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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 충담사

by 언덕에서 2011. 5. 16.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충담사( ? 생몰년 미상)

 

(구름을) 열어젖히며

나타난 달이

흰구름을 따라 떠가는 것 아니냐?

(달의 대답) 새파란 시냇물에

기파랑의 모습이 있구나.

이로부터 시냇물의 조약돌에

낭이 지니시던

마음의 끝을 따르고 싶구나.

아아, 잣나무 가지가 높아

서리를 모르실 화반이여

 

 (양주동 역)

 

 

 

 

 


 

 

<찬기파랑가>의 주인공인 기파랑이 누구며, 왜 이 노래를 지었는가는 자료에 나타나 있지 않아서. 추측해 볼 수밖에 없겠군요. <삼국유사>에 전하는 향가 중에서 유독 <찬기파랑가>만은 '사뇌가'라는 말이 붙어서, <찬기파랑사뇌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노래야말로 사뇌가의 전형적인 작품이거나 사뇌가가 갖추어야 할 높은 뜻을 가장 잘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높은 뜻이란 미적 범주를 들어 말하면 숭고한 것을 추구하면서 나타냅니다. 사뇌가는 모두 그런 방향을 택한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 노래에서는 숭고와 함께 비장이 보입니다. 기파랑이 고난을 겪고 있기 때문에 숭고한 이상을 비장하게 재확인하고자 했던 것이겠지요.

 하늘에 높이 뜬 달로 기파랑 또는 기랑을 나타내고, 시인 자신은 물에 비친 그 모습을 사모하며, 냇가 조약돌에서 기랑이 지니던 마음의 끝이라도 따르고자 한다는 말로 넉 줄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달은 항상 보이는 달이 아니군요. 가리고 있던 것을 열어제쳐야만 비로소 나타나고, 흰 구름과 함께 떠나갑니다. 시인이 서 있는 아래쪽은 달그림자의 조각조차 쉽사리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어둠에 싸여 있습니다. 마음의 끝을 따르고자 하는 소망은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기에 더욱 간절합니다. 그래도 서방정토에서 만나자고 하는 기약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다섯째 줄에 이르러서는, 시인 자신이 기파랑의 정신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히는군요. 그것은 높은 잣가지이다... 달이라고 비유했을 때와는 딴판으로 모든 것이 명료해지네요. 또한 '화반'이라는 말이 꽃잎이거나 고깔이거나 화랑의 상징임에 틀림없겠군요. 거기에는 서리에 대비한 시련이 닥칠 수 없다는 확신을 나타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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