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제임스 장편소설 『나사의 회전(The Turn of the Screw)』
미국 소설가 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43 ~ 1916)의 장편소설로 1898년에 발표되었다. 원제는 <The turn of screw> 인데 국내에서는 <나사못 회전>, <나사의 회전> 또는 괴기스런 분위기 때문에 <유령의 집> 등으로 표제가 번역되었다. 유령을 다룬 대표적인 소설 작품으로, 영국의 어떤 전통 있는 집안에서 가정교사로 일하고 있는 젊은 여교사가 그 집에 젊은 남녀의 유령이 나타난다고 확신하고 어린 제자를 유령으로부터 보호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이목을 끄는 이유는 단순한 유령 이야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유령 이야기를 하는 방식에 놓여 있다. 원작에서는 그 가정교사가 쓴 글을 옛 제자가 읽는 형태로 진행된다. 문제는 그 글을 쓴 가정교사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결국 그 이야기의 진정성마저 의심이 가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단순히 그 이야기를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정교사의 수기가 과연 객관적인 기록인가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에는 유령이 과연 존재했는가는 문제를 믿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녀의 히스테리에 의한 과잉상상이었는지조차 의심하게 된다. 그래서 이 소설은 프로이트와 같은 수많은 심리학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 문제작이 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야기는 어느 중년 남자가 읽어주는 가정교사의 수기로부터 출발한다.
20대 초의 가난한 여성인 화자는 세상살이의 첫 경험을 대부호의 가정교사로 시작하게 된다. 그녀를 고용한 남자는 무뚝뚝하고 근엄하였지만 꽤 매력적이다. 그녀의 학생들은 고용주의 조카 둘―10살 남짓한 남아(마일즈)와 두어 살 아래의 여아(플로라)였다. 그러나 그들은 한적한 시골 성곽―블라이에 보내져 양육되었으며, 그녀는 아이들을 맡되, 여하한 경우에도 절대 고용주를 귀찮게 만들지 말아달라는 엄명을 받는다.
주인공 가정교사는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에 감동받고 자신의 사명을 다지지만, 다른 한편으론 남자 아이 마일즈가 모종의 이유로 인해 학교에서 퇴학당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다른데 있다. 평화롭고 한적하기만 한 시골집에서 이전의 가정교사 제셀과 집안의 하인 퀸트의 망령이 출몰하여 아이들의 영혼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주인공은 깨닫게 된다. 유모 그로스 부인에 의하면, 제셀과 퀸트는 생전 악행을 일삼았으며 아이들을 타락시키려 들었다. 이에 화자는 고용주의 신뢰와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지키고자, 자신의 용기와 옳음을 입증하고자, 악령들에 필사적으로 대항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갈수록 분명해지는 사실은 아이들이 악령들과 어울려 오히려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점이다. 화자를 도와야 할 그로스 부인은 '상상력의 빈곤'으로 말미암아 사태를 전혀 능동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 악령들을 직접 목격한 이는 오직 화자 하나뿐이고, 아이들은 악령의 존재를 모르는 척 자신을 속인다는 심증만 깊어간다. 그외 집안 식구들은 그 누구도 악령의 존재에 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화자 사이엔 미묘한 갈등의 줄다리기가 시작되고, 마침내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성곽 근처 호수가로 혼자 떠난 플로라를 찾기 위해 나선 화자는 제셀의 망령을 마주친다. 그러나 그 순간, 함께 있던 플로라와 그로스 부인은 악령을 보지 못한다. 플로라는 깊은 병을 얻어 그로스 부인과 함께 집을 떠나게 되고, 화자는 마일즈를 구원하고자 그와 대면한다. 마지막 순간, 마일즈가 악령과 교우하였다는 '죄의 고백'을 받아내며 화자는 자신의 승리를 선언하지만, 마일즈는 숨을 거둔 뒤다.
이 작품은 오페라나 영화로도 여러 번 제작되었다.
더욱이, 이러한 이야기 형식 자체가 하나의 전형을 만들었다. 가령, 뉴욕타임즈는 한국의 김지운 감독이 만든 영화 '장화, 홍련'을 평하면서, 이 영화는 헨리 제임스의 작품 「나사못회전」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장화, 홍련>의 새엄마에 대한 과잉반응의 모티브를 지적했다. 또, '디 아더스'같은 작품도 「나사못 회전」의 영향 하에 있다고 평하는 글도 읽은 적이 있다.
「나사못 회전」은 이설이 많은 작품이며, 해석마다 극을 달린다. 유령을 영화 '엑소시스트'와 같이 '악의 상징'으로 여기는 설도 있고, 아이들을 악의 상징으로 보는 설도 있으며, 가정교사를 악역으로 보는 설까지 있다. 이들 중 어느 한쪽에 붙는다고 하더라도 각 인물에 대한 해석 또한 이 안에서 또 제각각이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든 독자들에게 확실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 소설에 스며들어 있는 '악의 그림자'이다. 그리고 그것이 풍기는 음산한 분위기가 이 중편소설을 아주 근사한 고딕 소설로 만들어 준다.
유명한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동생이기도 한 헨리 제임스는 작품 속의 한 인물의 시점을 통해 다른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심리를 묘사함으로써 각 인물의 의식 심층을 깊숙이 파고든다. 이러한 작법은 사실적인 서술에다 성격 묘사에 중점을 두고 인간 행동의 내면에 있는 심리적 동기를 심리학적 혹은 병리학적으로 해부하여 분석해 나가는 심리주의 문학의 모태를 이루었고, ‘의식의 흐름’이라는 수법에서 선구적 역할을 했다. 버지니아 울프, 제임스 조이스, 조지프 콘래드, D. H. 로렌스 등의 영국 작가들과 이디스 워튼, 윌라 캐더 등의 미국 작가들이 제임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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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도 역시 이러한 서술 기법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 작품이 최초의 심리 소설로 꼽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헨리 제임스가 이 작품에서 1인칭 화자로 설정한 인물은 바로 가정교사이다. 가정교사의 시선으로 유령이 목격되고, 그녀의 관점으로 모든 것이 해석되며, 또한 유령이 아이들을 위협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독자는, 유령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지 의심을 가질 틈도 없이 가정교사의 확신에 휩쓸리고 만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독자는 유령의 존재가 그녀의 점점 날카로워지는 심리가 낳은 부산물이 아닐까 의심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의심일 뿐, 무엇이 진실인지는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에도 밝혀지지 않은 채 남는다. 그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며 독자는 작가에 의해 내면을 지배당한다.
가정교사가 본 것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유령이 있느냐 혹은 가정교사가 미쳤느냐 등등, 이 작품은 문학평론가뿐 아니라 심리학자들 사이에서도 그 실체에 대해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가정교사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헨리 제임스는 이 여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심지어 액자 구조의 이야기에서 바깥의 화자인 더글러스조차 이름이 주어졌는데 말이다. 이는 가정교사의 실체를 분명히 밝히지 않음으로써 논란을 일으키기 위한 작가의 의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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