奔        기쁜 마음에 달리듯이 집으로 가네

憧僕歡迎        사내아이 종 나와 반가이 맞이하고

稚子候門        어린 아들 문 앞에 기다려 서 있네

三徑就荒        세 갈래 오솔길에 잡초 우거졌어도

松菊猶存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 남아 있네

携幼入室        어린 아들 손잡고 방으로 들어서니

有酒盈樽        술항아리 가득히 술이 나를 반기네

引壺觴以自酌    술병과 술잔 끌어당겨 혼자 마시며

眄庭柯以怡顔    뜰의 나무를 지그시 보며 미소 짓네

倚南창以寄傲    남쪽 창에 기대어 멋대로 있노라니

審容膝之易安    작디작은 방이지만 편하기 더 없네

園日涉以成趣    정원은 매일 거닐어도 풍치가 있고

門雖設而常關    문은 나 있으나 늘 닫아 두고 있네

策扶老以流憩    지팡이 짚고 가다가는 쉬기도 하고

時矯首而遐觀    때로는 머리 들어서 멀리 바라보네

雲無心以出岫    구름은 무심히 골짝을 돌아 나오고

鳥倦飛而知還    날다 지친 저 새 돌아올 줄을 아네

景예예以將入    저 해도 어스름에 넘어가려 하는데

撫孤松而盤桓    서성이며 홀로 선 소나무 쓰다듬네

歸去來兮        돌아왔네

請息交以絶遊    사귐도 어울려 놀음도 이젠 그치리

世與我而相違    세상과 나는 서로 어긋나기만 하니

復駕言兮焉求    다시 수레에 올라서 무엇을 구하리

悅親戚之情話    친한 이웃과 기쁘게 이야기 나누고

樂琴書以消憂    음악과 글을 즐기며 시름을 삭이리

農人告余以春及  농부가 나에게 봄이 왔음을 알리니

將有事於西疇    서쪽 밭에 나가서 일을 하여야겠네

或命巾車        때로는 천막을 두른 수레를 몰아서

或棹孤舟        때로는 외로운 배의 삿대를 저어서

旣窈窕以尋壑    깊고 굽이져 있는 골짝을 찾아가고

亦崎嶇而經丘    험한 산길 가파른 언덕길을 지나네

木欣欣以向榮    물오른 나무들은 꽃을 피우려 하고

泉涓涓而始流    샘물은 퐁퐁 솟아 졸졸 흘러내리네

善萬物之得時    모두가 철을 만나 신명이 났건마는

感吾生之行休    나의 삶 점점 더 저물어 감 느끼네

已矣乎          다 끝났네

寓形宇內復幾時  세상에 몸이 다시 얼마나 머무르리

曷不委心任去留  가고 머묾을 자연에 맡기지 않고서

胡爲乎遑遑欲何之어디로 그리 서둘러 가려 하는가

富貴非吾願      부귀는 내가 바라던 바도 아니었고

帝鄕不可期      신선 사는 땅은 기약할 수 없는 일

懷良辰以孤往    날씨 좋기 바라며 홀로 나아가서는

或植杖而耘      지팡이 세워두고 김매고 북돋우네

登東皐以舒嘯    언덕에 올라가서 길게 휘파람 불고

臨淸流而賦詩    맑은 시냇가에 앉아 시도 지어보네

聊乘化以歸盡요  자연을 따르다 죽으면 그만인 것을

樂夫天命復奚疑  천명을 누렸거늘 더 무엇 의심하리

 

 

                               

 


 

도연명(365~427)의 이름은 잠(潛)입니다. 자는 연명, 또는 원량(元亮)이지요. 집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 심어두고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했습니다. 송(宋)나라 강서성(江西省) 구강현(九江縣) 시상(柴桑)출생으로 그의 증조부가 서진(西晉)의 명장 도간(陶侃)이며, 외조부가 당시 동진(東晋)의 명사 맹가(孟嘉)인데, 그의 부친은 이름 없는 선비에 불과하여 아직까지도 그 이름을 알 길 없을 정도로 그의 어린시절은 그리 풍족치 못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전해집니다. 29세 때 처음 관직으로 미관말직인 주(州)의 제주(祭酒)가 되었지만 곧 사임하고 그 후 군벌항쟁의 세파에 시달리며 한직에 머물다 41세 때 누이의 죽음을 빌미로 팽택현(彭澤縣) 현령을 끝으로 평소에 늘 그리던 전원생활로 돌아갑니다.

 <귀거래혜(歸去來兮)>로 시작되는 이 작품을 쓴 동기를 밝힌 서문에는 원래 성격에 맞지 않는 관직을 누이동생의 죽음을 구실로 그만둔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양(梁)나라의 소명태자(昭明太子) 소통(簫統)의 <도연명전(陶淵明傳)>에는, 감독관의 순시를 의관속대(衣冠束帶)하고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오두미(五斗米: 적은 봉급)를 위해 향리의 소인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고 하며 그 날로 사직하였다 하는군요.

 이 작품은 도연명의 기개를 나타내는 이러한 일화와 함께, 은둔(隱遁)을 선언한 일생의 한 절정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지요. 도연명의 대표작이며 전원생활에의 지향을 노래한 문학으로서 소명태자의 <문선(文選)>에도 실려 있다지요. 후한(後漢) 장충(張衝)의 <귀전부(歸田賦)> 등 그보다 앞선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나, 후세 문학에 끼친 영향 면에서 가장 높이 평가되며 또한 많은 그림의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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